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잎 벌어질 때 봄은 만개
그 심연엔 고결·화려함 담겨
이만큼 자존감 깊은 꽃 있나

수많은 촛불, 등불처럼 빛났다
어두운 겨울 지나 봄바람 불고
이윽고 목련은 꽃을 피워냈다

목련 개화, 탄생 모습과 흡사해
자신 몸·영혼 모두 바치는 헌신

꽃이 피었다. 나무에 연꽃이 피었다. 오므렸던 목련 꽃잎이 벌어질 때 봄은 만개한다. 하늘을 향하여 꽃을 피우는 목련은 매화와 벚꽃으로부터 봄이 태어난다는 이야기에 마음을 흔들리지 않는다. 그의 심연에는 한파를 견디며 피어나는 매화의 고결함과 경쾌하게 군무(群舞)를 추는 벚꽃의 화려함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봄에 피어나는 꽃들 중에서 목련만큼 자의식이 강한 꽃이 어디 있으랴.

나는 어디 있는가? 목련 꽃봉오리 속에 있다. 나는 목련이 꽃봉오리를 터뜨릴 때 세상에 태어난다. 꽃잎을 열고 봄빛 속으로 나아간다. 봄빛도 무거운 겨울을 밀어내고 빛나고 있다. 봄빛이 찬란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리라. 생명은 모두 죽음과 같은 겨울을 통과하고 태어난다. 부드러운 봄빛 속에서 목련꽃 향기가 은은하다.

모든 꽃들은 태양을 따라 남쪽을 바라보고 꽃을 피우지만 목련은 태양마저 빛을 잃은 북쪽을 향하여 꽃을 피운다. 일본 총독부를 거부하여 북향집을 지은 만해(萬海) 스님의 심우장(尋牛莊)을 떠올린다. 봄에 피는 꽃들 중에서 목련만큼 자존감이 깊은 꽃이 어디 있으랴.

목련꽃이 피었다. 등불을 켜듯 목련꽃이 피었다. 겨울 내내 토요일마다 도심에서는 언 손을 호호 불며 봄이 오기를 갈망하며 촛불을 밝혔다. 거리를 가득 메운 수많은 촛불들이 등불처럼 빛났다. 등불은 목련이 어두운 겨울을 뚫고 나오도록 길을 비추었다. 이윽고 봄바람에 목련꽃이 피었다. 그 바람은 얼어붙은 대지를 녹이는 훈풍(薰風)이며 내일을 향한 희망의 신풍(新風)이었다.

그림 박구원.

우리는 어디 있는가? 어두침침한 동굴 속에 있다. 동굴은 실존이 밖으로 나아가는 원심력을 제어하고 구심력으로 족쇄를 채운다. 누구나 동굴 벽에 비추는 그림자를 실체로 여긴다.

우리는 봄날의 부풀은 대지에서 삶의 교향악을 아름답고 자유롭게 연주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지휘봉을 잡은 손은 오케스트라를 바르게 지휘하지 않는다. 목련이 나목(裸木)에서 꽃을 피우듯, 지휘자는 연꽃의 마음으로 교향곡을 정교하게 작곡하고 지휘해야 한다.

우리는 오선지 위의 길고 짧은 음표들이다. 음표들은 악보 안에 갇혀 있다. 음표의 본질은 소리이거늘. 소리는 음표의 울림이며 숨결이다. 봄노래를 부르고 싶다. 우리는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고 싶다.

잎을 피우기도 전에 꽃을 피우는 목련처럼, 봄빛을 그리워하며 겨울밤에 불빛을 밝힌다. 어두운 동굴 속에서는 출구를 찾아야 밖으로 나갈 수 있다. 동굴의 내벽은 인간 마음의 안쪽을 닮았다.

인간에게 낡은 동굴을 허물 수 있는 가장 큰 무기는 침묵이다. 침묵은 말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창조 이전부터 영속하는 본유(本有)의 불성(佛性)이다. 침묵 속에 봄의 씨앗을 뿌려 키워나가면 꽃은 피어날 것이다. 모진 추위에도 몸을 굽히지 않는 올곧은 마음과 믿음으로써 인고를 견디며 침묵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는다. “오, 내 사랑 목련화야” 노래 소리가 들려온다.

묘문(妙門)이 열리고 있다. “그대 내 사랑 목련화야” 노래 소리가 크게 들려온다. 문지방을 넘어선 느낌이다. 현기증으로 비틀거린다. 봄빛이 눈부시다. 슬픔과 분노, 회한과 고독, 암울했던 혼란의 시대가 허물처럼 떨어져 나간다. 신생(新生)이다.

목련이 꽃봉오리를 터뜨릴 때마다 새로운 우주가 태어난다. 우윳빛을 머금은 하얀 꽃잎이 아름답다. 흰색은 시작 이전의 무(無)의 색이다. 무의 색은 죽은 것이 아닌 가능성으로 가득 찬 침묵의 색이다. 흰색은 깨끗한 순결과 충만한 기쁨으로 넘친다. 연꽃의 무염시태(無染始胎)이다.

우뚝 서 있는 목련에게는 근접할 수 없는 고고함이 느껴진다. 목련은 연꽃이 피어나는 여름까지 기다릴 수 없어 답답한 겨울을 뚫고 스프링(Spring, 봄)처럼 솟아올랐다. 연꽃은 여여한 마음으로 따뜻한 물 위에서 꽃을 피우지만 성급한 목련은 봄날에 불꽃처럼 일어서야 했다. 연꽃이 수평적인 물의 꽃이라면 목련은 수직적인 불의 꽃이다. 연꽃은 만물의 더러움을 물로써 정화하지만 목련은 불로써 소각한다. 만물의 온갖 죄악 속에서도 물들지 않는 청정무구(淸淨無垢)한 꽃, 이래서 부처님은 연화대(蓮花臺) 위에 앉아계시나 보다.

나목(裸木)이 터진 자리마다 목련꽃이 피어난다. 아무 기척도 없는 텅 빈 벌판에 벌거벗고 서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다. 겨울바람이 얼마나 혹독하게 몰아쳤으면 몸뚱이만 앙상하게 드러내고 있을까. 그래도 드러눕지 않고 비상하는 수직 축을 따라 꼿꼿하게 서 있는 기개. 이것은 아픔과 외로움을 삼키며 내일로 솟아오르려는 존재의 근원적인 모성일까.

어머니가 새 생명을 몸속에서 키워 세상으로 내보내는 것은 자신의 몸과 영혼을 송두리째 바치는 헌신이다. 이때 어머니와 새 생명의 본질은 다르지 않다. 연꽃도 화과동시(花果同時)로 꽃과 열매를 분별하지 않고 함께 자란다. 맨몸을 찢고 터뜨려서 꽃을 피우는 목련을 차마 바라볼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이 만유(萬有)의 순리인 것을. 목련꽃이 피어나는 모습은 어머니의 자궁에서 생명이 태어나는 모습과 흡사하다. 목련이 꽃을 피우는 것은 우주의 도태(道胎), 즉 법신(法身)이 열리는 것이다.

불법(佛法)의 세계는 촛불도 태극기도 하나이다. 우리 서로 손을 잡고 목련꽃 향기 그윽한 저 봄빛 속으로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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