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과 꽃

김왕근 지음|불광 펴냄|1만 5천원

[현대불교=김주일 기자] 만으로 열일곱이던 1966년, 도법은 김제 금산사로 출가한다. 2년 뒤인 1968년,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은 도법 스님, 출가자는 세속과 인연을 끊어야 한다는 가르침에 따라 평소처럼 생활한 그를 한 사미승이 불러냈다. “어머니가 위독하시다는데, 니가 아무리 중이지만 어머니 아들이다.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느냐.”

도법 스님이 걸어온 생명평화의 길 조명

2004~2008년 생명평화 탁발순례 펼쳐

너와나를 함께 살리자는 취지서 비롯해

이 말에 ‘어머니’가 아닌 ‘삶과 죽음’ 문제가 가슴에 사무친 도법 스님은 죽음을 경험해보자는 데까지 생각이 미친다. 한밤중 다리 위에 선 그는, 장마로 물이 불어난 하천을 바라보다 퍼뜩 정신을 차린다. “아, 여기서 뛰어내려서 죽으면 삶이 끝나니까, 죽음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죽고 마는 것이구나.” 도법 스님〈사진〉은 삶과 죽음의 문제를 풀고 싶었다. 금산사에 가만있어서는 그럴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도법은 은사 스님께 말씀드리고 합천 해인사로 길을 나선다.

 

간디와 화엄경

당시 해인사는 한국 불교의 수도였다. 성철 스님(1912~1993)이 구축한 엄격한 수행 가풍 아래로 도(道)를 찾는 수많은 승려들이 운집했다. 도법 스님 역시 문제 해결의 기대를 품고 해인사로 향했다. 하지만 성철 스님 가르침으론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이후 도법 스님은 김천 수도암, 순천 송광사를 거쳐 다시 해인사를 돌며, 참선해서 도인이 되겠다고 몸부림쳤다.

그렇게 보낸 10여 년의 끝인 1970년대 후반, 도법 스님은 간디 자서전을 만난다. 인간에 대한 무한한 자비의 마음으로 불살생을 실천했으며, 비폭력 불복종으로 인도 독립운동을 주도했고, 영국 제국주의에 저항하면서도 영국을 미워하지 않은 간디. 그는 힌두교도였지만, 도법 스님에게는 “석가모니 붓다의 정신에 가장 충실한 사람”으로 보였다. 이를 계기로 도법 스님은 붓다의 삶과 불교경전을 ‘사회적’ 시각서 재해석 했다.

그 무렵 도법 스님은 〈화엄경〉도 만났다. 이 경전을 통해, 모든 존재가 서로 평등하게 연결돼 조화롭게 존재했으며 ‘생활이 곧 도(道)’임을 깨달았다. 사회 속에서, 생활 속에서 불교를 실천하겠다고 마음먹은 도법 스님은 1990년, 도반들과 함께 불교의 풍토를 바꾸고자 ‘착한 벗들의 수행 공동체’인 ‘선우도량(善友道場)’ 결사운동을 시작한다.

“오늘 우리가 직면한 불교의 현실은 올바른 수행의 부재로부터 그 원인을 찾는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위로하고, 기뻐하고, 나누는 실천행으로 새로운 승풍을 바로 세워야 한다.”

불교 개혁에 나선 도법 스님은 이후 94년 종단개혁, 98년 종단사태에서 ‘개혁의 아이콘’이 된다.

 

생명평화의 길을 걷다

도법 스님의 이러한 성찰은 1998년 문을 연 ‘실상사 불교귀농학교’, 1999년 창립된 ‘인드라망생명공동체’라는 모습으로 기어코 현실화된다. 이 둘을 통해 도법 스님은 우리 사회가 “세계, 산천, 초목, 부처님, 보살, 중생, 이것과 저것, 시간과 공간, 유정과 무정 등 모두가 함께 어울려 출렁이는 생명의 큰 바다”가 되길 바라는 큰 꿈을 이루고자 했다.

드디어 2004년, 도법 스님은 ‘생명평화 탁발순례’를 시작한다. 그해 3월 1일부터 2008년 12월 12일까지 장장 1,747일 동안 3만 리를 걷고 8만 명을 만난 이 순례를 통해, 상호의존의 세계관과 동체대비(同體大悲, 너와 내가 한 몸임을 자각하여 내는 큰 자비심)의 실천론을 축으로 하는 도법 스님의 생명평화 사상은 완성된다.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때로는 누룽지를 끓여 먹고, 출발지에 집합해서 생명평화백배서원 절명상 하고, 걷고, 점심 먹고, 그날 종점에서 절명상 하고, 저녁 먹고 대화하는 일상을 반복하며 성찰하고 확인한 생명의 구체적 양상이 사상에 생명력을 부여한 것이다. 이전부터도 그랬지만, 이후 도법 스님의 모든 행보는 ‘너와 나를 함께 살리는’ 생명평화의 길 위에서 이뤄진다.

 

정의(正義)를 새롭게 정의(定義)하다

2001년, 도법 스님은 한 인터뷰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부처님은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부처님은 바른 것을 드러내기 위해 어떤 것과도 타협하지 않은 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노해야 할 대상에 화내지 않고 증오해야 할 대상을 미워하지 않고 파사현정(破邪顯正, 삿된 것을 깨뜨리고 바른 것을 드러냄)의 길을 가신 분이 부처님입니다.”

도법 스님에게 정의(正義)란 “한 몸인 너와 내가 함께 사는 생명의 길”이므로, 그는 ‘선(善)’뿐만 아니라 ‘악(惡)’과도 ‘잘’ 공존하는 길을 모색한다. 도법 스님은 악을 뿌리 뽑아 없애는 게 가능한 일도 아니라고 본다. 선악은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붙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악을 증오하지 않고, 악과 마주쳐 상처받지도 말고, 악에게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찾자며 머리를 맞대는 것이 된다. 이런 행보를 밟기에 도법 스님은 수많은 비판에 직면한다.

 

출가 후 50여 년, 도법 스님 중간점검

종교평화선언을 추진하는 과정서 다른 종교(기독교)에 무릎을 꿇는다고 비판 받았고, 조계사에 들어온 한상균 민주노총위원장을 경찰에 내주었다고 비판 받았으며, 세월호 슬픔을 세월호의 기쁨으로 전환하자고 제안해 또 비판을 받았다. 그가 무슨 문제이든 대화로 풀고자 노력하기 때문에, 그 과정서 약자의 편을 드는 대신 강자의 입장을 두둔하는 모양새를 보이기 때문에, 능력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기 때문에 도법 스님은 비판을 받는다. 어디까지가 정당한 비판일까? 비판을 하며 그와 거리를 두고 외면하는 대신, 비판을 하되 그와 함께하며 우리사회를 더 낫게 만들 수는 없을까? 이 책은 문제적 인간, 도법 스님의 입장서 그의 50여 년 승려의 삶을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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