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이 기지개 켜는 싱그러운 계절입니다. 3월도 중순을 지나고 있으니,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새로운 친구들도 만났으리라 생각합니다. 청소년기에 사귀는 친구는 성인이 된 후 만나는 친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합니다. 상대의 사회적 조건을 견주며 고르는 친구와 조건 없이 순수함으로 만나는 친구를 비교할 순 없겠지요.

〈법화경〉 ‘의리계주’ 이야기는
친구와의 따뜻한 신뢰를 의미해
훌륭한 도반, 수행·인생에 도움
친구 간도 지킬 예절·도리 있어


순수한 우정은 서로를 연결하는 소중한 약속이며, 봄날 새순처럼 삶에 풋풋한 희망을 선사합니다. 또한 우정은 거울처럼 자신을 비춰주기도 합니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는 말처럼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듯이 우리는 비슷한 유형의 사람끼리 어울립니다. 생각이나 가치관, 비슷한 성품이나 성격을 지닌 사람끼리 사귀기 때문에 친구를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거울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바늘 가는 데 실 간다’는 속담처럼 학창시절 단짝과 함께한 즐거운 한 때는 인생에 있어 소중한 추억입니다.

그만큼 친구는 나에게 있어 빈 곳을 채워주고, 지켜주는 든든한 기둥과 같은 인연입니다. 〈법화경〉 ‘오백제자수기품’의 ‘의리계주(衣裏繫珠, 친구의 옷 속에 구슬을 달아준)’이야기는 불성(佛性)에 대한 가르침뿐만 아니라 친구에 대한 따뜻한 신뢰를 암시합니다.

친구 옷에 달아준 구슬
한 가난한 사람이 오랜만에 부자 친구의 집에 방문했다가 진수성찬을 대접받았습니다. 그가 술에 취해 잠이 들었는데, 때마침 집주인인 친구가 급한 볼일이 생겨 외출을 하게 되었습니다. 집주인은 술에 취해 잠든 친구를 깨울 수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 가난한 친구가 앞으로 넉넉하게 살 수 있도록 잠든 친구의 옷 속에 보배 구슬을 매달아 주었습니다.

한참 후 술에서 깨어난 가난한 친구는 그 집을 나와 정해진 일도 없이 세상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녔습니다. 그는 자신의 옷 속에 값진 구슬이 있는지도 모른 채 가난한 생활을 하며 고생을 했고, 하루 일하고 하루 입에 풀칠을 하며 살았습니다.

몇 년 후, 부자 친구가 길을 가다가 우연히 가난한 친구를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부자 친구는 가난한 친구의 여전히 초라하고 궁핍한 모습에 놀랐습니다. 그래서 구슬을 준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친구, 어찌된 일인가? 자네가 고생할까봐 값진 보배구슬을 주었는데 아직도 매일 고생하며 살고 있으니 무슨 일인가?”

옛 친구의 말을 들은 가난한 친구는 영문을 몰라 의아해 했습니다. 부자 친구가 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지난번에 자네가 우리 집에 왔을 때 잠이 든 자네를 두고 내가 급하게 외출하면서 자네가 넉넉하게 살 수 있도록 잠든 자네의 옷에 보배구슬을 매달아 두었다네. 그런데 왜 아직도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는가?”
“그게 무슨 말인가?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네.”

가난한 친구는 옛 친구의 말을 듣고 자신이 입고 다니던 허름한 옷 속을 살펴보았습니다. 옷 안에는 여전히 보배구슬이 매달려 있었습니다. 이를 본 부자 친구가 말했습니다.

“자, 보시게! 지금도 보배구슬이 그대로 매달려있지 않은가? 이것을 팔면 돈으로 바꾸면 필요한 걸 구입해서 얼마든지 편하게 살 수 있다네. 자네는 그것도 모르고 고생하며 살았으니 참으로 어리석구려.”
- 〈법화경〉 中에서

우정을 지키는 三學
이야기 속에 나오는 보배구슬은 불성(佛性, 부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비유하며, 옛 친구는 부처님을 상징합니다. 부처님은 오백제자 모두에게 본래 불성을 지니고 있으니 미래에 부처가 될 것이라고 수기(약속)를 합니다. 모두가 불성이라는 귀중한 보배구슬을 가지고 있으니 진리를 열심히 배우고 정진하라는 의미입니다.

이 이야기를 친구와의 우정으로 해석하면 옛 친구는 어려운 형편의 가난한 친구를 도와주고자 보배구슬을 주었습니다. 값진 보석과 같은 우정이라 하겠습니다. ‘지란지교(芝蘭之交)’, ‘금란지교(金蘭之交)’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초와 난초같이 향기로운 사귐’, ‘쇠처럼 굳고 난처럼 향기가 배어나오는 사귐’을 의미입니다.

친구와 관련된 속담으로는 ‘친구 따라 강남 간다’가 있는데 무작정 친구에게 이끌려 가다보면 좋은 일이 생길 수도 있지만,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합니다. 친구 사이가 변함없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내가 싫은 일은 타인도 싫어하듯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무리한 부탁은 삼가야 합니다. 우정을 잘 가꾸고 지키기 위해 필요한 덕목은 바로 삼학(三學)입니다.

삼학은 계(戒)·정(定)·혜(慧)의 세 가지 가르침입니다. ①몸과 입과 뜻으로 범하는 그릇됨을 막아 친구사이에 예절을 지키는 계 ②마음을 맑혀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가짐인 정 ③서로 배우고 실천하는 데 도움을 주는 명석한 판단과 분별의 지혜로서의 혜가 요구됩니다.

최근 소셜 네트워크로 더욱 활성화된 동문(同門) 모임은 파편화된 개인에게 소소한 즐거움과 위안이 됩니다. 하지만 친구 사이에 지켜야 할 예절과 도리, 마음가짐 등 삼학의 덕목이 부족하다면 서로의 관계는 훼손되고 마음에 상처를 입을 수 있습니다.

“당신이 있어 참 행복합니다”
〈법구경〉에는‘나보다 나을 것이 없고 내게 알맞은 벗이 없거든 차라리 혼자 착함을 지키고, 어리석은 사람의 길동무가 되지 말라.’는 가르침이 나옵니다. 어리석은 벗이나 악한 벗은 나를 혼란과 파멸로 이끌기 때문입니다. ‘무소의 뿔’처럼 의연하게 홀로 나아가다보면 더불어 함께해도 좋을 훌륭한 벗을 만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도반(道伴), 법우(法友)는 불법을 닦으며 깨달음을 향해 더불어 수행하는 관계입니다. 공명하는 우정은 정진의 든든한 기둥과 같습니다. 성철 스님은 ‘도반이 공부의 절반을 해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훌륭한 도반을 만나는 것이 수행에 있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존중과 신뢰를 바탕으로 함께 수행정진하는 ‘도반’, ‘법우’가 있다면 혼탁한 진흙탕에서도 맑고 향기롭게 피어나는 연꽃처럼 세상은 살아갈 만 할 것입니다. 누군가 내 곁에 다가와 도반이 되어주길 소망하듯,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대상이 되어보는 건 어떨까요? 그리고 말해봅니다. “당신이 있어 참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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