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 아파트서 발생한 화재
경비원 양 모씨 15층을 오가며
화재 알리고, 피난할 것을 재촉

심장병 있던 자신은 목숨 잃어
살신성인의 삶에 사회가 애도

“어디가든 주인공의 삶을 살라”
경비원, 아파트 주인처럼 산 것
주변 삶을 돌아보는 주인공돼야

3월 20일 오전 9시쯤,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 단지 기계실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가족들을 일터와 학교로 내보낸 주부들이 겨우 한숨을 돌릴 때쯤이었다. 예기치 않은 화재에 전기는 끊어졌고, 그 때문에 승강기도 멈추었다. 해당 동에 살고 있는 몇몇 주민들은 승강기 속에 갇혀버렸고, 집안에 있던 사람들은 영문을 모른 채였다. 아파트 주민들에게 닥친 위험에 다급해진 경비원 양 모씨가 15층짜리 아파트 계단을 오르내리며 다급함과 피난을 재촉했다.

다행히도 큰 인명피해 없이 화재가 진압되고, 승강기에 갇혔던 주민들도 무사히 구출되었다. 하지만 주민들의 안전을 위해, 평소 심장질환을 앓고 있던 몸으로 헐떡이며 계단을 오르내렸던 경비원 양 모씨는 아파트 9층에 쓰러진 채 발견됐다. 안타까운 소식에 주민들은 그의 애도를 멈추지 않고 있다고 한다.

몇몇 언론을 통해서 전해진 소식이다. 이 기사를 읽지 못하고 지나친 사람들도 꽤 많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대부분의 이목이 급변하는 정치상황에 쏠려있는 터라 더욱 놓치기 쉬운 기사이기도 했을 것이다. 기사를 읽는 순간 든 생각은 ‘안타깝다’, ‘고맙다’는 마음이었다. 기사를 통해 전해들은 이의 마음이 그랬으니, 당사자인 아파트 주민들이나 그 가족의 마음이야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평소 심장질환을 앓고 있었다면, 다급하게 주민들을 대피시키려던 경비원 양 모씨 자신도 자신의 몸 상태를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멈추지 못했다. 한 사람의 주민이라도 대피하지 못해서 불행한 일을 당하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이, 주민들에게 닥칠 위험을 외면하지 못했던 그의 따뜻한 가슴이, 자신의 지친 몸보다는 먼저 주민들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몰고 갔을 것이다.

그런 순간의 그에게는 주민들이 자신의 가족과 한 치도 다름이 없는 이들이었을 것이다. 화재진압 그리고 인명의 구출은 소방관들에게 맡겨두고, 먼저 자신의 몸을 돌보았다면, 아마도 인명피해는 더욱 커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기 집에 불이 났는데, 자신의 가족이 생명의 위협에 맞닥뜨렸는데, 자신의 몸과 안위를 먼저 돌볼 가장은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그래서 주민들을 구하기 위해 병든 몸을 몰아붙인 그에게서 ‘주인’의 마음, ‘가장’의 책임감을 목격한다.

가치관이 부재하다고 일컬어지는 세상이다. 나만 안전하고 나만 잘 살고 있다면, 남의 불행이나 남의 안타까움쯤이야 쉽사리 외면하고 마는 세상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렇게 치부되는 세상이 우리들이 살아가는 우리들의 터전이고 우리 삶의 공동체인 대한민국 사회이기도 하다.

내 가족에게 불행이 닥친다면 어느 가장이 그 불행에 맞서지 않을 것이며, 내 가족의 행복이 위협받는다면 어느 가장이 외면하겠는가? 아파트 주민들의 삶을 지키는 경비원 양 모씨에게 그 아파트는 단지 그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위한 일터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의 삶이 거기에 있었고 그의 또 다른 가족들이 거기에 있었을 것이다. 그에게 그 아파트는 자신이 지켜야 할 가족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수처작주(隨處作主)! 임제의현 선사가 남긴 말이다. 어디에 가든 주인공으로서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어디에 가든 가장으로서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남 탓하며 살아가기 바쁜 우리들에게는 뜻 모를 말이기도 하다. 뜻이야 알아도, 그렇게 살기는 쉽지 않은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조금만 내 주변을 돌아본다면, 조금만 내 주변의 힘든 이들을 관심에 둔다면, 마음에서 떼어놓기 쉽지 않은 말이기도 하다. 오늘 ‘의인’을 만나 내 삶이 주인공의 삶인지 되짚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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