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의 지혜가 담긴 〈탈무드〉에 ‘배움은 흉내에서 시작한다’는 속담이 나옵니다. 배움은 이렇게 모방에서 출발합니다. 갓난아기가 엄마의 손짓과 말을 흉내 내면서 한 사람의 인격체로 성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불제자에게 배움은 부처님이 되는 과정입니다.

공부와 깨달음의 과정, 비슷
‘배워 남 주는 마음’도 중요
‘사홍서원’, 배움 자세로 삼길


부처님의 가르침은 ‘수레(乘)’에 비유되곤 합니다. 불제자에게 있어 배움은 수레의 두 바퀴, 즉 정진과 숙련이라는 이름의 바퀴를 끄는 동력입니다. 만약 정진과 숙련이라는 두 바퀴가 없다면 배움의 수레는 멈추고 말 것입니다.

호수에서 유유히 헤엄치는 물오리가 수면 아래에서 두 발을 습관처럼 움직이듯이 배움의 정진은 지나치게 애쓰지 않는, 부드러운 물결과 바람의 흐름과 같아야 합니다. 모든 게 자연스레 이뤄지는 여정에서 배움은 한 단계씩 나아갑니다.

불제자에게 배움은 경전에 나오는 교학적인 지식을 단순히 습득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이론적 교학이 토대는 되겠지만, 부처님처럼 되기 위한 실천의 덕목이 뒤따라야만 합니다. 자비의 실천행이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불설함수유경(佛說鹹水喩經)〉에는 배움의 과정을 ‘오탁악세(五濁惡世)’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사람이 밖으로 나와 지혜의 언덕에 오르는 과정으로 비유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물에 빠진 사람
어느 날 부처님께서 길을 가다가 사람들이 목욕하는 모습을 보셨습니다. 그 때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그대들을 위해 물에 빠진 사람을 비유로 들어 일곱 가지를 말하겠다”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비구들이여, 물을 비유로 든 일곱 가지란 무엇인가? ①어떤 사람은 물에 빠져 있고 ②어떤 사람은 물에서 머리를 내밀었다가 다시 물에 빠지며 ③어떤 사람은 머리를 내밀어 사방을 둘러보고 ④어떤 사람은 머리를 내밀고 다시는 물에 빠지지 않으며 ⑤어떤 사람은 물에서 나가려고 하고 ⑥어떤 사람은 저쪽 언덕으로 가려고 하며 ⑦어떤 사람은 저쪽 언덕에 이르러 깨끗한 마음으로 저쪽 언덕에 서게 된다.”

이어서 이렇게 덧붙이셨습니다.
“이들 중에 첫 번째, 물에 빠진 사람은 좋지 않은 법(法)이 온몸을 감싸고, 죄가 무거워 지옥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자이고, 두 번째, 머리를 물 밖으로 내밀었다가 다시 물에 빠진 사람은 선한 법에 대해 믿음이 있어 부끄러워하는 마음으로 그 방법을 구했다가, 다시 여러 선한 법에 대해 부끄러움을 품는다. 세 번째, 물에서 나와 사방을 둘러보는 사람은 선한 법에 대해 믿음이 있고 부끄러워하는 마음과 용맹스런 마음이 있으며 온갖 선하지 않은 법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있고, 네 번째, 물에서 나온 사람은 세 가지 번뇌[結使]를 다하고 수다원이 되어 물러나지 않으며 반드시 인간에 돌아와서는 얻는 바가 있다.

다섯 번째, 물에서 빠져나와 저쪽 지혜의 언덕에 가려는 사람은 세 가지 번뇌를 다하고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엷어지고 사다함이 되어 (천상으로 갔다가) 이 세간에 와서 괴로움의 근본을 없앤다. 여섯 번째, 저쪽 언덕에 이른 사람은 5하분결(下分結)을 끊고 아나함이 되어 저 천상에서 열반에 들고, 다시는 인간 세계로 돌아오지 않는다. 마지막 일곱 번째, 저쪽 언덕에 이르러 깨끗한 마음으로 서 있는 사람은 온갖 번뇌가 없게 되어 생각과 지혜를 해탈해 생사의 근본을 끊는다. 비구들은 이렇게 또다시 어머니의 태에 들어가지 않도록 부지런히 노력하라.” -〈불설함수유경〉 中에서

공부는 숙련의 과정
배움을 시작해 열반에 이르는 단계를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이야기 속의 물은 오염된 세상인 오탁악세를 의미합니다. 물에 빠진 사람은 중생이며, 물에서 빠져나와 언덕에 이르는 과정은 보살의 성취단계를 비유합니다. 부처님의 법이 무르익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살기위해서는 물속에서 나와야합니다. 하지만 물 밖으로 나오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신심이 부족해 의심과 두려움으로 주변을 기웃거리면 물 밖으로 잠시 머리를 내밀 수 있을 뿐 다시 물에 빠져들고 맙니다. 혼돈의 상황은 반복됩니다. 물에 휩쓸리지 않고 지혜의 언덕(바라밀)에 이르기 위해서는 참된 자각(올바른 앎)이 필요합니다.

참된 자각에 대한 성취는 시간과 노력에 비례하진 않지만 인내하며 훈련하는 과정은 거쳐야합니다. 현실에 대한 참된 자각은 법(Dharma)에 대한 믿음을 갖는 데서 출발합니다. 이후 숙련과 인내를 통해 점점 향상될 것입니다. 의심을 버린 수다원을 거쳐, 고통과 혼란을 정화한 사다함, 참된 법을 얻은 아나함과를 성취하면 드디어 대자유인인 아라한에 도달하게 됩니다.

보살에 이르는 단계는 이렇게 배움의 단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불제자의 배움은 자신을 알고, 타인을 이해해 전체를 아우르는 일입니다. 반면 학창시절의 공부도 숙련의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현실적인 이익과 효과가 발생하지는 않더라도 조금씩 성장해 상급학교로의 진학 등 향후 진로선택의 폭을 넓혀주기 때문입니다. 배움은 ‘나’를 키우고 향기롭게 하는 과정입니다.

리더의 다짐인 ‘사홍서원’
배움의 자세에는 크게 네 가지가 있습니다. ①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아이쇼핑 ②자각의 참맛을 잠시 맛보았지만 비판·비평하는 태도 ③배움과 훈련의 과정을 순수한 아이처럼 흡수하는 자세 ④자신을 부드럽게 리드하는 태도 등입니다. 두려움과 의심 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신명나게 배우는 자세는 리더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은 배움의 자세라 하겠습니다.

더불어 배움을 회향하는 과정 역시 소중합니다. 즉, 실천의 과정은 모든 불자들이 불교의식과 법회에서 독송하는 네 가지 큰 서원에 담겨있습니다. 바로 ①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중생을 다 건지기 위해 깨달음의 피안(彼岸)에 도달하겠다는 다짐 ②번뇌무진서원단(煩惱無盡誓願斷)-모든 번뇌를 다 끊겠다는 다짐 ③법문무량서원학(法門無量誓願學)-드넓고 심오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모두 배워 깨닫겠다는 다짐 ④불도무상서원성(佛道無上誓願成)은 깨달음을 다 이루어 성불하겠다는 다짐 등입니다.

‘배워서 남 주자’는 말을 들어 보셨나요? 학문의 실천을 강조한 재치 있는 표현입니다. 육바라밀(보시·지계 인욕·선정·정진·지혜)과 사무량심(자비희사-慈悲喜捨) 등 자신과 세상을 향기롭게 하는 실천은 삼독(탐욕, 무지, 분노)에 오염된 오탁악세를 정화시켜 줍니다.

〈법구경〉에서 “우리의 현재는 우리가 과거에 생각했던 결과”라고 전합니다. 배움과 실천을 다짐함으로써 현재와 미래의 당당한 불자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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