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배 천일기도 사연

자신이 쓸 수 있는 모든 에너지를 모아서 명확한 목표를 향해 쏟아 부을 때 확실한 성과를 이룰 수 있다. 어떤 일에 성과를 이룰 때 자신감을 얻게 되고 그 자신감은 짜릿한 행복을 느끼게 하는데, 그 행복한 감정이 자신도 모르게 업장을 녹인다. 3000배는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강력한 방편이다.

금강굴서 불필 스님과 인연맺어
절수행 서원, 천일기도 입재
20년간 3000배 쉬지않고 정진

79일 동안 1080배, 마지막 21일을 3000배로 백일기도를 회향하면서 신심을 키운 불필 스님의 친구(지난 회서 소개)는 다시 3000배 백일기도를 시작했다. 절을 해보지 않은 사람에게 3000배는 마치 난공불락의 수천 미터 산을 오르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겠지만, 이미 백일 동안 1080배씩을 한 터라 조금은 수월했을 것이다. 1080배를 하고 나면 108배 정도는 가볍게 할 수 있다. 그래서 절은 한두 번의 고비를 넘기는 일이 중요하다. 인생과 닮아 있다. 큰 고비를 넘긴 사람이 웬만한 어려움은 수월하게 넘길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도 100일 동안 3000배를 한다는 것은 변화를 이루겠다는 확고한 목표 없이는 불가능하다. 변화란 본래의 자기로 돌아가는 것, 그러므로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 물들지 않은 본래의 나로 돌아갈 때 병도 치유되는 것이리라. 스님의 친구는 일념으로 기도하던 중 온 몸에서 흰 벌레들이 거미줄처럼 죽죽 빠져나가는 꿈을 꾸는 경험을 하며, 마지막 날까지 정성을 다해 기도를 마쳤다. 10년 이상 불치병을 앓았던 친구는 3000배 백일기도를 하고 씻은 듯이 병을 완치하고 결혼한 다음 미국으로 가서 새로운 삶을 개척했다고 한다. 생전에 많은 사람들에게 절을 시켰던 성철 스님은 ‘절을 해서 업이 녹는 것을 스크린으로 볼 수 있다면 생업도 그만두고 절을 할 것’이라고 말씀했다고 하는데, 불필 스님의 친구분이 이를 증명한 것 아닐까.

요즘도 금강굴에 가면 법당에 늘 좌복이 한두 개 펴 있다. 금강굴로 출가를 하러 오면 백일 동안 3000배를 하게 하는데, 그들이 사용하는 방석인 것이다. 하루 1000배를 하면 1000배의 신심 위에서, 1만 배를 하면 1만 배의 신심 위에서 출가생활이 이뤄진다는 것이 불필 스님의 신념이다. 3000배 백일기도를 회향한 그 힘으로 출가생활에서 만나는 어려움들을 이겨낸다는 것이다. 사미계를 받을 때는 어떠한 경우에도 불퇴전하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3일 동안 3000배 기도를 한다. 그렇게 출가한 스님의 상좌들은 예순이 넘었어도 하루 일과로 600배를 하는 것은 기본이다. 수십 년 동안 매일 천배, 3000배를 하는 분들도 여럿이다. 불필 스님은 절 수행의 효능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우리에게 무한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깨치고 살아야 자존감이 들고 자신감이 생겨요. 자신감이 있어야 인생에서 원하는 것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자신감을 가지는 데 108배가 가장 적절한 수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큰스님께서 하신 법문 가운데 ‘자기를 바로 봅시다’라는 법문을 가장 좋아해요. 자기를 바로 보는 게 무엇일까요? 내가 무한한 능력을 가진 부처임을 자각하는 거예요. 그러니 절을 함으로 해서 자기를 바로 볼 수 있는 겁니다. 무슨 일을 하던 다음을 생각하면 망설임이 생겨 밀고 나갈 수 없어요. 다음을 생각지 말고 108배를 하고 3000배를 해보면 알 겁니다. 자신이 얼마나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

3000배를 통해서 인간이 지닌 위대한 힘을 발견한 한 분을 소개할까 한다. 불필 스님께 이 분의 이야기를 여러 차례 들으면서 어떤 분일까 궁금하던 차에, 몇 해 전 성철 스님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에서 만나게 되었다. 막 예순 살이 넘었다고 하는데, 단아한 인상과 단단하고 날씬한 몸매로 볼 때는 사십대 중반쯤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았다. 여배우처럼 화려하진 않았지만 안정된 아름다움을 내뿜었던 이 분은 20년 동안 단 하루도 쉼 없이 3000배를 했다고 한다. 화장실도 가지 않고 물 한모금도 마시지 않은 채 말이다. 절을 하는 사람을 많이 만나 봤어도 이렇게 지독하게 절을 한 분은 처음이었다.

삼십대 초반에 성철 스님에게 법명을 받고 싶어서 백련암으로 가던 길에 금강굴에 들렀다가 불필 스님을 만난 것이 절수행의 시초가 되었다. 하루 1080배 기도를 해보라고 권유를 받은 것이다. 그런데 이분이 얼마나 근기가 높은지 성철 스님을 뵙고 ‘도향선’이라는 법명을 받고는 하루에 3000배씩 천일 동안 기도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큰 도인을 뵙고 신심이 북받쳐 올라왔을 것이다. 나도 이 분을 처음 뵌 그 날, 집으로 돌아와 백일기도를 시작했으니까.

그녀는 집으로 돌아온 그 날, 집에서 가장 큰 방에 있던 가구들을 모두 치우고 방석 하나만을 둔 채 기도실로 만들고는 절을 시작했다. 그리고 스스로 이렇게 규칙 하나를 세웠다.

“선 그 자리에서 3000배를 할 것!”

그러니까 한 번 절을 시작하면 자리를 옮겨서는 안 된다는 것, 즉 화장실을 가서도 안 되고, 물을 마시러 자리를 떠나서도 안 되며, 누가 벨을 눌러도 문을 열러 나가서도 안 되는 것이다. 말이 그렇지, 선 자리에서 일고여덟 시간 동안 한 번에 3000배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보통은 한 시간 단위로 50분 동안 절을 하고 10분 쉬면서 화장실도 가고 물도 마시며, 시간이 흐르면서 체력이 떨어질 때는 약간의 간식을 먹기도 한다. 3000배 등 긴 시간 절을 할 때, 쉬는 시간에 마시는 커피 한 잔, 사탕 한두 알, 여름에 먹는 수박 한두 조각은 그야말로 감로수다. 그런데 그녀는 이 모든 것을 포기한 것이다. 절하기 전엔 국물이 있는 음식을 피하고 날 김에 밥을 싸서 먹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한다. 여름에 그렇게 좋아하는 상추쌈도 혹여 졸음이 올까봐 입에 대지도 않았다. 간혹 아이들이 일찍 하교를 해서 벨을 눌러도 열어주지를 못해 밖에서 울고 있으면 이웃사람들이 아이들을 데려다가 돌봐주었다고 한다.

300배를 남겨놓고 불가항력적으로 화장실에 가야했을 때는 자리를 옮기지 않겠다는 규칙을 어겼기 때문에 가차 없이 처음부터 다시 절을 했다고 한다. 그런 날은 거의 두 배 가까운 시간을 할애한 셈이다. 몸살이 나서 도저히 절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도 이를 악물고 일어나 절을 했고, 외국에 갈 일이 생기면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호텔로 달려가 3000배를 했다고 한다. 시어머니의 상을 당했을 때는 병원 옆에 방을 하나 얻어놓고 3000배를 하고 나왔다고 하니, 산속의 여느 수행자보다 더 지독한 생활을 한 것이다. 이야기를 듣다가 내가 물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여행을 떠났으면 여행에 집중하는 것도 3000배 못지않게 중요한 수행 아닐까요?”

“부처님 그리고 큰스님과의 약속이고, 또 무엇보다 저와의 약속이었으니까요. 천 일 동안만이라도 철저히 지켜보고 싶었어요. 하루에 3000배를 하려면 다른 일은 거의 못하죠. 아이들 간식도 제대로 챙기지 못해 계모가 아니냐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이렇게 해도 되는 건가 회의가 들기도 했는데, 큰스님께서 이 소릴 듣고 ‘잘 하고 있다’고 하셔서 밀고 나갔죠.”

이럴 때 신뢰하는 선지식의 한 말씀은 용기백배하게 하는 힘이 있어 더욱 박차를 가하게 한다. 또한 철저한 노력을 하고 있는 자신에 대한 믿음도 전력투구하게 한다. 한 달에 두세 번은 백련암으로 가서 성철 스님을 친견하고 3000배를 하거나 만 배를 하며 힘을 냈다고 한다.

비정한 엄마 소리를 들었던 그녀는 아침 일찍 세 아이들을 깨워 108배를 하게 한 다음 학교에 보냈고, 방학을 맞으면 21일 동안 반드시 3000배를 시켰다. 사업을 하는 남편도 매일 108배를 하는 것은 물론, 해외출장을 갈 때도 ‘108대참회문’을 가방에 넣고 갔다고 한다.

그렇게 지독하게 3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3000배를 하고 나서 과연 그녀는 무엇을 깨달았을까?

“깨진 사발도 다시 붙여서 완성품을 만들 수 있는 힘이 내게 있다는 것을 깨달았죠. 성철 큰스님께서 사람에게는 상상할 수도 없는 큰 힘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셨는데, 그 말씀의 의미를 알겠더군요. 하루에 만 배를 할 때는 정말 죽을 것처럼 힘든데 죽지 않더라고요.”

그녀는 첫 천일기도를 끝내고 바로 이어서 하루 3000배 기도를 20년 동안 쉬지 않고 했다. 서른두 살에 시작한 하루 3000배 기도가 쉰두 살에 끝난 것이다.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20년 동안 3000배를 했다는 것은 친구들과 만나 얘기도 하고 맛있는 것을 먹으러도 가고, 가족들과 긴 여행을 하면서 휴식을 가지기도 하는 평범한 삶을 포기하는 것을 텐데 후회는 없었을까.

“아니요! 절을 하니 저절로 하심이 되고 복과 지혜를 얻게 되는데 어떻게 안 할 수 있나요? 쓸데없는 것들에 마음과 시간을 낭비하지 않게 되어서 좋았어요. 늘, 내면은 차분하고 여유로웠고, 현실적인 생활에선 더 적극적이고 열정적으로 살았던 것 같아요.”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서 그녀가 얻은 지혜와 복은 어떻게 세상에 회향되었을까, 궁금했다. 정진의 완성은 나눔에 있다는 것을 터득했다고 하니까, 사업가의 아내인 그녀가 세상에 베풀었을 회향을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알 것 같다.

지금 그녀는 매일 1080배를 한다. 나이도 있으니 좀 줄여하라는 말도 듣지만 체력이 허락하는 한 70세까지는 할 생각이라고 한다. 그렇게 절을 하다가는 무릎이 견뎌나겠느냐고 물을 수도 있는데, 글쎄 그녀를 보면 그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녀의 다리는 튼튼하고 무사하며, 어디 아픈 데 없고, 같은 연배들보다 20년은 더 젊고 아름다워 보이니까.

탁월한 능력은 훈련과 습관이 만들어낸 작품이라고 했던가. 철저한 자기절제와 굳건한 신념 없이 이뤄질 수 있는 건 없다. 108배로, 혹은 3천배로 그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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