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불교거사림

좌복이 가지런히 놓이고 부산불교거사림 회원 거사들이 하나둘씩 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이들은 45년간 청중으로 때로는 법사로 대중들에게 불법을 전했다. 온화하게 웃는 모습에서는 오랜 수행의 풍모가 엿보인다.

‘청중’자세로 구법행

백봉 거사 강의 듣고

구법 열기가 모아져

1972년 7월 31일 창립

매달 2회 법석 열어

 

부산 거사불교 효시

2월 14일 1000회 맞아

법회 동참 총인원 20만 명

〈금강경〉 강의 등 진행

350여 법사 초청해

부처님이 법을 펼치기 위해서는 반드시 청중이 있어야 했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청중이 성취 되었다’란 의미로 ‘중성취(衆成就)’라 한다. 부처님은 법석에 참석한 청중의 근기에 맞게 법을 설했다. 그 후 대기설법(對機說法)은 팔만대장경으로 탄생됐고 모든 경전의 중심이 됐다.

부처님이 오신지 256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법석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청중이 법문을 청하고 듣는 성취는 법석의 핵심이다.

이런 청중으로서 항상 가르침을 받고 보리심으로 이를 행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자신들이 들은 바를 또 다른 법석을 열어 다른 이들에게 전한다. 매달 법석을 연 기간이 무려 45년이다. 그 주인공인 ‘부산불교거사림’(회장 공병수)을 부산 법계정사에서 만났다.

2017년 2월 열린 부산불교거사림 1000회 법회

1000회 넘긴 국내 最多 법석

좌복이 가지런히 놓였다. 사람들이 하나 둘 자리에 앉았다. 2월 14일 부산불교거사림은 1000회를 기념하는 특별법회를 마련했다. 그 후 한 달이 지난 3월 14일, 1002회로 열린 법석은 소란스럽지도 별나지도 않았다.

법당에 모인 사람들은 삼귀의로 마음을 잡고 <반야심경>을 낭독하며 법을 마음에 새겼다. 청법가로 법사인 스님에게 법문을 청했다. 법석은 기본 중에 기본만으로 갖춰 평범하다. 마치 공기처럼 물처럼 무색무취로 평범해 보이지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함이 반조돼 비친다.

공병수 부산불교거사림 회장은 이날 찾아온 대중에게 인사말을 전했다. 공 회장은 “한 말씀이라도 들어라!”라고 했다. 이 말을 강조하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 불교 수행에는 수많은 방편이 있지만 오직 부처님의 한 말씀을 듣기 위한 것이라 했다. 스쳐 지나가듯 듣더라도 한번 들었던 부처님 말씀은 의문이 되고 언젠가는 수행의 인연이 된다는 뜻이 담겨 있었다.

‘정법포교’는 부산불교거사림의 원력이다. 정법포교란 오직 부처님의 바른 법으로만 포교하며 더 많은 사람들이 법을 듣도록 돕는다는 것이다.

부산불교거사림의 법회에는 그래서 대중의 구분이 없다. 오히려 거사림 회원보다 일반인들이 더 많다. 이날은 부산대 로스쿨 불교동아리 법륜회와 동아대 로스쿨 불교동아리 법등회 소속 50여 명의 학생들이 참석했다.

공 회장은 “젊은이들을 보니 희망적이다. 요즘 TV와 라디오 등 여러 미디어를 통해 많은 법문을 듣는 것도 고무적이지만 대중의 눈을 마주보며 살아 있는 법문을 듣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공 회장은 80세라는 나이에도 로스쿨 학생들을 부르는 목소리는 힘찼다.

이 시대 지성인이라는 미래 법조인을 향해 공 회장은 “부처님이 인생의 답”이라며 3000배를 권했다. 공 회장은 “현재 부산불교거사림의 숙제는 법회를 이어갈 젊은 사람들”이라며 “법회의 소중함을 알고 더 많은 불자들이 참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은 조계종 고시위원장 지안 스님이 법문을 이었다. 지안 스님은 “성공한 삶을 위해 많은 이들이 노력을 하지만 자신을 모른 채 살아간다”며 대중들에게 자신의 삶을 돌아 볼 것을 권유했다. 스님은 성공 뿐 아니라 참된 행복의 길을 위해서는 자신을 바로 알아야 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 스님은 “불교는 나 자신을 공부 하는 것”이라며 자신에 대해 숙고하고 생각해 보길 반복해서 설법했다. 아울러 젊은 불자들에게 “스님으로 사는 것도 얼마나 행복한지 아느냐”며 한국불교의 수승함을 강조하며 출가를 권유하고 참된 삶에 대한 혜안을 갖출 것을 소원했다.

2003년 6월 24일 부산불교거사림 총회에 참석한 故이인희 전 회장과 거사들의 모습.

정법 전법의 교두보로 출발 45년

부산불교거사림의 출발은 단촐했다. 양흥모 대한불교신문(現불교신문) 부산지사장은 1972년 6월 경 한국의 유마거사라 불리는 백봉 김기추 거사를 초청해 금강경 강의를 열었다.

강의에 참석한 거사들 중 김석배, 이인희, 김경수 거사 등 16명은 정기적인 법석을 마련해야 한다고 뜻을 모았다. 이들은 기복적인 믿음에 맞춰 설명할 수밖에 없는 스님들의 현실은 공부하지 않는 대중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깊이 있는 법석으로 참된 행복의 길이 불교에 있음을 알리고 자신들의 공부도 성숙하기를 간절히 발원했다.

창립 회원들은 매주 금요일 법회를 열기로 결심을 하고 석암 스님을 증명법사로 추대했다. 이들은 1972년 7월 31일 김석배 거사를 1대 회장으로 거사불교의 효시를 알렸다.

하지만 금요일마다 법회를 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장소가 큰 문제였다. 장소를 구하기가 무엇보다 힘들었다. 9월 29일 통도사 경봉 스님을 첫 법사로 제일 예식장에서 첫 법회를 개최했다. 3개월 후 부산 서면에 위치한 부전예식장으로 법회 장소를 옮기고 나서야 법회를 꾸준히 할 수 있었다.

법당 마련에는 故 이인희 2대 회장의 노력이 숨어 있다. 이인희 회장의 노력으로 무료로 장소를 제공받을 수 있었고 1000여 불자들이 참석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 1975년에는 이인희 회장이 2대 회장으로 취임하고 대중포교를 위한 원력을 더욱 크게 세웠다. 당시 백봉 김기추 거사의 선의 정수를 전해 듣기엔 일반 불자들의 근기로는 역부족이였다.

창립 당시 이야기를 듣기 위해 만난 이인희 회장의 부인 박인자(90) 씨는 “근기가 부족했다. 공부 경험이 없는 보살들도 참석을 많이 했다”며 “이인희 회장님은 좀 더 대중적인 장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설명을 이어갔다.

“많은 이들이 들으면 나중에 인연을 맺을 분은 맺을 것이라며 정성을 다하시더군요. 특히 어린 불자들에 대한 마음이 크셨어요. 대불련 학생들이 오거나 불교학생회에서 찾는 학생들은 법회 후에 불러서 밥을 사주고 차비를 쥐어 주며 격려를 했어요. 학생들을 향한 이인희 회장의 열정은 지금도 잘 이어져 오고 있는 것 같아 기쁩니다.”

이인희 회장은 법회를 매달 2회로 늘리고 둘째 주 화요일에는 종범 스님(前 중앙승가대 총장)을 상임지도법사로 초빙해 정기법회를 이어갔다.

마지막 주 화요일에는 법사를 초청했는데 그동안 초청된 법사는 고암 스님, 향곡 스님, 탄허 스님, 운허 스님, 구산 스님, 석주 스님, 관응 스님, 월하 스님, 진제 스님 등 350여명에 달한다.

1978년 10월부터는 고순호 법사가 법회 1시간 전 불교 강의로 체계적인 교리 수업을 진행했다.

당시 부전 예식장 모든 홀에는 부산 대중들이 참여해 가득 찼으며 대불련 어린 학생들도 참여해 의자를 배치하고 정리하는 등 매회 1000여명이 참석할 정도로 뜨거운 법석이 펼쳐졌다.

1976년 6월 창립 4주년 기념 운허 스님 초청법회.

역대 회장들이 모인 자리에서 대표들은 “현재 초대 회원들은 대부분 별세하셨다”며 아쉬움을 전했다. 그러나 故이인희 회장의 부인인 박인자 씨 등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지고 도움을 주고 있다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박인자 씨는 1000회 법석을 기념해 3000만원을 후원하는 등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오고 있다.

박인자 씨에게 그동안 얼마나 많은 후원금을 전달했는지 묻자 그녀는 조용히 웃기만 했다.

지원금은 말할 내용이 아니라는 듯 손사래를 치며 “돌아가신 이인희 회장의 마음을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거사림회 활동에 대해 이인희 회장은 전부라셨다”며 “이인희 회장님이 살아계셨다면 당연히 지금처럼 후원하고 관심을 가졌을 것”이라고 조용히 답했다.
 

부처님법 따라 자비나눔 실천

보건의집 목욕 및 급식봉사

각자 맡은 역할 충실히 진행

여성회원 모임 반야부도 활동

 

‘생활불교 실천, 민생구제’ 서원

실천서원 인터넷 등에 공개

“아무리 어려운 일 있어도

모두 함께 힘 합쳐 전법”
 

법당에 함께 빙둘러 앉은 거사들의 모습이 마치 한가족 같다. 이들은 45년간 동고동락하며 부산 거사불교를 이끌어 왔다.

법석 주역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부산불교거사림의 법석이 45년 동안 한 번도 빠짐없이 이어져 온 것은 이들이 각자 맡은 바 역할을 주인처럼 해냈기에 가능했다.

재정이 없는 회원은 손발이 되었고 어떤 이는 20년 넘도록 법회를 집전을 하며 원활한 법석을 이끌었다. 거사림회의 여성회원 모임인 반야부는 법회마다 음식 공양을 하며 모임을 풍성하게 했다.

반야부 김옥련(63) 불자와 김화자(63) 불자는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곳을 지키며 공부하고 봉사했다. 대중들이 도착하면 명단을 정리하고 차를 내리고 꽃 공양을 올리는 일들을 저희가 담당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법문 들은 것을 실천하기 위해 나눔 봉사를 잊지 않았다. 보건의 집에 가서 목욕봉사도 하고 복지시설을 찾기도 하며 급식 봉사를 담당하는 등 자비나눔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강상호(78) 8대 회장은 1990년대 당시의 열악한 상황을 설명하며 어려움을 극복한 모습에 기쁘다고 했다.

강상호 前회장은 “거사림회에선 20주년을 기념하며 법공양을 위해 법문집을 엮었다. 책 제목이 <서천에 돋는 해>와 <광명의 지혜>였다. 지금처럼 미디어 시설이 좋지 않아서 테이프가 늘어질 정도로 돌려 들어야 했다. 당시 책을 집필하는데 앞장섰던 이준우 씨가 엄청 고생을 했다”고 회고했다.

이어 “당시에는 핸드폰이 없어서 법회 초대를 위해 일일이 엽서를 적어 보냈는데 그 수가 700장을 넘었다. 일하고 돌아와서 밤새 적으려니 정말 힘이 들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보람이 된다”고 말했다.

김석배·이인희·임채수·김봉창·박용준·구평옥·강상호·서건남·엄영건·김정도·배호암·최수황 등 역대 회장들의 노력은 결정적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현재 공병수 회장은 역대 회장 가운데 4회나 회장직을 연임하고 담당했을 정도로 신임이 두텁다.

배종갑(74) 회원과 임우택(68) 회원은 부회장 소임으로 대중을 위한 손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배종갑 부회장은 “어릴 적 부터 눈에 보이는 봉사는 큰 것 작은 것 가리지 않고 열심히 했는데 당시 이인희 회장님과 공병수 회장님 등 집행부에서 믿고 일을 맡겨 주었다. 기회가 되어 도움을 드릴 수 있어 기뻤고 앞으로도 맡은 책임을 외면하지 않고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고 전했다.

임우택 부회장은 회원들이 “없어서는 안될 분이다”며 다 같이 입을 모았다.

임우택 부회장은 끝으로 이렇게 말했다. “50여명의 이사회 회원들이 있어요. 지금처럼 핸드폰이 좋지 않은 시절에는 그분들의 전화번호를 모두 외울 정도였지요. 이렇게 앞으로도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부처님의 법을 위해서요.”

부산불교거사림 홈페이지(bsgsl.co.kr) 첫 페이지에는 실천서원이 적혀있다.

생활불교를 실천하고 자아 완성과 인격 도야를 통한 민생 구제와 사회 정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글이다.

그들은 실천서원 마지막에 “끝까지 실천할 것을 다짐한다”는 글을 덧붙였다. 앞으로 1000회를 넘어 1만회의 법석이 이어 지기를, 그래서 부처님의 법이 만방에 퍼지길 함께 발원한다.
 

부산불교거사림은 …

1972년 7월 31일 창립했다. 부산불교 거사모임의 효시가 되었으며 법석을 정기적으로 열어 지난 2월 14일 1000회를 기록했다. 45년 법석을 다녀간 동참 인원은 20만 명이었으며 350명 이상의 출ㆍ재가 법사들이 자리해 법문을 펼쳤다. 현재는 부산 법계정사에서 매달 둘째 화요일과 마지막 주 화요일 마다 법회를 봉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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