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휴 스님의 백담사 무문관 ‘是甚麼 日記’⑤

백담사 경내에서 바라본 수심교의 모습. 안거를 해제한 운수납자들은 마음을 닦는다는 의미를 지닌 이 다리를 건너 만행에 오른다. 산하가 팔만 사천 법문이고, 바람이 격외도림임을 알아야 한다.
끝없는 물음으로 자아 일깨워야
무문관에 들어 온지 3개월이 다 되었다. 석 달 동안 잠겨있던 문이 열리고 그동안 보지 못했던 하늘을 볼 것이다.

해제(解制)가 되면 전국 선방에 문이 열리고 운수납자(雲水衲子)들은 만행(萬行)을 나설 것이다. 걸망을 짊어지고 머무는 곳마다 겨울 한철 갈고 닦은 깨달음을 풀어놓고 한편으로는 아직 잠이 덜 깬 산속의 봄기운도 부려 놓을 것이다.

3개월 정진 끝에 문 열리는 날
내설악은 ‘無言 설법’ 설하고
걸림없는 자유 있음 깨닫게 해

다시 한 번 무문관에 들어가서
생사 넘어 萬年토록 앉고 싶다

독방에서 해방된다는 들뜬 기분에 하루 종일 화두도 들지 않았다. 그동안 쉬는 시간을 틈타 보았던 조그마한 집 한 채를 바라보았다. 한 평도 안 된 집 한 채가 눈을 뒤집어쓴 채 바위처럼 일념(一念)이 만년(萬年)이 되도록 절구통 수좌처럼 앉아있다. 무금선원(無今禪院)이란 현판을 달고 노옹(老翁)처럼 앉아있다.

자세히 바라보니 밤새 기다리다가 지쳐서 잠깐 졸다가 막 깨어난 것 같이 보였다. 수척해 보였지만 피곤한 기색은 없었고 오히려 기다림에 익숙해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는 불노옹(不老翁)이었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멀리 떨어져 있는 대청봉으로 시선을 옮겼다가 다시 눈을 감고 자기 내면을 성찰하는 것 같았다. 새들이 찾아와 울면 눈 한쪽을 반쯤 떴다가 이내 감고 정진을 계속하고 눈보라가 세차게 칠 때는 한 쪽 귀를 열고 듣다가 닫아 버렸다. 천둥이 치고 벼락이 떨어진다고 해서 자리에서 일어날 자세가 아니다. 그러나 간간히 시선은 절 밖을 향해 있었고 누군가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그렇다고 찾아오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기다리면서 스스로 그리움을 만들고 있었다. 창 밖에서는 눈발이 날리고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바람이 본분소식을 풀어놓는 것 같았다. 선지(禪旨)를 풀어놓는 솜씨가 대방무외(大方無外)하고 천지를 흔들었다.

자연이 나에게 전하는 일경(一境)의 소식이었다. 단순한 바람이 아니었다. 걸림 없는 자유와 대용(大用)이 현존함을 깨닫게 하였다. 자연은 시시각각 변하면서 일기일경(一機一境)을 전한다.

봄이면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켜 법성(法性)의 무한한 가치를 깨닫게 하고 여름이면 삶의 전체의 모습을 드려내는 기틀을 보인다. 비록 말이 없으나 잎이 피는 것은 유언(有言)이요, 잎이 지는 것은 말후구(末後句)이다. 그리고 본체를 드려내기 위해 떨쳐버릴 것은 떨쳐버리고 내려놓는 것은 무언(無言)의 설법이다.

자연은 이렇게 많은 것을 보이고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정서적으로 아름다움이나 읊고 있다. 눈이 쏟아지는 겨울날 깊은 계곡에서 쏟아지는 눈사태를 보라. 어찌 그것이 단순한 눈사태만의 것이겠는가. 그것은 천뢰(天賴)같은 할(喝)소리요 날카로운 기봉(機峰)이 아니겠는가.

바람이 매섭게 불며 짐승처럼 칭얼대고 있다. 먹이를 구하지 못한 짐승이 울부짖고 있는 것 같다. 바람은 변화를 자재하여 칭얼대던 울음을 그치고 소낙비처럼 쏟아지는 소리를 내었다가 할(喝)과 봉(棒)을 앞세워 휘몰아친다.

설악산의 바람은 대청봉에서부터 시작된다. 천불동을 거쳐 여러 마을을 돌아다니다가 이곳에 이르러서는 여러 가지 울음소리로 변용된다. 때로는 나뭇가지를 흔들다가 날카로운 이빨을 드려내고 할퀴다가 지나간다. 어느 마을에 머물다가 싸움을 익히고 왔는지 매우 사납고 거칠다. 그리고 흐느끼고 울부짖는다. 어느 마을에서 분노를 만났는지 그 분을 삭이지 못하고 또 슬픔을 만났는지 뒷마당을 지나가는 바람은 울부짖고 흐느끼는 것 같다.

동해 파도소리 같은 바람이 한참동안 휘몰아치더니 대용(大用)의 자유만 남긴 채 사라지고 다시 적막이 찾아들었다.

차 한 잔을 놓고 3개월동안 참구했던 것들을 점검하였다. 사유는 깊어졌지만 밑바닥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리고 새로운 의심이 화두가 되어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것은 인간이 지니고 있는 정신이 완성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그리고 깨달음과 닦음에 완성이 있을 수 있을까? 물건이라면 노력과 수련, 그리고 연마를 통해 만들고 싶은 완제품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정신이란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제품과 달리 완성될 수 없다. 정신세계의 완성이란 우리가 두고두고 추구할 이상이지 현실은 아니다. 거듭거듭 새롭게 형성되고 태어나야 한다.

나는 문득 다음과 같은 앙산(仰山)스님의 일화가 떠올랐다. 앙산이 부엌일을 하고 있을 때 스승인 위산(僞山)이 무엇을 하느냐고 물었다. 앙산(仰山)은 주저함도 없이 ‘소가 풀밭을 가려고 하여 고삐를 힘껏 잡아당기고 있습니다’고 대답하였다.

문 밖을 나가면 또다시 보고 듣고 이해관계에 따라 또 휩쓸리며 살 것이다.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는 ‘그 놈’을 붙들고 관리해야 할 것 같다.

무문관을 떠나면서
여기가 옛 고불(古佛)의 도량임을 어떻게 알았을까. 바람과 물소리가 전하는 일기일경(一機一境)의 언어를 알아듣는 눈 밝은 통찰력과 서슬 푸른 직관을 가진 운수(雲水)가 있었음이 분명하다.

누가 이곳에 무문관(無門關)을 세웠을까. 망치로 두들기고 쇳물이 펄펄 끓는 용광로를 누가 앉혔을까. 오래전에 입적한 만해(萬海)가 세운 것도 아니고 영겁의 세월 속에 묻혀 있는 매월당(梅月堂)이 꿈에 나타나 예언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대청봉(大淸峰)에서 시작된 칼날 선 바람이 천불동(千佛洞)을 거쳐 이곳에 이르러 주춧돌을 놓은 것도 아니다.

분명히 하나를 버려서 둘을 얻는 기략(機略)과 지혜를 갖추고 하나를 통해 셋을 밝히는 거일명삼(擧一明三)의 기용(機用)을 갖춘 눈 밝은 운수(雲水)가 원을 세웠을 것이다.

그는 천지를 뒤집고 세상을 사로잡는 대기대용(大機大用)이 있었을 것이고 못을 기울고 산악(山嶽)을 무너뜨리는 경추도악(傾湫倒嶽)의 기개와 하늘의 관문을 열어 재치고 지축을 옮겨 놓은 기략(機略)을 갖추고 있는 분임이 분명하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산(山)의 신령스러움은 그 산이 높거나 낮은데 있지 않고 산속에 뛰어난 가람(伽藍)이 있어야 신령스럽다고 했다.

부처를 만들어 내고 사람다운 사람을 만들어 내는 깨달음의 요람을 이곳에 앉혔으니 어찌 신령스럽다고 말하지 않으리요. 하늘에서 신령함이 내리고 땅의 상서로움이 모인 이곳에 선불장(選佛場)을 앉힌 안목에 소름이 돋고 전율이 솟는다.

무릇 부처를 배우기 위해 뜻을 둔 사람들은 여기서 앉고 누우면 반드시 해탈의 진미를 맛볼 것이고, 빈손으로 왔다가 선방 문고리만 잡는 인연을 맺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실리를 거두어 갈 것이다.

분명히 말하노니 찾고 구하고자 하는 사람, 삶의 백척간두에서 절망한 사람들은 무문관에서 며칠 묵고 가라. 화두(話頭)는 눈 밝은 선지식에게 받을 필요가 없다. 무문관 옆에 있는 수 만평의 계곡에는 수 백 만개의 크고 작은 돌멩이들이 깔려있다. 이것이 바로 1200공안(千二百公案)이요 화두이다.

돌멩이 하나 들고 참구를
냉혹한 시련 없이는 숭고한 정신적 가치를 얻을 수 없다. 그리고 오랜 세월동안 흐르는 물에 닳고 닳아 모난 것은 다듬어지고 거친 것은 부드러운 살결을 이루어 있음을 볼 것이요, 돌멩이 하나하나가 독특한 개성을 갖추어 아름다운 모습으로 태어나 있음을 깨달을 것이다.

급한 것은 멈추게 하고 분노를 가라앉혀서 삭고 닳게 하며 오랜 인내를 거쳐 자기 모습을 이루고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그래서 돌멩이 하나하나가 화두라고 말하는 것이다. 알고 보니 무문관(無門關)을 세운 분은 조실(祖室)로 있는 무산(霧山) 선사였다. 그는 단순히 문이 없는 무문관을 세운 것이 아니라 사람다운 사람을 만들기 위해 이곳에 망치로 두들기고 쇳물이 펄펄 끓는 용광로를 앉힌 것이다.

범부를 고치기 위해 망치로 두들기고 성인을 이루기 위해 용광로 속에서 자신을 단련하여 새로운 인격을 주조(鑄造)토록 한 것이다. 그러니까 무문관은 혁범성성(革凡成聖)의 산실이었다.

밖에는 칼바람이 불고 눈이 쏟아지고 있었다. 눈을 뒤집어 쓴 나뭇가지는 무게를 견디지 못해 부러지고 있었다. 누구나 자기분수에 넘치는 욕심을 부리거나 권력을 갖게 되면 부러지고 넘어지기 마련이다. 자연이 그 이치를 가르쳐 주고 있었다.

“스님 계시냐?”
“산행을 나갔습니다”

운수(雲水)가 걸망을 지고 떠나려 할 때 동자스님이 눈앞에 서 있어 물은 것이다.

“이렇게 눈이 많이 오는데.”
“어느 골짜기를 헤매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이 산중에 있습니다.”

동자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선(禪) 법문을 하고 있었다.

정휴 스님/ 강원도 고성 영은암 회주
“그렇지 이 산중에 있겠지. 나를 이끌고 다니는 주인공도 나를 떠난 일이 없지.”
운수(雲水)는 더 이상 묻지 않고 눈 덮인 내설악(內雪岳)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그리고 독백을 하듯 한 마디 내뱉었다.

“참으로 웅장한 법신이군. 누가 눈 덮인 산하(山河)가 팔만 사천 법문인 줄 알고 있을까. 눈보라를 몰고 휘몰아치는 저 바람이 할(喝)과 봉(棒)을 갖춘 격외도림임을 깨닫고 있을까.”

운수(雲水)는 눈을 맞으며 겨울 속에 잠든 설악의 봄을 걸망에 지고 길을 나섰다. 다시 한 번 무문관에 들어가서 삶도 죽음도 없는 빈 모습으로 일념(一念)이 만년(萬年)이 되도록 앉아 있고 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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