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여여정사, 2월 25일 가야문화학술대회

▲ 김해 여여정사와 동명대 인도문화연구소는 2월 25일 여여정사에서 ‘가야문화의 원형탐색과 콘텐츠화, 해양불교 전파의 모형탐색’를 주제로 제2회 가야문화학술대회를 개최했다.
[현대불교= 신성민 기자] 한반도 불교 전래설 중 정설은 인도와 중국을 거쳐 불교가 들어왔다는 ‘북방전래설’이다. 이와 더불어 해양을 통해 불교가 전래됐다는 ‘남방전래설’도 있지만, 이에 대해 역사학계는 비판적인 입장을 취한다. 하지만, 불교계를 중심으로 한반도 불교가 해양을 통해 전래됐다는 ‘남방전래설’을 규명하기 위한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남방전래설 의미·가능성 모색
불교 전래 문화교류사 관점서
‘종합문화체’로 이해·연구돼야
6가야 분리, 전래사 접근 필요


김해 여여정사(주지 도명)와 동명대 인도문화연구소(소장 장재진)는 2월 25일 여여정사에서 ‘가야문화의 원형탐색과 콘텐츠화, 해양불교 전파의 모형탐색’을 주제로 제2회 가야문화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한반도 불교 남방전래설의 의미와 가능성을 모색하는 국내외 불교학자들의 논문들이 발표됐다.

고다비리샤 미슈라 인도 마드라스대 교수는 ‘인도에서 한반도까지 불교 전래 경로’ 발제를 통해 “이미 삼국의 승려가 4세기에 불법을 배우기 위해 인도로 왔던 기록이 있는 만큼 인도서 한반도로 불교가 직접 전래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가야의 쌍어문이 타밀나두 주 빤디아 왕국의 상징인 점과 한국과 인도어의 유사점을 든 미슈라 교수는 “서아시아와 동아시아의 고대항해기술은 매우 높은 수준이었다”며 “이를 감안하면 인도에서 인도차이나, 중국, 가야로 이어지는 불교 해상 전래 루트로 가능하고 존재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영섭 동국대 교수는 ‘가야불교 남방전래설의 재검토’ 발제에서 가야불교를 크게 아가야와 금관가야, 대가야로 구분해서 ‘남방전래설’을 고찰해야 함을 강조했다.

고 교수는 “가야는 여섯 가야의 연합체이지만, 고고학적 자료에 의하면 아라가야와 금관가야, 대가야로 나누어 보는 것이 맞다”면서 “아라가야는 고구려 불교의 영향을, 대가야는 백제 불교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고, 두 가야국의 불교는 대승불교였다”고 설명했다.

반면, 금관가야는 허왕후와의 출자나 아유타국, 파사석탑 등의 기록을 통해 남방불교와 해양불교를 수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 고 교수의 주장이다.

고 교수는 “금관가야 8대 질지왕이 시조와 시조모인 수로왕과 허왕후를 기념해 세운 최초 사찰과 왕후사는 불교의 수용 문제에 있어 해양세력이 있었음을 보여준다”면서 “금관가야 불교는 남방불교와 해양불교의 접목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이거룡 선문대 교수는 ‘한국불교남래설 고찰’ 발제를 통해 불교 전래는 문화교류사적 입장에서 고찰해야 함을 역설했다. 그러면서 허왕후 이전에 가야에 불교가 전래됐을 것이라는 주장도 내놨다.

이 교수는 인도의 밧뜨(S.R Bhatt)교수의 “가야불교는 기원전 1세기 이전에 해상경로를 통해 들어왔다”는 주장을 인용하며 민간 차원의 전래 가능성을 제기했다. 실제 밧뜨 교수는 “인도의 어떤 왕도 자신의 딸을 일면식도 없는 왕과 결혼시킨 적이 없다. 수로왕과 허왕후가 결혼한 것은 두 나라 사이에 상당한 시간의 사회·문화적 교류가 있기에 가능했다”면서 불교가 이전에 가야에 전래됐음을 주장한바 있다.

이 교수는 ‘가야’는 남인도와 네팔서 사용되는 드라비다어로 ‘물고기’를 의미하고, 수로왕의 이름은 통치자와 영웅을 의미하는 범어 ‘슈라(sura)’의 음차임을 언급하며, 두 국가의 교류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 교수는 “허왕후가 들어오던 시기 가야지역에 인도문화의 상당한 영향이 있었다는 것은 이미 두 왕국 사이에 긴밀한 접촉, 개인적 교우관계, 사회 교류가 있었다는 것은 밧뜨 교수의 주장을 뒷받침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종교는 일종의 문화현상이기 때문에 전래과정에 대해서는 문화교류사적 입장서 고찰돼야 한다”며 “불교를 하나의 ‘종교적 종합문화체’로 인식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