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대승네트워크, 1994년 종단개혁 23주년 입장문

1994년 4월 10일 승려대회(이하 94년 종단개혁)가 열린지 23주년을 맞아 신대승네트워크가 종단개혁의 정신을 상기시켜 각자도생 문화를 척결하고 공동체 문화를 회복하자고 천명했다.

신대승네트워크는 “오늘은 승려대회가 열린 날이다. 23년이 지난 지금 정법의 기단을 바로 세우겠단 1994년 그날의 선언을 우리는 가슴 깊이 새기고 지키고 있는가”라며 “우리는 94년 종단개혁의 정신을 상기하면서 냉정히 성찰하고 참회한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4월 10일 발표했다.

신대승네트워크는 “94년 종단개혁으로 성립된 새 종단체제는 전근대적 제도, 관행, 폐단, 폭력의 유산이 퇴출되고 종무행정 시스템이 구비됐으며, 형식적이고 절차적 수준에서나마 새 정치와 제도(법)가 구현됐다. 사찰을 비롯해 종단의 재정도 훨씬 규모 커졌다”며 “그러나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한 채 멈춰 섰다”고 지적했다.

또한 현 종단 체제에 대해 실질적 민주주의 단계로 나아가지 못한 채 정치세력의 이해관계에 따라 운영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범계행위에 대한 엄정한 처벌을 회피하고, 비판세력에 대해 종단 밖으로 몰아내는 등 종권을 종헌종법에 부합하게 행사하지 않는다고 지탄했다.

이와 관련 34대 집행부 뿐 아닌 불교공동체 모두의 책임이라 말하며 진정성과 신뢰, 공유와 협동 체제로 나가기 위한 대안을 숙의하는 ‘열린 광장’을 구성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신대승네트워크는 “현 종단 집행부와 중앙종회는 이제라도 열린 마음으로 대중의지에 부응해야 마땅하다”며 “공동체를 위한 마지막 헌신의 기회를 놓지 않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신대승네트워크는 서의현 前 총무원장의 재심결정을 계기로 94년 종단개혁의 정신을 계승해 한국불교의 대전환을 이루겠다며 지난해 3월 발족한 단체다.

다음은 입장문 전문

1. 94년 종단개혁은 사부대중 공의에 의한 교단운영과 사회책임 선언이었다.

오늘은 1994년 4. 10. 승려대회가 열린 날이다. 우리는 2017년 봄이 온 대지에 앞 다퉈 깨어나는 계절에 1994년 종단개혁 23주년과 마주하고 있다. 1994년 종단개혁은 당시 출재가자가 함께 참여한 아래로부터의 개혁이자 한국사회의 민주주의 발전에 있어 또 하나의 모델로 회자될 만큼 한국불교의 역사적 사건이자 종교사의 유일무이한 사례로서 우리 불자들의 자부심이다.

23년이 지난 지금, 정법의 기단을 바로 세우겠다는 1994년 그 날의 선언을 우리는 가슴에 깊이 새기고 그 자부심을 지키고 있는가? 서슬 푸르게 외쳤던 종단개혁의 사자후는 지금도 우리의 일상속에 화두로 자리하고 있는가? 이에 대해 우리는 1994년 종단개혁의 정신을 상기하면서 냉정히 성찰하고, 참회한다.

1994년 종단개혁은 총무원장 1인 중심의 비민주적 권위주의체제를 부정하고, 불교의 자주성과 승가공동체의 회복, 대중공의에 의한 종단운영, 그리고 불교(교단)의 사회적 책무 실천에 대한 한국불교의 대내외적 천명이었다. 이를 실현하는데 가로막는 중대한 장애물을 제거하기 위하여, 우리는 외부의 정치권력과 내부의 그 어떤 억압적 권력에 대해서도 자유로울 수 있는 자주성과 민주성이라는 튼실한 기반을 구축할 것을 다짐하였다.

1994년 종단개혁으로 성립된 새로운 종단체제는 전근대적 제도, 관행, 폐단, 폭력의 유산이 퇴출되고, 종무행정 시스템이 구비되고, 형식적이고 절차적 수준에서나마 새로운 정치와 제도(법)의 지배가 구현되었으며, 사찰을 비롯하여 종단의 재정적 면에서도 훨씬 규모가 커졌다. 그러나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한 채 멈춰 서버렸다.


2. 공동체의 붕괴, 이탈한 300만 불자, 이것이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실이다.

종단의 형식적 민주주의는 종도참여 및 대중공의에 의한 종단의 민주적 운영이라는 실질적 민주주의 단계로 나아가지 못한 채, 종단은 소수 정치세력의 각축장이 된지 오래이며, 정치세력의 이해관계에 따라 운영되고 있다.

종단은 범계행위에 대한 엄정한 처벌은 회피하고, 오히려 비판세력에 대해서는 종단 밖으로 몰아내는 등 종도로부터 위임받은 종권을 종헌 종법에 부합하게 행사하지 않고 있다. 종헌의 삼권분립의 정신도 형해화 되버린지 오래되었다. 중앙종회는 1999년부터 허용된 불교시민사회의 중앙종회 모니터링을 거부하고, 집행부에 대한 비판과 견제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채 오히려 대변자의 역할만 수행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고, 호계원은 서의현 재심결정이나, 종단을 비판하였다는 이유 등으로 명진스님을 제적하는 등 비판세력에 대한 징계 남용을 통해 드러났듯이 이미 허명만 남은 사법부라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언론과 시민사회는 공기(公器)로서 공공성을 위해 권력에 대한 비판과 견제의 기능을 수행한다. 이를 보호하고 육성하는 것이 제도권의 또 하나의 책무이다. 그러나 종단은 비판 언론을 ‘해종언론’으로 재갈을 물려 공기로서의 비판과 견제 기능을 방해하고 있고, 일부 불교시민사회단체와 인사들까지도 해종의 잣대를 들이대어 불교시민사회의 역할 수행을 왜곡하고 있다. 이는 어떠한 비판과 견제도 수용하지 않겠다는 의사표현으로 무소불위의 제왕적 권력을 행사하겠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늘어난 재정은 승가 구성원에게 공유되고 있는가? 아니다. 삼보정재가 승가 모두에게 공유되지 못하고 사유화되고 있다. 출가부터 다비까지 책임져야 한 종단의 역할을 승가 개개인에게 맡겨 각자도생의 길로 내몰고 있다. 사회와 같이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만행하는 수행자가 사찰에서 유할 수 있는 객실문화가 사라져가면서, 모텔이나 호텔 등의 숙박업소를 이용해야 한다. 또 개인이 알아서 토굴을 만들어 거처를 구해야 한다. 이러한 현실이 승가의 공동체문화가 와해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또한 가사, 장삼 등 승복을 구입하거나 교육연수를 받을 때에도, 심지어 본연의 수행생활에 소요되는 비용이나 다비비용 까지도 모두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이 상황은 무소유를 지향하는 승가에 오히려 소유를 강요하고 있는 모순을 양산하고 있다.

1994년도 ‘이 세계에 새로운 삶의 가치, 새로운 삶의 질서를 제시하고, 이 사바세계를 청정한 수행 도량으로 만들고’자 선언했던 한국불교는 사회적 책임은 성실히 수행하여 왔는가? 이 또한 ‘그렇다’라고 답할 수 없다.  ‘헬조선’으로 자조하면서 세상에 대한 증오와 분노, 그리고 생존의 몸부림이라는 고통이 들끓어오를 때, 그들의 아픔을 감싸고 그들의 굽어진 마음을 살펴주지 못하였다. 즉 불교가 이 세상에서 존재해야 하는 이유, 가장 으뜸의 사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것이다.   
그것 뿐 만이 아니다. 오히려 명백한 부정금권선거로 세속법정의 훈계를 받고도, 금과옥조로 여겨왔다고 생각되는 독신비구의 규율을 파괴하였다고 교구본사주지가 공개 비판을 받고 그런 공개비판이 보장되어야 할 마땅한 신도의 권리라고 세속법정이 판결했음에도 불구하고, ‘종도들의 위임을 받은 종단권력’은 엄정한 법집행을 통해 사회적 모범을 보여야 함에도 이를 적극 회피하였다.
 
이처럼 자기 자신의 허물에 눈감은 결과는 무엇인가. 10년 동안 3백만의 불자들이 이탈하였다고 발표된 <2015년 인주주택총조사>가 그 결과의 참혹함을 웅변하고 있다. 이처럼 1994년 종단개혁의 정신은 초라하기 그지없이 사장(死藏)된 역사가 되어가고 있으며, 불교의 공동체는 붕괴되고 눈앞에 각자도생의 길만이 열려 있다.


3. 불교공동체의 진정한 회복을 위한 대화마당을 열어가자.
      
우리는 300만 불자의 이탈이 모두 34대 집행부만의 전적인 책임이라고 말하지 않겠다. 물론 그 지도자들에게 무한한 정치적 책임과 무거운 사실적 책임이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공동체의 운명은 구성원 모두의 것으로 공동체 모두의 책임에 해당한다는 것에서 우리가 출발하지 않는다면,  우리 불교공동체의 새로운 운명을 개척할 기회와 용기를 찾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 또한 분명하다.

한국사회에서 먼저 시민들이 깨우쳐 일어나 광장에 모여 새로운 반전의 기회를 열었다. 이로써 사적농단으로 국민의 신의를 배반한 대통령 파면, 구속 그리고 대선과 새 정부 출범으로 이어지는 새롭고 자유로운 사회적 소통의 장이 열렸다. 우리 불교공동체도 이런 환경과 보조를 맞추고, 진정성과 신뢰, 그리고 공유와 협동의 공동체로 거듭 나기 위한 대안을 숙의하는 열린 광장을 열어야 할 때가 되었다. 그것이 종단개혁 이후 23년의 세월을 무위로 돌리지 않는 길이다.

다행스럽게도 현재 선원수좌회 등을 비롯하여 교계에서는 승가공동체의 회복과 직선제로 표현되는 ‘종도참여에 의한 종단운영’ 요구가 분출하고 있다. 종단의 자체조사 결과에서도 그런 요구가 압도적이었음이 확인되었다. 이는 또한 34대 총무원장 자승스님의 공약이었다. 우리는 비록 그 논의의 실현가능성이나 타당성을 충실히 검토해 보아야 한다고는 생각하지만, 그 요구의 기저에 있는 금권, 매관매직 등의 선거부정과 부패를 양산하며, 대중의 공의를 수렴하지 못하는 현실을 변화시키고 공동체 회복이라는 대중의지의 ‘자유로운’ 발로라는 점에 대해 깊은 공감과 함께 연대의 정을 표한다.

우리는 현 종단 집행부와 중앙종회가 이제라도 열린 마음으로 이런 대중의지에 부응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대통령의 파면 사유가 ‘국민의 신의를 저버렸다’는 것이었다는 점을 반추해 본다면, 현 집행부와 중앙종회가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위임받은 권력’으로서 대중과의 신의를 지키는 것인지 자명한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공동체를 위한 마지막 헌신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은 위기상황이다. 1994년 종단개혁의 정신을 다시 한 번 되새기고, 지금 여기 우리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 다시 한 번 개혁의 발걸음을 내딛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필연적인 시대적 요청이기도 하고 오늘을 살고 있는 불교인들에게 주어진 엄중한 책무이기도 하다.

우리 <신대승네트워크>는 종단개혁 23년을 맞이하여 금년을 불교공동체의 진정한 회복을 위한 크고 작은 열린 토론의 광장을 만드는 일에 집중하여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밝힌다. 이를 실제화하기 위하여 우선 몇 차례에 걸쳐 멀리는 종단개혁 이후 20여년, 가까이는 33대, 34대 집행부의 8년을 냉정하고 구체적으로 평가하고 다가올 10년의 미래를 토론하는 장을 열 것이다.

이를 통해 현재 만연하고 있는 각자도생의 문화를 극복하고 종도 참여를 통한 공동체 회복에서 한국불교의 희망을 찾고자 한다. 우리는 <불교시민사회>의 입장에서 일반 시민사회와의 연결 지점을 고려하고, 촛불광장을 통해 형성된 사회적 의사소통 환경과 보조를 맞추면서 우리의 대안과 실천을 만들어 갈 것이다. 그것이 94년 종단개혁의 정신을 이어가고, 그 당시 참여했던 모든 이들의 서원을 이루는 또 하나의 길이라고 확신한다.

불교와 사회를 잇는 신대승네트워크는 1994년 종단개혁 23주년을 맞이하여 종단개혁 정신의 계승을 다짐하며, 다시 한 번 우리 마음에 있는 이기(利己)의 그릇을 비우고 중생의 고통을 채우며, 붓다의 가르침에 하나가 되기를 마음 깊이 서원한다.

나아가 불교혁신의 역사를 계승하여,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시대정신을 명철히 살피고 다함께 행복한 삶을 위해 세상을 향도해 가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문명대전환의 시대를 예비하고자 하는 여러 대승의 스승과 도반의 지혜를 모아 나아갈 것을 부처님 전에 발원한다.


2017년 4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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