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유자효 시인

대통령이 파면됐다. 그러나 광장엔 아직도 깃발이 펄럭인다. 광장이 무엇인가? 고대 그리스, 주민들이 직접 의사를 결정하던 곳이다. 전통은 로마로 이어져 광장은 직접 민주주의의 상징이 됐다.

작년 10월부터 이어진 사태
양분된 사회, 이젠 하나돼야
우리는 우리를 믿어야 한다
한국의 저력, 우리에게 있다 

유럽에서는 광장을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된다. 광장의 가장 좋은 곳에 성당을 짓는다. 성당의 맞은편에 시청이 있다. 하늘의 권능과 지상의 권능이 마주보고 있는 것이다. 광장과 성당과 시청. 이것은 도시의 심장이다. 이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 산다.

동양에는 광장이 없다. 그 대신 대로(大路)가 있다. 대로. 왕이 다니는 길. 왕도(王道)다. 왕의 행차가 없는 평상시 백성들이 이용하지만 모든 것이 왕의 소유였던 시대. 대로는 왕의 길이었다. 대로를 중심으로 소로(小路)들이 뻗어나가 도시를 이루었다. 생래적 직접 민주주의의 전통이 없는 동양에서는 광장도 없었다. 오직 절대자와 그 통치를 받드는 신민들이 있을 뿐이었다.

동양의 광장은 이후에 만든 것이다. 도시의 기능상 미관과 시민 휴식의 필요에 의해 인위적으로 조성한 것이다. 베이징의 천안문 광장이 그러하고, 서울의 광화문 광장, 시청 앞 광장이 그러하다. 도쿄에는 아예 그런 광장이 없다.

그 광화문 광장, 시청 앞 광장이 몸살을 앓았다. 지난해 10월,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 농단 보도 이후 매주 토요일마다 박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대와 지지하는 시위대에 의해 광장이 점거당한 것이다.

광화문 쪽의 시위대는 결박당한 박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의 인형을 들고 나왔고, 단두대와 처형당한 모습, 상여 등의 끔찍한 모습들이 등장했다. 이석기 前 의원을 석방하라는 정치적 구호도 등장했다.

시청 앞의 시위대는 광화문 쪽을 빨갱이들이라고 매도했다. 대부분 나이든 세대인 이들은 자신들이 살아온 시대의 가치관을 무시당했다며 분노했다. 군복과 군가가 등장했으며 젊은 기자들을 폭행하기도 했다.

두 시위대 사이에는 경찰 버스가 막아섰다. 북쪽과 남쪽을 가로막은 분계선이었다. 그 상징성이 보는 이의 마음을 쓰리게 했다.

두 집단의 대화는 불가능했다. 북쪽은 남쪽을 ‘틀딱(틀니 딱딱)’이라고 매도했다. 남쪽은 북쪽을 ‘좌좀(좌익좀비)’이라고 비하했다. 이 같은 대립은 심각한 세대 갈등의 양상으로 나타났다. 양 진영에서는 마침내 자살자까지 나왔다.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하며 스님이 소신공양했고, 시국 문제로 아내와 다투던 60대가 투신했다.

가정에서는 부모 자식 간의 의견 대립도 있었다. 부모와 대화하다 “말이 안통한다”며 뛰쳐나가는 자식. 고생하며 부족한 것 없이 길러냈더니 배신감을 느낀다는 부모도 있다. 오랜 친구 사이가 갈라지는 경우도 있다. 이번 사태는 노인들이 자발적으로 SNS를 익혀 소통하는 현상도 보였는데 이 문자 소통이 갈등의 요인도 됐다.

대통령은 파면되고 갈등만이 남았다. 이제 국민들이 오롯이 안고 가면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된 것이다. 파면 후에도 청와대를 바로 떠나지 않다가 사흘만에 자택 앞에서 환히 웃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모습은 많은 이를 당황케 했다. 도대체 오랜 다툼의 결과가 무엇인가? 헌법재판소 결정 승복은 커녕 탄핵 반대 시위 중 사망한 3명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이른 아침, 미용사는 받아들이면서 자신을 위해 몸 던져 법정 변론을 하고 사재를 털어 신문 광고를 내던 변호사는 문전박대했다. 죽은 이들, 변론한 이들, 그들은 누구를 위해 그토록 싸웠단 말인가?

대통령 탄핵 소식을 나는 대구 동화사에서 들었다.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의 재취임 회견을 위해 BTN불교TV 녹화팀과 함께한 자리에서였다. 소식을 접한 종정 스님은 무척 안타까워하셨다. 그리고는 모든 것이 마음 때문이라고 하셨다. 마음 한 번 잘못 먹음으로써 비극의 구렁텅이에 빠진다는 말씀이었다.

한 시간 동안의 회견에서 종정 스님은 참선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현대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는 길이 참선에 있다는 말씀이었다. 세계 평화를 이루는 길이 참선의 세계화에 있다시며 이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도 했다.

그렇다. 모든 것은 마음에 있다. 세대 갈등도, 가족 갈등도, 친구 갈등도, 진영 갈등도 그 원인은 마음이다. 우리는 이제 갈등을 풀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대통령 탄핵 이후, 주가를 연중 최고치로 끌어올려 실물 경제가 끄덕없다는 것을 세계에 보여주는 나라이다. 광화문과 시청 앞에는 주말 시위대들이 들끓으면서도 큰 사고는 없었고, 인천 공항에는 해외로 나가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저력을 보여주는 나라이다. 이 힘을 보여주는 것은 지도자들이 아니다. 너와 나, 일반 국민들이다.

우리는 이를 믿어야 한다. 그래서 이제 미증유의 대통령 탄핵 사태가 빚어낸 갈등을 씻고, 다음 대통령을 잘 뽑아야 한다. 그래서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의 사랑스런 후손들이 살아갈 소중한 나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유자효 (시인·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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