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은 ‘경험’을 방해한다
‘생각’은 ‘경험’을 방해한다
  • 박태수 제주국제명상센터 이사장
  • 승인 2017.04.10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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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은 세상과의 소통 ⑧

생각하는 자신을 바라볼 때
불순·결핍 원인 알 수 있다
명상이 생각을 멈추게 하면
감각에 흔들리지 않게 된다

 

습관으로 인해 뇌가 멈춘다
마음은 수련을 거치지 않으면 주변 상황으로부터 쉽게 유혹 받는다. 또한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의 과정에 대해 잘잘못을 의식하지 못한 채 되풀이한다. 두히그(2012)에 따르면 우리에게 어떤 습관이 형성되면 뇌가 의사결정에 참여하게 되는 것을 완전히 중단한다. 왜냐하면 습관으로 인해 뇌가 할 일이 없어져 부지런하게 움직이는 것을 멈추거나 다른 일에 관심을 갖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명상수련은 이러한 우리의 마음을 깨어있게 함으로써 뇌의 활동을 도와 습관적인 삶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한다.

깨어있다는 것은 마음의 작용을 감지하고 있는 것, ‘지금’의 내 생각을 보는 것이다. 내 생각들을 움직이게 하는 저변의 태도와 감정을 지켜보면 내 생각동기가 불순하거나 부정적이거나 뭔가의 결핍에서 오는 것일 때 그것을 알아챌 수 있다. 내 생각 속에 그런 종류의 에너지가 들어 있음을 감지할 때는 다른 종류의 에너지로 교체할 수 있다.

오래 전의 일이다. 이른 새벽 아내와 함께 산책을 할 때면 이웃집 앞을 지나갔다. 그때마다 그 집의 개가 쫓아오면서 짖었다. 기껏해야 머리 밑에 괴는 베개만한 것이 나를 무섭게 하였다. 다 큰 어른이 그 정도가 뭐 그리 무섭냐고 하겠지만,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 먹어도 물릴 것 같은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래서 그 집 앞을 지나갈 때면 아내더러 그쪽 방향으로 서게 하고 나는 개가 잘 볼 수 없도록 아내 옆에 바짝 붙어서 갔다. 맘속으로 아내는 물려도 괜찮고 나만 안전하기를 바라는 것 같아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에게는 개를 무서워하는 공포증이 있다. 그러니까 벌써 20여 년 전 일이다. 지금처럼 이른 아침 산책길이었다. 그날도 가끔씩 보이던 개가 나를 따라왔고, 그냥 나를 좋아하나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걸어가는데 그만 내 발목 뒷부분을 물었다. 나는 깜짝 놀랐고, 그 순간 개에게 물리면 광견병에 걸린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일어났다. 개 주인에게 전후사정을 얘기했더니 주인은 별일 아니라며 개의 털을 태워 그 기름을 발라주었다. 그러나 마음이 놓이지 않아 병원에 가서 예방주사를 맞았고 지금까지 별탈은 없었으나 그 이후 개를 보면 물릴 것 같은 불안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명상을 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것조차 다루지 못한다는 생각에 부끄럽기도 하여 걷기명상을 통해 두려움을 치유해 보기로 하였다. 나의 유일한 관심은 오직 의도적으로 마음을 내어 알아차리는 것이었다. 그 집 앞에 갈 때는 마치 아픈 사람처럼 천천히 걸었다. 개가 있는 집 쪽으로 둘러보고자 할 때는 ‘봄, 둘러봄’이라고 알아차렸다.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오른발, 왼발’이라고 알아차렸다. 또한 발을 들어 올리는 시작부터 발을 내려놓는 끝까지의 움직임에 주의를 집중했다. 나는 주의를 발걸음에 집중하며 걸었다. 다소 긴장은 됐지만 오로지 발걸음에만 주의를 집중함으로써 개로 인한 두려움에서 멀어질 수 있었다. 그러는 가운데 나는 그 집 앞을 지나가게 되고, 개는 다시 제 집으로 들어가며 짖는 소리도 점점 줄어들었다.

이렇게 해서 나는 개가 짖거나, 뛰어오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고 오로지 걷는 일에만 주의를 보냄으로써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명상치유 활동을 여러 차례 되풀이하는 동안 나의 두려움은 점차 줄어들었고, 그 개도 나의 무관심을 알아차렸는지 더 이상 나에게 관심을 두지 않게 되었다. ‘세상은 나의 반영이다’라고 했듯이 내가 개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게 되자 개도 나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이제 두려움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나 편안하게 그 집 앞을 지나갈 수 있다. 나는 개에 대한 두려움을 치유하게 되면서 생활 속에서 더욱 더 주의를 내면세계에 두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명상태도를 갖게 한 이웃집 개에게 감사했다. 그는 나의 인생길을 안내한 또 한 분의 스승이 된 것이다.

생각 멈출 때 경험할 수 있다
우리의 삶에서 ‘생각’은 ‘경험’을 방해한다. 그러므로 삶을 생생하게 경험하기 위해서는 생각을 멈춰야 한다. 우리 인간에게는 살아가는 동안 신체적인 고통과 감정, 생각들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Assagioli(1979)에 의하면 인간은 자신의 삶에서 과거에 대한 후회나 미래에 대한 불안, 성격의 결점 등 자신의 회로(self-circuit)에 동일화되어 이것의 지배를 받는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를 관찰하여 자기와는 다르다고 하는 의식화, 즉 낡은 이미지를 부정하고 새로운 이미지를 생성하는 탈동일화(dis-identification)를 할 경우에는 동일화 상태로부터 벗어나서 자기회로를 지배하고 제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내 안에 있는 관찰자가 생각하는 자와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으면 생각으로 인한 정서적 반응이 감소하게 되는 것이다.

명상은 생각의 흐름을 멈추게 함으로써 정서를 변화시킨다. 생각의 대상을 관찰하는 것이 명상이다. 생각에 무엇이 지나가더라도 평가하거나, 판단하거나, 비난하거나 하는 일이 없이 그저 지켜본다. 생각의 대상, 생각의 내용물을 지켜보면 그 생각은 사라지고 생생한 현실만 존재한다. 그래서 생각을 관찰하면 삶을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다. 다음은 개인의 삶에서 겪는 심리적 갈등을 명상을 통해 해결해 가는 사례이다.

L부인은 평소에 생각을 많이 한다. 그녀의 삶의 신조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불필요한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녀가 필요한 말만 하려다보니 자신의 말이 필요한 것인지 아닌지 생각하게 되고, 생각하다보니 말을 많이 하지 않게 되었다. 이러한 L부인의 신조는 상대방과 대화를 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상대방에 대한 평가기준을 만들게 되고 그 기준에 따라 대화하게 된다. 이를 테면, ‘저 사람은 얼굴은 잘 생겼지만 학식이 부족해, 그러니까 가벼운 얘기나 하지 뭐’ ‘저 사람은 내 말을 잘 듣지 않고 자기말만 하니까 이 쯤에서 대화를 끝내야겠어’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온전히 상대방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그 생각을 하면서 상대방을 만나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자신에게도 이와 같은 생각을 함으로써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생각에 의해 자신을 바라보게 되었다. 이를 테면, ‘나는 공부하는 사람치고는 별로 달라진 게 없어’ ‘내 자신도 잘 다스리지 못하는 데 내 자식들을 어떻게 잘 키울 수 있겠어’와 같은 생각을 함으로써 자신에 대한 존중감을 떨어뜨리거나 좌절하게 되었다. 그녀의 생각은 점차 부정적으로 흘러 삶 자체에 활력을 상실하게 하였다. 이러한 그녀의 사고 패턴은 남편에게도 적용되었다. 그녀는 평소 남편과 잘 지내고 있으나 가끔 불만족스럽다. 그것은 잠자리에서 나누는 사랑 때문이다. 사랑을 나눌 때 그녀는 종종 ‘내가 이런 행위를 해야 하나?’라든가 ‘하기 싫으니까 하기 싫다고 말을 할까?’와 같은 생각을 함으로써 사랑행위에 온전히 몰입하지 못하였다. 이처럼 L부인은 매순간의 삶에 ‘불필요한 생각’이 끼어들면서 그 순간의 삶을 ‘생생하게 경험’하지 못하였다.

L부인은 명상을 통해 매순간 자신에게 일어나는 생각과 느낌을 관찰하기로 하였다. ‘나는 공부하는 사람치고는 별로 달라진 게 없어’와 같은 생각이 일어나면 ‘나는 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구나’라고 알아차렸다. 이러한 생각이 일어날 때마다 그 생각을 반복하여 알아차림으로써 생각의 횟수가 점차 줄어들었고 자신에 대한 존중감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그녀는 남편과의 잠자리에서도 ‘내가 이런 행위를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면 ‘사랑나누기를 힘들어 하는구나’라고 알아차리면서 그 생각을 바라보았다. 그러면 지나갔다. 이처럼 어떠한 생각이 떠오르면 그 생각을 따라가지 않고 ‘이런 생각이 떠오르네’라고 알아차리고 원래의 대상인 사랑이 행위로 돌아갔다. 물론 L부인의 부부사랑도 회복되었다. 생각은 과거나 미래의 일이고 실재하는 현상이 아니다. 그러므로 알아차림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생각이 일어났네’ 하고 알아차리는 순간 마음은 현재에 돌아오고, 알아차리는 마음으로 앞의 생각은 사라진다. 이와 같이 알아차림을 놓치지 않고 계속 이어간다면 어떠한 행위도 조절할 수 있다.

우리는 살면서 수없이 많은 대상을 만나면서 관계를 맺거나 지나친다. 안이비설신의로 밖의 대상인 형상, 소리, 냄새, 맛, 감촉, 생각 등으로 끊임없이 들어오는 감각대상과 만난다. 마음이 평화로워지고 삶이 단순해지려면 만남이 일어나는 현상을 아무런 생각의 개입 없이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야 한다. 만일 눈으로 들어오는 대상인 어떤 여인을 보았다고 하자. 일반적으로 우리는 ‘아, 예쁘다. 몸매가 곱네, 말이라도 한번 걸어봤으면’ 하는 등으로 나 자신의 생각을 개입시킨다. 그러면 그때부터 마음은 지금 이곳에서 벗어나 그 여인이 있는 공간으로 이동하게 되어 현재 하고 있는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그러나 명상의 상태에 있으면 그 여인이라는 대상을 ‘사실 그대로, 있는 그대로의 사람’으로 알아차림으로써 어떠한 감각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의 삶은 생각에 따라 일어난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의 바탕이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각은 피할 수 없으므로 알아차릴 수밖에 없다. 생각을 알아차린다면 분별에 따라 다른 생각의 방해 없이 온전히 경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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