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심은 선후가 있으나 도를 깨치는 데는 선후가 없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수행자의 공부를 두고 한 말인데 공부를 먼저 시작했다 해서 반드시 먼저 깨닫는 것은 아니란 뜻이다. 실제로 역사적으로 보면 혜능 선사 같은 경우 절에 온지 8개월 만에 오조로부터 법을 전해 받아 육조가 되었다. 그것도 계를 받아 스님이 되기 전에 법을 전해 받고 나중에 인종 법사로부터 계를 받으면서 인종 법사에게 법을 전해준 결과가 되기도 했다.

상좌가 은사보다 먼저 깨달은 경우도 있었다.

중국 당나라 때 신찬(神贊) 선사가 복주(福州)의 고령사(古靈寺)에서 은사 계현(戒賢) 스님을 모시고 살다가 절을 떠나 백장 선사 회상에서 안거를 나고 다시 은사가 계신 고령사로 돌아왔다. 은사가 물었다.

“여기 안 있고 밖에가 무엇 하였느냐?”
“별로 한 게 없습니다.”

어느 날 은사가 목욕을 하면서 신찬 선사에게 등을 밀어 달라 하였다. 등을 밀던 신찬 선사가 이런 말을 했다.

“법당은 좋고 좋은데 부처가 영험이 없구나.”(好好法堂 而佛不靈)

은사가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자 “부처가 영험이 없는데도 방광을 하는구나.”(佛雖不靈 也能放光)
하루는 또 은사가 창밑에서 경을 보고 있었다. 마침 그때 벌이 한 마리 방안에 날아 들어와 창문에 몸을 부딪치고 있었다. 이때 신찬 선사가 즉흥시를 지었다.

열려 있는 문으로는 나가지 아니 하고
(空門不肯出)

창에 부딪치니 어리석기 짝이 없구나
(投窓也大痴)

백년을 낡은 종이 뚫은들
(百年鑽古紙)

어느 날에 생사 벗어날 기약 있으리오.
(何日出頭期)

이에 은사가 경전을 덮고 물었다.

“네가 행각하면서 누구를 만났느냐? 저번에 목욕할 때도 그렇거니와 말하는 게 수상하구나.”
“백장 화상으로부터 지도를 받았습니다.”

은사가 대중에게 알려 모이게 하고 신찬 선사에게 법상에 올라가 법문을 할 것을 청했다. 신찬 선사가 법상에 올라가 법을 설했다.

“신령스러운 빛이 홀로 밝게 비쳐 멀리 육근(六根), 육진(六塵)의 경계를 벗어나 있습니다. 참되고 한결같은 그것이 통째로 드러나 문자에 구애되지 않습니다. 마음의 성품은 오염됨이 없어서 본래 저절로 완전합니다. 다만 허망한 인연을 여의면 곧 본래 그대로의 부처입니다.” (靈光獨耀 逈脫根塵 體露眞常 不拘文字 心性無染 本自圓成 但離妄緣 卽如如佛)

은사가 감동하여 말했다. “내가 어찌 늘그막에 와서 이런 지극한 법문을 들을 수 있었던가.”

스승이 제자에게 법을 청하여 법문을 듣고 감동했다는 이 이야기는 참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지리산 칠불사에는 서상수계(瑞祥受戒)에 관한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진다. 조선조 순조 때인 1826년에 대은 낭오(大隱朗悟) 선사가 칠불사에서 서상수계를 성취했다.

〈범망경〉에 의하면 천리 안에 계를 줄 스승이 없으면 부처님께 기도하여 서상을 받으면 계체(戒體)가 성립되어 부처님께 계를 받은 것이 된다고 하였다. 영암 도갑사에 주석하던 대은 선사가 서상계(瑞祥戒)를 받기 위하여 스승인 금담(錦潭) 스님과 함께 칠불사에 와 용맹기도를 하였다.

기도 중에 부처님 미간백호로부터 한 줄기 상서로운 광명이 비쳐 나와 대은 스님의 정수리에 꽂혔다. 이렇게 해서 상좌인 대은 스님이 먼저 서상계를 받고 스승인 금담 스님이 상좌로부터 그 서상계를 전수 받았다. 이리하여 그 계맥이 대은낭오, 금담보명(錦潭普明), 초의의순(草衣意恂), 범해각안(梵海覺岸), 선곡율사(禪谷律師), 용성진종(龍城震鐘)으로 이어졌다. 이를 해동계맥(海東戒脈)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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