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할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일초 스님 지음|민족사 펴냄|1만 4500원

 [현대불교=노덕현 기자] 동학사 승가대학서 40여 년 동안 후학을 양성하는 일초 스님과 학인들이 주고받은 편지글을 모은 책이다. 편지에는 스님들의 일상뿐만 아니라 사유체계, 가치관, 숨기고 싶은 감정과 인간관계, 그 시대의 사회상까지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게다가 이 책은 동학사 일초 스님과 비구니 스님들의 편지라는 데서도 알 수 있듯 수행의 길을 걷는 비구니 스님들의 편지이다. 그것만으로도 책장을 들추기 전부터 가슴 설렌다. 첫 줄을 읽는 그 순간 마음은 초록색 힐링이 될 것 같다.

책 속에 소개된 편지들은 서로 안부를 묻고 마음을 나누고, 사유하고, 진리의 길을 걷는 비구니 스님들이 그 마음을 어디로 향하는지, 부처님 가르침을 어떻게 실천하는지에 대한 내용이 아주 생생히 묘사됐다. 비구니스님들은 서로 어떤 내용의 편지를 주고 받을까?

〈우리가 사랑할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란 이 책 제목은 일초 스님의 시, ‘내가 사랑할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서 비롯됐다. 74세에 쓴 이 시에서 스님은 세상 모든 것이 사랑임을, 사랑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사랑하며 살아가라고 역설한다.

“남을 비방하고 욕하는 소리가 넘칠 때 남을 칭찬하고 기뻐하는 소리를 더 많이 해서 기쁨이 가득한 세상을 발원해야 합니다. 잘못한 사람에게 질시보다는 연민의 정을 가진 보살의 마음이 그리운 때입니다. 나에게 힘이 있다면 더러운 오물이라도 묻어주고 덮어주는 흙의 힘으로 다시 그것이 자양분이 되어 또 다른 것을 키워주어야 합니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늘 수 있도록 수행자가 앞장서서 기도 발원하고 보살행을 실천해야 합니다.”

일초 스님은 제자스님들로부터 연하장을 받은 새해 새아침에 위와 같은 내용의 편지로 답장해 주었다. 잘못한 사람에게 연민의 정을 가질 수 있는 보살의 마음을 일깨워주고 수행자가 앞장서서 자비행의 릴레이를 하라고 답장해 주는 모습에서 어떠한 마음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깨닫게 된다.

또한 1988년 어느 날 한 학인 스님이 보낸 편지에서는 그 무렵 불교계에 발생한 불미스런 일을 떠올리게 한다. ‘봉은사 사태’가 신도뿐만 아니라 스님들에게도 얼마나 큰 상처를 주었는지 알게 되면서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이러한 설움의 빛깔들이 밀려올 때면 그래도 희망처럼 솟아오르는 스님을 떠올립니다. 어떠한 말로도 그릴 수 없는 스님의 영혼의 강기슭에 묵묵히 침묵보다 진하게 손 흔들고 계신 스님을 바라봅니다. 영혼의 몸살을 앓는 우리들에게 슬픔을 이겨낸 뒤 더욱 아름답고 지고한 순정으로 살아가게 하시는 이 시대의 스님의 삶의 지표 속에서 용기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라면서 일초 스님으로부터 희망을 찾고 새로운 용기를 발견했다는 학인 스님의 편지를 대하면서 독자들 또한 그동안의 가슴앓이를 속 시원히 풀어낸다.

책은 총 4장으로 구성됐다. 1장에는 우리나라 비구니 강백 중 으뜸으로 손꼽히는 일초 스님의 삶과 고뇌를 진솔하게 담은 편지와 일초 스님의 시가 들었다. 2장에는 도반인 서림 스님의 구체적인 일상생활, 삶의 민낯을 생생하게 드러낸 편지, 3장에는 일초 스님께 지도 받은 수많은 제자들의 각양각색의 사연을 품고 있는 편지, 4장에는 일초 스님께 위로받고 싶은 세상 사람들의 고달픈 삶의 애환을 담고 있는 편지가 담겨 있다.

질병, 늙음,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인간관계에서 빚어지는 괴로움 등 삶에 대해 고민하며 서로 마음을 나누는 비구니스님들의 편지를 읽다보면 스님들도 우리 평범한 사람들과 똑같이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생로병사의 근본 고통 속에 흔들리는 존재임을 알게 된다.

아울러 신비하게, 멀게만 느껴졌던 스님들과 한결 가까워진 자신을 느끼게 된다. 스님들도 우리처럼 세상사에 대한 걱정을 하고, 감기, 관절염 따위의 갖가지 질병에 시달리고,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보고 싶어 하고, 인간관계에서 빚어지는 괴로움에 번민하는 등 삶의 굽이굽이마다 고민하는 평범한 인간이라는 것을 엿보면서 마음 깊이 공감하게 된다.

책속의 밑줄 긋기

▲“설움의 빛깔들이 밀려올 때면 그래도 희망처럼 솟아오르는 스님을 떠올립니다. 어떠한 말로도 그릴 수 없는 스님의 영혼의 강기슭에 묵묵히 침묵보다 진하게 손 흔들고 계신 스님을 바라봅니다. 영혼의 몸살을 앓는 우리들에게 슬픔을 이겨낸 뒤 더욱 아름답고 지고한 순정으로 살아가게 하시는 이 시대의 스님의 삶의 지표 속에서 용기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출가는 어떤 것인가?’ 하는 생각이 이제야 솟구치고 있으니 가끔은 저는 세상을 거꾸로 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문제는 이전에 모두 끝내고 왔어야 하는데, 그 무거운 무게의 짐을 이곳까지 떠메고 왔으니 왜 그렇게 사람이 어리석은지 모르겠습니다. 그릇은 작은데 너무 많은 걸 담으려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 아름다운 계절, 봄입니다. 왜 이렇게 봄은 해가 갈수록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지요. 지금은 붉은 영산홍·철쭉의 꽃잔치가 자못 흥겹고, 파릇한 나뭇잎들의 아름다움도 견줄 수 없을 만큼 황홀합니다.

산하대지가 모여 축제를 합니다. 그 중에 오직 사람만이 축제에 내 놓을 것 없이 남의 축제에 기웃거리는 것 같은 마음이 들어 몇 자 적어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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