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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 통해 인간 먹여살리는 밥꽃… 사람의 ‘목숨꽃’밥꽃마중
장영란·김광화 지음|들녘 펴냄|1만 7천원

부부가 농사지으며 만난 60여 곡식꽃

채소꽃을 글·사진으로 남긴 9년 기록

어려운 식물 용어 한글로 쉽게 정리해

 

밥꽃중 가장 대표적인 벼꽃, 꽃잎 無

식물은 꽃피기까지 큰 에너지 소모

 

식물 근본 아는 것 먹는꽃에 대한 예의

화려하진 않지만 생명이 한끼 만들어

 

[현대불교=김주일 기자] 벼나 콩에도 꽃이 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체 벼나 콩 어디서 꽃이 피었다 진단 말인가? 논밭서 평생을 보낸 농부들조차 알아채지 못하고 지나치기 쉬운 곡식꽃, 채소꽃. 그도 그럴 것이 일단 작고 볼품없다. 형형색색 화려한 꽃잎과 탐스러운 이파리에 둘러싸인 꽃들에 비해 이 책서 보여주는 꽃들은 ‘이게 꽃이라고?’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이 책은 장영란, 김광화 부부가 농사를 지으며 만난 60가지 곡식꽃, 채소꽃을 글과 사진으로 남긴 9년간의 기록이다.

저자는 우리 밥상에 매일같이 올라와 사람을 먹여 살리는 이 꽃들을 ‘밥꽃’이라 이름 붙이고, 사람의 ‘목숨꽃’이라 여겼다. 이들의 지극하고 유별난 밥꽃 사랑은 단순히 꽃을 즐기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 밥꽃이 어떤 과정을 통해 사랑을 하고 꽃을 피우는지, 내가 키우는 밥꽃(농작물)은 언제 어디서 들어왔는지, 이들의 가계(家系)는 어떻게 이어져왔는지 등 공부하는 과정이 뒤따랐다. 또한 한자와 우리말이 뒤섞여 어려운 식물 용어를 되도록 한글말로 (한자가 더 알아듣기 쉬울 때는 한자로) 정리하는 지난한 과정을 거쳤다.

저자 김광화는 꽃을 피우는 그 짧은 시간을 보기 위해 새벽마다 카메라를 챙겨 들고 어둠 속으로 나갔다. 쌀 한 톨, 마늘 한 쪽 그리고 옥수수 한 알에 담긴 밥꽃의 생명을 ‘마중’하러 나갔던 길. 그 여정을 통해 만난 것은 그저 밥꽃 하나가 아니라 사랑과 생명 그리고 자연에 대한 귀중한 가치였다.

꽃잎, 꽃받침, 수술 그리고 암술을 갖춘 것이 바로 우리가 아는 ‘꽃’의 구조다. 하지만 밥꽃의 가장 대표인 벼꽃에는 그 흔한 꽃잎도 없다. 그냥 껍질이 벌어졌다 닫힌다. 그래서 벼꽃은 ‘피는’ 게 아니라 ‘이삭이 패는’ 것이다. 벼꽃이 초라한 데는 나름 중요한 이유가 있다. 식물은 꽃을 피우기까지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한다. 그래서 벼는 제대로 된 ‘꽃’을 피우지 않고 ‘씨앗’을 남기는 것이다. 이렇게 벼꽃 한 송이가 피었다 져야 겨우 한 쌀 톨이 된다. 그것도 날씨가 나쁘거나 영양상태가 안 좋거나 벌레가 못살게 굴면 허탕이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먹는 쌀 한 톨에 벼꽃 한 송이의 ‘드라마’가 숨겨져 있다.

요즘 꽃이나 식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정작 우리를 먹여 살리는 꽃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사실 열매를 맺는 모든 작물은 꽃을 피운다. 식물의 생장기를 ‘한살이’라고 하는데, 자기 몸이 자라는 영양생장기를 거쳐 꽃 피고 씨 맺는 생식생장기로 마감한다. 그중에서도 벼나 콩은 씨앗을 먹기 위해 기르니 영양생장기만이 아니라 생식생장기까지 ‘한살이’를 마쳐야 사람이 거두어 먹는다. 하지만 배추, 무 등 우리가 먹는 대부분의 작물은 수확한 이후 밭을 갈아버린다. 애초에 뿌린 씨앗도 종자회사서 육종한 씨앗이니 다시 받아봐야 소용이 없다. 어차피 씨를 다시 사다가 심어야 한다. 저자는 이런 구조가 반복되다 보면 ‘언젠가는 우리가 먹는 것이 자연에서 왔다는 사실조차 잊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밥꽃에 대한 작업은 이러한 안타까움에서 시작되었다.

20여 년간 맛본 수확의 기쁨만큼이나 뭉클하고 알싸한 식물의 세계. 작물이 열매를 맺고 꽃을 피우는 ‘한살이’는 우리 인생의 모든 페이지와 같다. 인생의 중반을 훌쩍 넘긴 이들 부부가 논 한복판에서 만난 작은 밥꽃 한 송이에 감동하게 되는 것은 알싸한 우리네 인생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저 유명한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밥꽃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농사지었던 경험이나 눈으로 관찰하는 것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식물학 기초 공부가 필요하다는 걸 절감한 부부. 이 책의 말미에 정리한 ‘이론공부’만도 30페이지가 훌쩍 넘는다. 식물학 전공자도 아니고 이렇게까지 공부해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 법한데, 오히려 평생 해온 농사에 대한 이해가 더욱 깊어졌다고 한다. ‘곡식이든 채소든, 하나를 제대로 알려면 빠지지 않는 게 있다. 분류계통에서 무슨 ‘과(Family)’인지, 그다음에는 원산지가 어디인지, 그리고 우리나라에는 언제 들어왔는지 등을 알아보는 것’이다. 물론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듯 생명의 근원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렇게 근원을 더듬다 보면 뜻밖의 것들을 알게 된다. 이를테면 고추, 담배, 호박은 우리 민족과 떼기 어려울 만큼 어우러져 꽤 오래된 작물이라 여겼지만, 그리 오래지 않은 임진왜란 때 들어왔다. 수박은 저 멀고도 먼 남아프리카가 원산인데 이미 고려시대에 들어왔고, 옥수수는 아메리카서, 수수는 아프리카서 들어왔다고 한다. 곡식의 고향을 알게 되면 그 곡식을 어떻게 가꾸면 좋을지 감이 잡힌다. 물이 부족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지 아니면 주기적으로 물을 주어야 하는지 등 작물에 새겨진 환경적인 요인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농사에서 가장 참고가 되는 분류체계 역시 ‘과’다. 사람과 짐승이 먹고 사는 식량이 되는 벼, 보리, 밀, 수수, 옥수수 등은 모두 벼과 집안 식구들인데, 벼과가 바로 외떡잎식물이다. 외떡잎식물을 떡잎 한 장인 식물로만 알고 있던 상식은 이제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 우리를 먹여 살리는, 없어서는 안 될 꽃이 바로 외떡잎식물군의 벼과 꽃들인 것. 여기서 나아가 외 · 쌍떡잎식물을 묶어 ‘속씨식물’이라고 한다. 은행나무, 잣나무 등의 ‘겉씨식물’을 제외하면 우리가 먹는 나머지 재배식물은 다 속씨식물에 속한다.

이렇듯 ‘이론공부’라 이름 붙여진 내용들은 더 이상 ‘이론’이 아니라 우리 먹거리의 근본을 알아가는 과정인 것이다.

김주일 기자  kimji421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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