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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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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연재 박원자 작가의 ‘인생을 바꾼 108배’
3천배 속 우러나는 환희심, 아! 성철 스님남을 위해 절하라

   
 
성철 스님은 한국불교 근현대를 대표하는 선승이다. 스님은 열반하기 직전 제자들에게 남긴 마지막 말씀이 ‘참선 잘 하거라’였을 만큼 참선수행에 매진할 것을 강조했던 분이다. 그런 스님이 왜 승속과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절을 시키셨을까?

친견 앞서 3천배 시킨 스님
“나 찾지 말고 부처 찾으시오”
참회 후 감사의 마음이 솟아나

성철 스님이 해인사 방장으로 있으며 산문 밖을 나서지 않은 채 도인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을 때였다. 날마다 사람들이 스님을 친견하기 위해 전국방방곡곡에서 관광버스를 대절해 찾아왔다고 한다. 그런데 만날 수 있는 조건이 하나 있었다. 스님이 주석하던 백련암 법당에 들어가 3000배를 하고 나와야 한다는 것. 그래서 백련암은 항상 절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나중에는 절하는 사람들을 수용하기 위해 절을 증축했을 정도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백련암은 전국에서 절을 잘하는 고수들이 모이는 집결지처럼 되었고, 반세기가 흐른 지금도 성철 스님은 가셨어도 절을 하는 사람들의 열기로 가득하다.

어느 해 여름, 성철 스님의 명으로 대학생들 몇 백 명이 해인사 법당에서 절을 했다. 한여름인지라 입은 옷은 땀으로 달라붙어 보기 민망할 정도였다. 이런 모습을 보고 당시 해인사에 있던 법정 스님이 한 말씀 했다. 예배란 간절함이 우러나와 공손하고 진중해야 하는데,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숫자 채우기에 급급하다고 비판한 것이다. 법정 스님은 나아가 진정한 참회와 예배가 지닌 뜻을 되새기는 글을 ‘굴신운동’이라는 제목으로 불교신문에 실었다. 성철 스님은 이 글을 보셨는지 못 보셨는지 말씀이 없었는데, 혈기 넘치는 해인사 젊은 스님들이 반발, 법정 스님이 바깥나들이를 간 사이에 스님 방에 있던 물건들을 치워 버렸다. 이로 인해 법정 스님은 두말없이 해인사를 떠났다고 한다. 1968년도의 일이다.

이뿐만 아니다. ‘자기가 뭐 그리 대단한 사람이라고 3000배를 해야 만나 준다는 말인가?’ 하는 세간의 오해도 많이 받았다. 일련의 이런 일들을 볼 때 절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에겐 3000배가 맹목적이고 기복적인 행위로 비칠 수도 있겠다 싶다. 어쨌든 세간의 이런 시선을 의식했는지 성철 스님은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흔히 3000배를 하라고 하면 나를 보기 위해 하라는 줄로 아는 모양인데 그렇지 않습니다. 승려라면 부처님을 대행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하는데, 어느 점으로 보든지 내가 무엇을 가지고 부처님을 대행할 수 있겠나 하는 생각입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가 남을 이익 되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늘 말합니다. ‘나를 찾아오지 말고 부처님을 찾아오시오. 나를 찾아와서는 아무 이익이 없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이 찾아오지요. 그러면 그 기회를 이용하여 부처님께 절하라고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3000배 기도를 시키는 것인데 그냥 절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서 절해라, 나를 위해서 절하는 것은 거꾸로 하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3000배 절을 하고 나면 그 사람의 심중에 무엇인가 변화가 옵니다. 그 변화가 오고 나면 그 뒤부터는 자연히 스스로 절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억지로 남을 위해서 절을 하는 것이 잘 안되어도 나중에는 남을 위해 절하는 사람이 되고 남을 위해 사는 사람이 되면 그렇게 행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산에서 큰 기업을 경영하고 있는 회장 한 사람이 가족을 데리고 성철 스님을 찾아왔다. 어찌 된 일인지 그들은 누구든 3000배를 해야 만나주는 규칙을 깨고 스님을 친견하고 이런저런 덕담을 듣고 일어섰다. 그런데 그들이 신발을 신고 댓돌을 내려서 설 때 스님이 일갈했다.

“집에 그냥들 가지 마시고 해인사 법당에 가서 3000배들을 하고 가시오!”

그리고 마침 백련암에 다니러 와 있던 사미니 스님에게 명했다.

“밖에서 저 사람들이 절을 잘 하는가 지켜 보거라. 소변을 못 참겠다고 하거든 깡통을 넣어주는 한이 있더라도 절이 끝날 때까지는 법당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게 해서는 안 된다.”

그날 스님의 명을 받아 밤새 법당 밖에서 그들을 지키면서 해인사 하늘에 총총히 빛나는 별빛을 바라보았던 어린 사미니는 지금 은해사 백흥암 선원장으로 계신 영운 스님이다. 영운 스님의 말씀에 의하면, 그날 생전 해보지도 않은 절을, 그것도 3000배를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채 마치고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법당을 나왔던 그 사람들은 가족 모두를 한마음이 되게 했던 그 3000배를 계기로 성철 스님을 오래 찾아뵈면서 계속 절을 했다고 한다.

절을 해본 사람이면 성철 스님께서 말씀하신 ‘심중에 변화가 온다’는 말을 금세 이해할 것이다. 참, 묘하게도 절을 오래 하다보면 가슴 한 복판에 넓은 호수 하나가 만들어진다. 자신을 불편하게 했던 원망과 회한, 기대와 미움, 나중엔 기쁨까지도 다 그 호수에 담겨 사라진다. 무심한 마음이 되는 것이다. 무심이 되었을 때 업장이 사라지고 욕심과 어리석음이 사라진 본래의 나로 돌아오는 것 아닐까 싶다. 그리고 절을 하다보면 ‘감사합니다’는 말이 저절로 나오게 된다. 그야말로 지나가는 바람에게도 감사한 절을 하게 된다. 살아있는 것 자체가 감사로 다가오는데, 이렇듯 모든 것에 감사할 때 마음이 편하다는 걸 느끼게 된다. 감사한 마음이 부처의 자리라는 말이 저절로 이해되는 것이다. 그렇게 마음이 감사로 가득 채워질 때 마음이 열리고 넓어지면서 비로소 남을 위한 기도가 되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일체 중생을 위해 매일 참회의 절을 하라
성철 스님이 절을 시킨 또 하나의 이유는 ‘참회’를 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업장을 참회하여 복과 지혜를 더해가는 것으로 절을 하게 한 것이다. 성철 스님이 신도들에게 3000배를 시키기 시작한 것은 한국전쟁 직후 안정사 천제굴에 계실 때였다. 수많은 불자들이 소문난 도인을 찾아 천제굴로 왔을 때 불자들에게 가르침을 처음 베푼 곳이다. 전쟁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된 사람들이 찾아와 불공을 드리며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고 물었을 때 스님은 불공의 참의미를 이렇게 가르쳤다.

“복을 달라는 것으로 불공을 하지 말라. 자신의 죄업을 참회하고 수행하는 것으로 불공을 하라. 중생이 본래 부처임을 자각하고 모든 대상을 부처님으로 부모로 스승으로 섬기는 것이 참된 불공이다.”

스님은 참회를 하기 위한 수행으로 절만한 수행이 없다고 하면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108배하기를 권했다. 성철 스님 자신도 입적하기 전까지 매일 새벽에 108배를 했다. 성철 스님은 발심해서 막, 출가한 스님들에게도 이렇게 일렀다.

“일체 중생의 죄과는 곧 자기 죄과이니 일체 중생을 위하여 매일 108배 참회를 여섯 번 하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시행한다. 그리고 건강과 기타 수도에 지장이 생길 때는 모두 자기 업이니 일일 3000배를 일주일 이상씩 특별 기도를 한다. 또한 자기의 과오만 반성하여 고쳐나가고 다른 사람의 시비는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

절을 해보면 기도는 참회로부터 시작해서 감사로 이어져 발원으로 끝난다는 것을 저절로 깨닫게 된다. 몸과 마음을 아래로 하다 보면 저절로 참회가 되고 감사하는 마음이 우러나게 된다. 그토록 원망하고 불만이던 것들이 나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깨달음이 참회로 이어지고 참회로 인해 눈과 마음이 닿는 모든 대상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참회하는 마음이 한번 일어나면 다시는 무명으로 떨어지지 않으면 좋겠는데, 안타깝게도 그렇지가 않다. 조금만 소홀히 하면 다시 그 자리다. 그래서 반복 또 반복의 수행이 필요할 뿐 다른 방법이 없다. 출가한지 얼마 안 되는 사미니가 성철 스님에게 물었다.

“큰스님, 왜 참회기도를 해야 합니까?”

“사람은 살면서 항시 업을 짓기 때문에 참회의 절을 해야 하는 것이다.”

“자고 나면 다시 업을 짓는데 절을 한다고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가을이면 날마다 낙엽으로 마당이 가득하지 않느냐? 내일 낙엽이 떨어질 터이지만 매일 쓸다보면 어느 날엔가는 깨끗해지는 날이 오지 않겠느냐? 마당을 매일 쓰는 것과 쓸지 않는 것은 천지 차이다. 그처럼 끊임없이 참회의 기도를 해서 업을 정화시켜야 한다. 죄업이 멸하면 그 자리에서 복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니 참회하는 것으로 복을 구하고 무량겁토록 참회해야 한다.”

우리가 어찌 이번 한 생만을 살아온 생명이겠는가. 그야말로 무량겁토록 윤회하면서 얼마나 많은 말과 행위를 통해서 본래 깨끗한 마음 바탕을 탐욕과 어리석음으로 오염시켰을 것인가. 그래서 성철 스님의 남을 위해 절하고, 일체 중생을 위해 매일 참회의 절을 하란 말씀은 수행을 왜 하는가에 대한 명법문이 아닐까 싶다.

성철 스님이 머물면서 3000배를 하게 독려했던 백련암을 떠올리면 기억나는 장면이 하나 있다. 오래 전, 많은 사람들과 함께 밤새 3000배를 하고 나오던 나이 지긋한 한 여성분에게 방송 기자가 물었다.

“3000배를 하면 뭐가 좋지요?”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환한 얼굴로 그분이 답했다.

“말로 할 수 있나요? 해보면 알아요!”

나는 아직 저 물음에 이보다 더 명쾌한 답을 발견하지 못했다.

-108배에 대한 글을 연재하는 동안 독자들에게서 108배를 하고 싶은데 막상 어떤 방법으로, 어떤 생각을 하면서 절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다음 회엔 이 질문에 대해 글을 쓸까 한다.

박원자 작가  noduc@hyunb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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