道伴의 향기- 문화재감정관실 불자회

전국 국제 공항, 항만의 문화재감정관실 불자회 회원들이 본지 인터뷰를 위해 어렵게 모였다. 사진은 불자회 회원들이 불단의 공양구를 감정하고 의견을 나누는 모습.

해외여행이나 출장을 위해서 꼭 거쳐야 하는 관문이 있다. 바로 국제공항과 항만이다. 공항과 항만은 여객기와 여객선을 탑승하기 위한 터미널 역할을 하지만, 다른 역할 중 하나는 안전한 여행이 될 수 있도록 승객들의 물품을 검색하는 것이다. 이용해 본 사람들은 알지만, 국제공항과 항만에서는 꽤 까다로운 검색 절차를 거친다.

다양한 물품이 해외로 오가는 공항과 항만에서 검색대를 주시하고 있는 것은 보안 요원만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움직이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 중에서 불교와 가장 많은 연관이 있는 곳은 문화재청 문화재감정관실이다. 공항에 왜 ‘문화재 감정이냐’고 물음표를 제시할 수 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길.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대한민국의 관문에서 해외로 문화재의 밀반출을 시도할 사람은 없을지. 혹은 도난 문화재를 반입하려는 사람은 없을지. 국제공항과 항만에 있는 문화재청 감정위원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문화재 불법 반출을 막기 위해 24시간 고군분투를 하고 있다.

문화재 감정위원, 누구세요
전국 19개 국제 공항·항만서
여행객 문화재 반출 감정업무
25명 상근·30명 비상근 근무
수사협조·검색요원 교육 등도

‘문불회’ 창립한 이유는
불교문화재 감정 능력 향상위해 
2012년 창립… 사찰·박물관 답사
상임 감정위원 12명으로 구성돼
3명은 조계종 성보위원 활동도

‘불자’ 문화재 지킴이들
문화재감정관실은 1962년 관련 법령이 제정되고, 1968년 2월 김포 국제공항과 부산 수영비행장에 처음 설치되면서 시작됐다. 현재는 전국 국제공항 8개소, 국제항만 5개소, 남북출입사무소 2개소, 국제우편 2개소, 기타 2개소 등 모두 19개소가 운영 중이다. 문화재 감정관실 인원은 총 55명이며 상근직은 25명, 비상근직은 30명으로 구성돼 있다.

문화재 감정위원들은 대부분 자신의 전공을 가지고 있고, 이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분야가 ‘불교미술’이다. 불교미술 전공자면서 불자인 감정위원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단체가 ‘문화재청 감정관실 불자회(이하 문불회)’다.

불교문화재 감정 능력 향상을 위해 2012년 창립한 문불회는 상근 감정위원 12명(불교 공예 2명, 불교 조각 6명, 불교 회화 4명)으로 구성돼 있다. 사실상 상근직 절반이 불자인 셈이다. 실제 이들 중 안귀숙, 이숙희, 최선일 위원은 조계종 성보보존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이들 불자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기본적으로 각 공항·항만 운항 스케줄을 바탕으로 근무가 이뤄지는 까닭에 시간이 되는 위원들이 모여 사찰, 박물관 등을 순례·답사하며 신행활동을 한다.

이숙희 문화재 감정위원(인천항 문화재감정관실)은 “불자회 회원들끼리 화상 회의를 하며 새로운 정보를 교류하고 공부도 한다”면서 “사찰에 가면 기본적으로 신행과 연구는 자연스럽게 함께 이뤄진다. 연구가 곧 수행이자 신행”이라고 말했다.

최선일 문화재 감정위원(인천공항 문화재감정관실)은 “각자 신행과 연구에 매진하면서도 굿월드 자선은행 등 봉사단체에 후원하는 보시행에도 힘쓰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통기법 관련 현장 학습으로 오세종 개금장 작업실 견학한 모습. 사진 제공= 문불회

문화재 밀반출 막는 최후의 보루
문화재 감정관실은 우리 문화재가 해외로 나가는 것을 막는 최종 방어 라인, 즉 ‘마지노선’이다. 정확하게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유물이나 미술 작품들을 감정해 반출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이들의 임무다.

안귀숙 문화재 감정위원(김포공항 문화재감정관실)은 “50년 이상 전에 만들어진 작품과 유물의 문화재적 가치를 감정해 반출 여부를 판단하는 게 감정관실의 업무”라면서 “또한 수사기관의 요청이 있을 경우 협력하고, 공항과 항만 검색 요원들을 교육해 문화재 지식을 배양하는 것도 감정위원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이경화 문화재 감정위원(무안공항 문화재감정관실)은 “일반적으로 비문화재 확인 신청을 접수받아 감정한 뒤 반출 여부를 결정해준다”면서 “최근에는 이용객들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출국 3일 전까지 문화재청 홈페이지를 통해 사전예약감정을 받는 제도도 실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이 발전함에 따라 공항과 항만이 커진 만큼 문화재 감정위원들의 임무도 방대하고 밤낮을 가리지 않는다. 말 그대로 ‘불철주야(不撤晝夜)’의 삶이다.

공항과 항만마다 차이가 있지만 모든 문화재 감정위원들은 기본적으로 첫 운항 스케줄 2시간 전에 출근을 완료해야 한다. 비행기와 배의 화물 반입 업무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인천국제공항의 경우 24시간 3교대로 업무를 진행하고, 대구·청주·김포공항 등은 오전 5~6시에는 감정업무가 시작된다. 퇴근은 운항 스케줄 종료 30분 전이 돼야 가능하다. 하지만, 기상 악화 등으로 비행기와 배 운항이 지연될 때는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이들 감정위원이 감정하는 건수는 하루 평균 30여 건. 많을 때에는 100~300건도 감정한다. 절대 만만한 업무량이 아니다. 그나마 남는 시간에는 감정위원으로서 실력을 향상하기 위해 전공 분야 연구도 진행한다.
그럼에도 감정위원들은 문화재 유출을 막는 지킴이라는 자긍심으로 자신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에 대해 안귀숙 위원은 “계속 물류가 반입되기 때문에 감정위원은 긴장을 늦춰서는 안된다. 또한 실력도 계속 유지·향상시켜야 돼 전공 관련 연구도 계속해야 한다”고 밝혔다.

최선일 위원 역시 “문화재 해외 유출을 막는 최전선에서 지키고 있다. 사명감이 없으면 절대 못할 일”이라고 설명했다.

불상 내에서 발견된 조성발원문을 바탕으로 도난 장소를 찾는 모습. 사진 제공= 문불회

“불교미술은 운명… 사명감으로 일해요”

감정관실 하루 일과 궁금해요
첫 스케줄 출발 2시간 전 출근
퇴근은 마지막 일정 30분 전에
하루 평균 30점 이상 감정 진행
많을 땐 100~300점 가량 감정

도난 문화재 환수에 대해서
지난 30년간 도난 성보 17% 회수
한국 유통 막히자 해외로 눈 돌려
감정위원 역할 나날이 중요해져

감정하다보면 별일 다 있네
인터뷰에 참가한 불자 감정위원 4인은 짧게는 8년에서 길게는 33년 경력의 소유자다. 그러다 보니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에피소드 1~2건은 갖고 있다.

최선일 위원은 한 일본 유학생의 일화를 털어놨다. 일본의 한 대학의 대학원에 유학 중이던 학생이 자신의 집에 있던 18세기 백자 항아리를 일본 교수에게 선물하기 위해 이를 공항 문화재감정관실에 가지고 왔다. 하지만, 문화재적 가치가 뛰어나 해외 반출이 금지됐다.

그는 “집에 있는 도자기를 일본인 교수에게 선물할 정도면 제법 부자였을 것”이라며 “문화재감정관실을 방문해 반출이 불허되면 다시 가지고 돌아가면 된다. 이 절차가 없이 검색대를 통과하다 적발되면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고 강조했다.

인천공항서 근무하던 시절, 이숙희 위원은 실제 상습 문화재 밀반출 업자를 적발하는 성과를 냈다. 건국대 우체국 직원이 몇 년째 고서를 중국으로 국제특송(EMS)로 보내는 조선족을 수상히 여겨 인천국제공항 감정관실에 신고했고,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 등과 협조해 우편물을 검색해 검거했다. 조사를 하니 피의자는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조선시대 고서적을 129차례 국제특송으로 중국으로 보냈고, 결국 법의 처벌을 받게 됐다.

감정위원들은 때로는 마치 첩보전을 방불케 하는 작전을 펼치기도 한다. 안귀숙 위원은 “어느 날 사무실에 오면 문틈으로 쪽지가 들어와 있다. 그럼 해당자를 기관에 알려 검색하도록 한다. 물론 가짜 제보도 많다”고 설명했다.

이숙희 위원은 “유물과 미술품 등을 지속적으로 해외로 반출하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 이들에 대한 제보가 오면 현행범으로 잡기 위해 검색대를 오가며, 검색요원들에게 사인을 보내 해당자를 강하게 검색하도록 유도한다”고 밝혔다.

불자, 불교미술 전공자, 사명
불자이면서 불교미술 전공자로서 감정위원이라는 직업을 가진 문불회 회원들은 지금의 삶을 운명처럼 받아들였다. 불자로서 미술사와 사학을 학부 전공했고, 자연스럽게 불교미술을 업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1982년 비상근 감정위원으로 시작, 1988년 공채로 상근 감정위원으로 임용돼 33년동안 활동하고 있는 안귀숙 위원은 “불교미술은 내 운명”이라고 말했다. 그는 “친할머니가 안양 삼막사의 큰 시주자였지만 가톨릭인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자 집안 가족들이 모두 영세교육을 받았다”면서 “미술사 전공이었던 나는 불교미술을 선택했고, 불자로 남았다. 이후 전국 사찰을 다니며 범종을 주제로 석사 논문을 썼다”고 술회했다.

이숙희 위원은 “누구나 그렇듯 집안이 불교였다. 사찰에 가는 게 좋았고, 법당에 들어서면 마음이 편해졌다”며 “대학에서 사학을 전공하고, 편하게 접할 수 있는 불교에 끌렸다”고 설명했다. 이숙희 위원 역시 비상근으로 시작해 상근 감정위원이 된 20년차 베테랑이다.

최선일 위원은 경영학을 전공하다 불교조각으로 전향했고, 12년 간 감정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8년 경력의 이경화 위원 역시 “남아있는 우리 문화재 중 7할이 불교문화재다. 역사 전공자로서는 당연한 선택이었다”고 담담히 말했다.

문화재감정위원들이 공항, 항만의 보완요원들에게 문화재 교육을 하고있는 모습. 사진 제공= 문불회

도난 성보 환수에도 ‘한 몫’
문화재 감정위원들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도난 문화재에 대한 수사와 환수에 대한 협조다. 지난 3월 제자리로 돌아간 부여 무량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은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1971년 부여 무량사 5층석탑 해체 보수 중 아미타삼존불과 관음보살상이 발견돼 충남유형문화재로 지정됐으나 1989년 전부 도난당했다. 이후 3구는 2001년 절도범을 검거하면서 찾았지만, 1구는 행방이 묘연하던 것을 인천 송암미술관의 신고로 찾게 됐다.

이를 감정해 미술관 측이 신고를 할 수 있도록 독려한 감정위원이 바로 최선일, 이숙희 위원이다. 이들은 박물관이 유물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감정위원으로 참여해 해당 유물이 부여 무량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이며 도난 문화재임을 확인해줬다.

최선일 위원은 “미술관에 가서 문화재를 감정하는 데 무량사에서 도난된 금동불이 있어 깜짝 놀랐다”며 “미술관 측에 신고·반환할 것을 제안했고, 이를 잘 풀어냈다. 이런 일을 할 때마다 불자 감정위원으로서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제자리에 있을 때 가장 빛나는 성보와 문화재들은 지금도 도난되고 있다. 문화재청과 조계종이 발간한 <불교문화재 도난백서>에 따르면 1985~2015년 동안 2만7650점이 도난됐고, 회수된 것은 4697점, 17%에 불과했다. 80%이상이 아직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했고, 성보가 가장 많이 도난됐던 시기가 1970년대임을 감안하면 그 규모는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이숙희 위원은 “문화재 도난 범죄는 계속 이뤄지고 있다. 도난 문화재에 대한 공문이 계속 감정관실에 온다. 감정 위원들은 이를 숙지하고 있다가 도난 문화재가 해외로 나가지 못하도록 지키는 역할을 한다”면서 “일부 사람들은 감정관실을 부정적으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감정관실이 없으면 도난 문화재들은 모두 국외로 유출됐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최선일 위원 역시 “요즘에는 소더비와 같은 해외 유명 경매시장에 출품시켜 이를 구입하고 인증받아 선의취득의 근거로 제시하는 경우도 있다”며 “이럴 경우 법적인 문제를 삼기가 어렵다. 우선적으로 도난 문화재를 국외로 못 나가도록 막는 게 중요하다”고 힘줘 말했다.

앞으로 계획들을 묻는 마지막 질문에 문불회 회원들은 공직자이자 불교미술연구자로서 포부를 내놨다.

안귀숙 의원은 전문 분야인 불교 공예에 대한 자료를 수집해 글을 쓰겠다고 했으며, 도난 문화재에 관심이 많은 이숙희 위원은 “도난과 유통과정 분석 등을 파악하고 도난 문화재를 등급화해 도난 범죄 일소에 도움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이경화 위원은 “문화재 감정 폭이 넓어지는 만큼 이를 뒷받침할 실력이 필요하다”며 연구에 매진하겠다고 했다.

문불회 회원에게 전문 감정과 연구는 곧 수행이다. 성보를 지키고, 찾으며, 바르게 전하는 일은 지난한 연구를 이룬 자만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향상일로(向上一路). ‘불교미술’이라는 진리의 외길을 문불회 회원들은 오늘도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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