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불교연합신도회, 애국불교 역사 강조

▲ 부산불교연합신도회는 3월 1일 ‘범어사 3·1운동 유공비’ 앞에서 기념 행사를 진행했다. 연합신도회는 행사를 통해 기미년 3·1운동 당시 부산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부산불교계와 범어사 내 명정학교 학생들의 호국정신을 기억하고 재조명했다.

[현대불교=하성미 기자] 부산불교연합신도회(회장 박대성·이하 연합신도회)가 1919년 3·1 부산 독립만세운동의 주동은 범어사 내 불교학교 학생 41명과 불교계 지도층이었음을 강조했다. 아울러 역사 속 호국불교를 적극 알리기 위해 지속적인 활동을 전개 할 것을 밝혔다.

부산불교연합신도회, 독립만세운동 재현
유공비 위치, 만세운동 출발지
역사 속 호국불교 역할 강조
“역사 알리기 위해 지속적으로 활동 펼칠 터”


연합신도회는 3월 1일 범어사 3·1운동 유공비 앞에서 ‘3·1운동 기념 행사’를 개최했다. 행사는 기미년 3·1운동 당시 부산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부산불교계와 범어사 내 명정학교 학생들의 호국정신을 기억하고 재조명하기 위해 개최됐다.

먼저 헌향과 묵념으로 독립운동 가운데 희생당한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을 추모했으며 독립선언문 낭독과 기념사, 축사, 삼일절 노래 합창, 만세 삼창 순으로 식을 진행했다. 행사에는 범어사 총무국장 원타 스님을 비롯해 박대성 부산불교연합신도회 회장 및 회원 100여명이 참여했다.  
▲ 범어사 총무국장 원타 스님은 "독립 운동을 외쳤던 그 마음이 현재 대한민국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생각한다"며 "어려운 시국도 애국의 마음으로 잘 극북하리라 믿는다"고 격려했다.

원타 스님은 “1919년 3월 1일 온 국토가 태극기로 물들이고 목소리 높여 대한독립을 외쳤던 그 마음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그 뜨거운 마음을 숭고히 받들어 지금 어렵고 힘든 시기를 희망으로 헤쳐 나가는 힘이 되고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며 격려했다.
▲ 박대성 부산불교연합신도회 회장은 "호국불교의 역사를 재 조명하고 알리기 위해 행사를 개최했다"며 "앞으로 독립 운동을 주도한 애국 불교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매년 행사를 열것이다"고 말했다.

박대성 회장은 “어느 젊은 불자가 독립운동 역사 가운데 불교의 역할을 찾기가 어렵다는 말을 저에게 한 적이 있었다. 독립을 위해 활동한 불교지도자와 학생들의 역할을 이미 역사에서 검증 되었음에도 알리지 않는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1919년 3월 1일 만세 운동이 서울에서 열린 후 부산에서는 3월 18일 날 열렸다. 오늘 우리 앞에 위치한 이 범어사 유공비가 스님들과 학생들이 함께 출발한 지점이 였다”며 유래를 설명했다. 이어 “서슬 퍼렇던 일제의 핍박 속에서도 대한독립을 위해 우리 부산불교계가 앞장섰던 호국 불교의 정신을 계승하고 부산 시민의 자긍심과 애향심을 고취하도록 다양한 노력을 이어 갈 것이다”고 강조했다.

연합신도회는 앞으로 역사를 구체적으로 알리기 위해 회원 뿐 아니라 종립학교 학생들의 참여도를 높이고 태극기 행진 등을 통해 지역민들에게 관심을 촉구 할 방침이다.

1919년 3월 18일 열린 만세 운동은 불교계 지도층이 배후 비밀참모로 활동하고 당시 범어사 내 보통학교과정인 명정학교와 고등보통학교과정 인 지방학림 소속의 학생 41명이 주동한 학생의거이다. 18일 밤 동래읍 서문 근방에서 의거를 시작해 ‘대한독립만세’를 높이 외치며 동래시장을 거쳐 남문에 이르기 까지 행진했다. 이어 19일 오전 허영호·이영우·황학동·윤상은 등은 허영호가 쓴 ‘한번 죽음은 자유를 얻는 것만 같지 못하다’는 격문을 만들어 군중들에게 배포했다. 오후 5시경에 동래 시장 남문 부근에서 시위를 전개하여 동래 경찰서로 돌진했다. 경찰은 이들에게 총을 쏘며 저지했고 주동자들을 체포했다.

이 때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 가운데 체포된 사람은 33명이며 그 가운데 31명은 6개월 내지 2년의 징역형을 받아 옥고를 치러야만 했다. 또한 명정학교와 지방학림은 재학생들의 만세시위사건 참가로 인해 일제로부터 1919년 3월 31일 폐교 된다. 1921년에 범어사 사립명정보통학교는 운영난으로 공립청룡보통학교에 병합되었다가 1926년부터 해방 이전까지 금정불교전문강원으로 존속하게 된다. 해방 이후 1950년에 금정중학교로 명칭을 바꾸어 현재 종립학교로 운영되고 있다. 유공비는 광복 50주년을 맞아 1995년 3월 1일 금정구에서 건립했다. 유공비 옆면에는 만세 운동을 주동한 학생 41명의 명단이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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