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범모 교수의 ‘佛道紀行’-쿠시나가라의 열반상

쿠시나가라 열반당의 붓다 열반상. 비스듬하게 누운 자세에서 붓다상에는 평범함 속 비범이라는 또 다른 위대함이 담겨있다.
걷는다. 마지막 길이다. 그동안 참으로 많은 길을 걸었다. 이제 노구를 이끌고 마지막 길을 걷는다. 녹야원에서 첫 설법을 내리고 제자들과 함께 고향과 가까운 북으로 발길을 돌린다. 바이샬리성 근처의 한 마을에서 머문다. 하필이면 흉년이 들어 걸식조차 어려울까. 붓다의 마지막 길. ‘열반’이라는 단어가 어른거린다.

“나는 지금 병이 나서 온몸의 아픔이 점점 심해진다. 그러나 제자들이 모두 흩어져서 없는데 열반에 드는 것은 옳지 않다. 대중이 모이기를 기다려 열반에 들리라. 나는 힘써 정진함으로써 선정에 들어 삼매의 힘으로 병을 이겨내고 목숨을 이으리라.” <유행경>中

아난다는 스승에게 질문했다. 열반 이후 승단을 위한 지침 내용이었다. 이에 대해 붓다는 “나는 이제까지 안팎을 가리지 않고 모두 설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몸은 낡은 수레와 같다고 했다. 진리의 법을 의지처로 삼으라고도 일렀다. 바로 사자후 한 말씀. “스스로가 등불이 되고, 스스로가 의지처가 되어 다른 사람을 의지처로 삼지 않으며, 법을 등불로 삼고, 법을 의지처로 삼아 다른 것을 의지처로 삼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참 나의 제자요, 이 승가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자이다.”

붓다의 발걸음이 멈춘 열반처
평범하지만 위대하였던 마지막
現 열반당 복원돼 열반상 봉안
자연스런 성인의 모습에 ‘감동’
한국 불상엔 왜 열반상 드물까


스스로의 등불, 이 보다 훌륭한 말씀이 어디에 있는가. 자등명(自燈明),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좋은 말이다. 하지만 길 위에서 길이 어디냐고 묻듯, 손에 등불을 쥐고서도 등불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 이들. 아, 등불은 어디에 있을까.

쿠시나가라(Kusinagara). 도보의 종점. 거기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붓다의 80년 평생은 그렇게 마감되었다. 쿠시나가라, 열반의 땅이다. 현재 카시아라 불리는 조그만 마을이다. 나는 쿠시나가라에서 살짝 실망을 안은 기억이 있다. 주위 환경이 생각보다 허전했기 때문이다. 기념비적인 건조물. 사람들은 그런 것을 기대한다. 특히 먼 나라에서 온 나그네들은 압도적인 그 뭔가를 기대한다. 나그네는 ‘감동’을 준비하고 길을 떠났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반복한다면, 나는 쿠시나가라에서 감동은 커녕 허전한 분위기만 안아야 했다. 폐허였다.

당나라 현장의 <대당서역기>에 의하면, 쿠시나가라 서북쪽 강을 건너면 사라나무 숲 속에 열반상이 있는 집이 있다고 했다. 아쇼카왕 석주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폐허로 변했다. 13세기 무슬림 침입은 모든 것을 재로 바꾸었다. 폐허를 다시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후반, 그리고 1956년 미얀마 스님들에 의해 열반당이 세워졌다.

가지런하게 정렬된 초석의 건물터 뒤로 특이한 형식의 대열반당이 있다. 복발형 스투파의 수직성과 기다란 원통형 지붕의 수평성. 수직과 수평으로 조화를 이룬 건축. 직선 구조의 건물 터의 붉은 색 벽돌과 곡선 지붕의 하얀색이 대비되는 독특한 분위기이다. 대열반당 안에 들어가면 붓다의 열반상이 모셔져 있다. 원래 이 열반상은 1876년 부서진 채로 발견되었다. 그런대 놀랍게도 이 열반상은 5세기의 하리발라라는 불자가 봉헌했다는 명문을 지니고 있다. 열반상. 사실 불교계는 붓다의 열반을 비중 있게 다룬다. 쿠시나가라의 열반상은 세계의 불자들을 이끄는 성지가 되고 있다.

대열반당 안에 들어가면 열반상과 마주할 수 있다. 길이 약 6m의 대작이다. 붓다는 머리를 북쪽으로 두고 몸을 서쪽으로 비스듬히 눕혔다. 참배자들은 열반상 주위를 돌면서, 혹은 무릎 꿇고 앉아서, 마치 붓다께서 살아계신 것처럼, 경배를 올린다. 세계 도처에서 온 불자들. 그들의 피부와 옷차림은 달라도 불법 아래 합장한 모습은 같았다. 더군다나 나의 눈길을 강하게 끈 것은 바로 가사 갈아입히기, 바로 그것이었다. 각 신행 단체들은 순서를 기다려 새로운 가사로 불신(佛身)을 덮었다. 그래서 열반상은 머리와 발 부분만 겉으로 들어 낸 모습을 보였다. 그건 그렇고, 어찌하여 붓다는 이곳에서 누워있을까.

열반의 땅 쿠시나가라에 이르는 길. 붓다는 파바 성에서 마지막 공양을 받았다. 공양을 올린 이는 춘다, 바로 대장장이 아들이었다. 춘다는 진귀한 전단나무 버섯 요리를 올렸다. 이를 든 붓다는 버섯음식을 다른 수행자에게 주지 말라고 했다. 독버섯이었다. 춘다의 버섯음식을 든 붓다는 배의 통증을 심하게 겪어야 했다. 설사와 하혈까지 하는 고통이었다. 하지만, 붓다는 춘다의 공양으로 죽음에 이르면서도, 춘다를 꾸짖지 말라 했다. 최상의 공덕은 깨달을 때와 열반에 들 때 공양을 올린 것이라 강조했다. 때문에 춘다의 공양도 공덕이 있는 것이라 했다.

쿠시나가라 열반당의 전경.
나는 쿠시나가라에서, 열반상을 돌면서, 춘다를 생각했다. 이승의 붓다께서 든 마지막 공양, 그것은 춘다의 공양,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춘다는 대장장이의 아들이다. 그는 왕후장상이 아닌 세속의 평범한 사람이다. 춘다의 공양. 최상의 음식을 만든다고 만든 것이 하필이면 독버섯 음식일까. 이 말은 평소 집에서 먹지 않았던, 그러니까 매우 귀하게 여긴 ‘특별한 음식’이었다는 의미이다. 평소 잘 들었던 음식이라면, 그러니까 춘다의 집이 부잣집이었다면, 독버섯은 피했을 것이다. 붓다는 이런 사정을 이미 알고 다른 수행자에게 버섯을 주지 말라고 당부했을 것이다. 평범하게 이승을 마감하는 모습, 뭔가 생각하게 한다. 더군다나 붓다께서 열반에 이른 장소 역시 특별한 곳은 아니었다. 사라쌍수의 평범한 길이었다. “북쪽으로 머리를 향해 오른쪽 옆구리를 바닥에 붙이고 잠자는 사자처럼 발을 포개고 누우셨다.” 그러니까 붓다는 비스듬히 누워서 생애를 마감했다. 좌탈입망(坐脫入亡)도 아니고, 무슨 이적(異蹟)을 보여준 것도 아니었다. 붓다는 수바드라에게 말했다.
 
“나는 스물아홉에 도를 찾아 출가했으니, 이제 출가한지 50년이 넘었구나. 계행과 선정과 지혜의 수행을 홀로 깊이 생각하고 닦았노라. 이제 법의 핵심을 설했으되 그 밖에는 사문의 전실한 길이 없노라.” <대반열반경>中
 
지혜의 수행을 홀로 닦았다는 것. 비록 붓다는 누워서 아무런 일도 아니라는 듯 눈을 감았다. 하지만 천상과 지상의 모든 것들은 이 거룩한 순간을 모른 채 하지 않았다.

“그때엔 꽃이 필 시기가 아님에도 갑자기 두 그루의 사라나무는 가지마다 일제히 꽃을 피워 부처님의 몸 위에 뿌렸다. 그러자 모든 하늘과 용과 귀신인 팔부 대중들이 허공에서 온갖 미묘한 꽃을 비 내리듯 했으며, 하늘에서 풍악을 울리며 노래하고 부처님을 찬탄했다.”

붓다는 평범하게 열반에 들고자 하나 하늘과 땅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꽃비가 내리고 풍악이 울렸다. 붓다의 마무리는 평범함, 그 자체였다. 평범한 사람들 속에서의 평범한 죽음. 나는 쿠시나가라에서 이 평범함 속의 위대함을 생각해 보았다. 특히 비스듬하게 누운 자세. 평생 수행하면서 정각에 이른 성인의 모습과 거리가 있는 자연스런 모습. 나는 비스듬하게 누운 자세에서 붓다의 또 다른 위대함을 생각했다. 평범 속의 비범이라고 할까. 그나저나 무엇 때문에 한반도에서는 열반상을 볼 수 없을까.

많고도 많은 불상 작품들을 섭렵하면서, 나는 이런 의문을 놓지 않았다. 열반의 상징성이 매우 높은 것이라 한다면, 당연히 열반상은 숱하게 조성되었을 것이다. 탄생불은 많아도 열반상은 없는 나라.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나는 <대반열반경> 제36권 마지막 법문을 음미한다. 붓다의 그 법문 내용이 얼마나 좋은지, 한량없는 항하사 중생들이 성문의 마음을 내었고, 세간의 여자와 천상의 여자 2만억 명이 몸을 변하여 남자의 몸을 얻었다고 했다. 그 때 붓다는 ‘모양이 없는 모양(無相之相)’에 대하여 법문을 내렸다. 과연 무상지상은 무엇인가.

“선남자여. 온갖 법이 제 모양도 없고 남의 모양도 없고, 저와 남의 모양도 없고 인이 없는 모양도 없으며, 짓는 모양도 없고 받는 모양도 없고, 짓는 이의 모양도 없고 받는 이의 모양도 없으며, 법의 모양도 없고 법 아닌 모양도 없으며, 남녀 모양도 없고 장정 모양도 없으며,<중략> 있는 모양도 없고 없는 모양도 없으며, 나는 모양도 없고 내는 모양도 없으며, 인(因) 모양도 없고 인의 원인 모양도 없고, 과(果) 모양도 없고 과의 결과 모양도 없고, 낮과 밤의 모양도 없고 어둡고 밝은 모양도 없으며, 보는 모양도 없고 보는 이 모양도 없으며,<중략> 선남자여. 이런 모양들이 멸한 곳을 진실한 모양이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온갖 법이 모두 헛된 가짜이거든, 그것이 없어진 데를 참이라하나니 이것을 실상(實相)이라 하고, 법계(法界)라 하고.<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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