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주제 영화 쏟아져
선악이분법·동화 수준 담론

‘영화’ 매체 그림과 같아
작가 관점서 대상 그려내
가치판단 객관성 결여

오락매체 한계, 후유증 심각
오락으로 가볍게 소비해야

영화 〈내부자들〉, 〈더 킹〉, 〈마스터〉, 〈재심〉, TV드라마 〈김과장〉, 〈힘센 여자 도봉순〉, 〈피고인〉, 이들의 공통점은? 흥행을 했거나 하고 있다는 점 외에 정의라는 주제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사회부조리나 사회악에 대한 억울함을 시원하게 풀어헤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미디어의 속성상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다.

〈내부자들〉은 검찰, 언론, 기업이 하나가 되어 사회부조리를 형성하고 힘없는 사람이 희생이 되는 구조를 파헤쳤다. 주인공 조폭과 정의로운 검사는 합심하여 부조리를 척결한다. 정말 그렇게 되면 좋으련만 영화에서처럼 될 확률은 거의 없다.

〈더 킹〉에서는 검찰, 언론, 기업에다 청와대까지 연관되는 유착관계를 보여준다. 이 영화에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권력의 핵심에 붙어 생존하는 한 정치 검사의 생존법을 비판적으로 보여준다. 항상 영화적 재현의 문제는 현실이 다 그렇게 돌아가는데 그렇지 않은 검사를 등장시켜 그것을 저지한다는 데 있다. 모두가 한 방향이라면 그건 문제가 아니라 상식적인 방향일 수도 있는데 생각이 다른 반대 검사는 언제나 정의로운 것일까?

〈마스터〉 역시 우리 주변에서 권력을 등에 업고 생존해 가는 큰 손 인간과 그를 비호해주는 정치권력의 부조리를 고발한다. 정경유착의 고리를 만화적으로 희화화 시켰다. 정치적 도움을 부조리로만 평가한다면 그런 조건 없이 존재하는 현실이 실제 가능하기라도 한가? 그렇지 않다면 정치가들은 왜 자신들이 정권을 잡아야 한다고 외치는 것인가?

〈재심〉 역시 억울하게 누명 쓴 인간과 그를 몰아간 정치권력과 검, 경찰 세력의 부조리를 그리고 있다. 실화이기도 한데 영화에서 그려진 이면의 반대 상황을 일방적으로 무시하고 한 방향으로만 해석하여 항의를 받기도 한다.

이들 영화나 드라마가 유행하는 데에는 심각한 후유증이 따른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정의담론이 선악이분법적이고 어린이 동화수준의 담론이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오락영화 혹은 오락적 TV 드라마가 갖는 한계 때문이다. 문제는 그런 유치한 담론이 퍼져 나가 사회담론 전반을 차지하여 여야정치가들의 대국민 선전 담론으로 활용되기까지 한다는 점이다. 그런 영화들은 우리의 정치수준을 오락영화의 담론수준으로 낮게 끌어내린 장본인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영화인들은 자신들이 만든 영화가 국민들의 정치수준을 끌어올렸다고 자부하는 시대착오자들도 있다. 마치 특정 영화가 국민들의 민주화 수준을 올렸다는 그런 식이다.

흑백논리, 선악이분법적인 가치 기준으로 사회정의를 논한다면 그건 초등학생들의 동화적인 수준이지, 객관적이며 과학적인 근거는 분명 아닌 것이다. 영화라는 매체의 속성은 현실에서 하나의 주장만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라는 매체를 거울이나 그림으로 비유한다. 거울은 그 거울의 상태에 따라서 반영되는 현실이 달라지게 마련이고, 그림은 화가가 위치한 단 한 군데의 관점에서만 대상을 그릴 수 있다.

이렇게 다른 가치관, 소위 다양성을 수용하지 못하는 특성을 갖는 불구의 매체를 갖고 사회정의가 어떻다고 가치판단 해 버리면 그건 주관적인 의견 제시일 뿐이지 결코 객관성 있는 담론이 될 수 없다. 해결방법은 간단하다. 영화나 드라마 내용을 단지 오락으로 가볍게 소비하면 된다. 일부 언론들이나 정치가들이 정의가 재현된 듯 다루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의 내용이나 대상은 정의가 아니라 오락이다. 오락의 그릇에 담긴 내용물은 그저 오락일 뿐이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