⑧ 노예에서 왕비가 된 황두아가씨

“노예의 신분이지만 마음씨 곱고, 친절하거든. 얼굴도 예뻐.”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는 아가씨가 있었습니다. 사위성 야야달(耶若達) 장자의 집에서 부리는 황두(黃頭)라는 여종이었습니다.

야야달장자는 사위국의 서울, 사위성 가까이에 말리라는 동산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장자는 여종 황두에게 말리동산을 관리하도록 했습니다.

“여자이지만 너는, 부지런하고 착해서 동산지기 노릇을 잘 할 것같구나.”
“예, 장자님 잘 해보겠습니다.”

부지런한 황두는 동산지기가 된 그날부터 날이 새는 시간에 아침밥을 싸가지고 장자의 집을 나섰습니다. 동산에서 아침을 먹고 일을 시작합니다.

“아름다운 동산으로 꾸며보자.”
황두는 동산에다 예쁜 화초를 심고, 꽃나무를 심었습니다. 푸른 나무를 잘 가꾸어 꽃과 그늘이 좋은 동산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황두는, 장자의 집에서 자기 몫으로 나누어주는 아침밥을 가지고 말리동산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멀리서, 어떤 도인이 바루를 들고 걸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가지고 가는 이 밥을 저 스님께 드리자. 그러면 좋은 인연을 만날 것이다.’

황두는 바삐 가서, 가지고 가던 밥을 도인에게 나누어 드렸습니다. 그리고 동산으로 가서 남은 밥으로 아침을 먹었습니다. 아침밥을 보시했던 그 도인이 부처님이셨지만, 황두는 스님으로만 생각했습니다.

몹시 덥던 어느 날, 건장한 남자 한 사람이 말리동산의 손님으로 나타났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어르신!”

여자 동산지기 황두는 누구에게나 하듯이 친절히 손님을 맞이했습니다. 자리를 마련해서 앉게 한 다음, 널따란 연잎에다 물을 길러 왔습니다.
“어르신, 목이 마르시지요? 물을 드세요.”
“목이 마르던 참에 아주 고맙소.”

손님은 황두가 매우 마음씨 곱고, 아리따운 아가씨라는 생각을 하는 듯했습니다. 모습이 단정하고 예쁘다는 생각도 하는 듯했습니다.
“발을 씻으셔야죠. 물을 길러 오겠습니다.”

황두는 더 큰 연잎에 물을 길러 왔습니다. “제가 발을 씻어 드리죠”하고 손님의 발을 씻었습니다. “고단하신데 누워서 쉬시지요.” 씻은 발을 닦아준 다음 자리를 깔아주며 하는 말이었습니다.

누워 쉬면서 손님은 생각했습니다. ‘저와같이 친절하고 총명한 여자는 처음 본다. 사람의 마음을 척척 아는군.’

그러다가, 손님이 물었습니다. “동산을 잘 가꾸었군. 여자 혼자서 넓은 동산을 가꾸고 돌보기가 힘들 텐데, 어떤가?”

그런데, 아가씨의 말이 뜻밖이었습니다. “힘들지 않아요. 좋은 분들만 동산 구경을 오시는 걸요.”

그 말에 손님은 아주 감동을 하는 듯했습니다. “아가씨는 뉘집 딸인가?” 이번 대답은, 더더욱 뜻밖이었습니다. “저는 야야달장자를 상전으로 모시는 여종입니다.”

“그래?” 누웠던 손님이 그 말에 놀라며 벌떡 일어났습니다. “나는 사위국 바사닉왕이오. 야야달장자를 만나야겠소.”

황두도, 말리동산을 찾은 손님이 사위국의 바사닉왕이라는 걸 알고 아주 놀라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마침, 왕의 신하들이 왕을 찾아서 숲에 이르렀습니다.

“수레를 빨리 몰아서 야야달장자를 모셔 오라!” 급한 명령이어서, 장자가 급하게 왔습니다. “장자! 이 사람이 장자의 여종이 맞소?” 엎드려 절을 하는 장자에게 왕이 급히 물었습니다. “그러하옵니다. 대왕님!”

“짐이 데려다가 왕비를 삼으려하는데 장자의 뜻이 어떻소?”
“종의 신분인데 어찌 국모를 삼는다 하십니까?”
“노예의 신분이라 해도 이 아가씨는 충분한 국모의 자격이 있소. 그걸 내가 보았소. 노예는 사고 파는 것이니, 값을 말하시오.”

야야달장자는 한참을 생각다가 입을 떼었습니다. “값으로 따진다면 황금 천 냥은 받아야겠습니다만, 어찌 대왕님께 값을 받겠습니까. 거저 바치겠습니다.”
“그렇지 않소.” 바사닉왕은 그 자리에서 황금 천 냥을 야야달장자에게 주었습니다.

궁에서 왕비의 예복과 영락을 가져오게 하여 몸을 꾸미게 했습니다. 그리고, 같은 수레를 타고 사위국 왕궁으로 들어갔습니다. 이튿날부터 왕궁의 예법을 익히고, 필요한 학문과 필요한 기술을 익히는 교육을 시켰습니다. 얼마 뒤, 나라 사람의 축복 속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왕비가 된 황두는 말리부인이라는 칭호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말리동산에서의 인연을 생각하여 바사닉왕이 지은 이름이었습니다.

말리부인은, 말리동산 오는 길에 아침밥을 나누어서 보시한 인연으로 귀한 몸이 된 것을 알고, 그 도인을 찾았습니다. 알고 보니 그 도인이 부처님이셨습니다. 왕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지금 당장 부처님을 찾아가 예배하고 문안하시오” 하고 서둘렀습니다. 5백 수레를 장엄하게 차리고, 5백 시녀를 데리고 부처님을 보러 오가게 했습니다.

모든 일을 아시는 부처님은 말리부인 일행을 위해 설법을 하시고, 부인의 전생 인연을 이야기하셨습니다. 말리부인은 바사닉왕과 함께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는 우바새, 우바이가 되었습니다.
출처: 사분률 18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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