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후같이 생명력 있는 법거량 필요

법거량(法擧量)에 대해

내가 해인사에 머문 기간은 1967년에서 1973년까지 6년 남짓이다. 당시 해인사에는 성철 스님이 방장으로 계셨고 용탑전에는 고암 스님이 계셨다. 영암 스님, 자운 스님, 지월 스님, 일타 스님, 혜암 스님, 법전 스님, 지관 스님 등도 해인사의 대중이셨다. 이분들 중 고암, 성철, 혜암, 법전 스님께서는 종정을 역임하셨고 지월 스님, 일타 스님께서는 수행의 참 스승으로 전설이 되신 분이다.

해인사 선원에 자주 다녀가시는 분으로는 청담 스님, 서옹 스님, 향곡 스님 등 당대 최고의 선지식 스님들이 줄을 이었다.

선원의 구조는 3개월을 용맹정진하는 조사전 선원과 가행정진의 퇴설당 선원, 그리고 구참과 신참이 어우러져 한방에서 정진하는 대중 선원이 있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선원의 정진 대중은 70명에서 80명에 이르는 스님들이 매섭도록 마음을 다잡아 간절심으로 정진했다.

물론 해인사는 종합수도 도량인 총림(叢林)이므로 강원(講院)과 율원(律院), 염불원(念佛院) 등이 갖춰져 있었다. 헤아려 본 것은 아니지만 당시 해인 총림의 대중은 200여 명에 산내암자까지 합하면 400여 명일 터이다.

당시만 해도 법거량(法擧量)하는 아름다운 모습이 자주 있었다. 법거량이란 수행 정진해 열린 마음의 지혜를 스승을 찾아 묻고 그 물음의 깊고 낮음을 판단해 답하는 법(法)의 저울질인 셈이다. 방장이신 성철 스님이 법상에 올라 설법하실 때도 간혹 있으나 선원의 대중 방에 고암, 성철, 서옹, 향곡 스님 등이 계실 때 활발하게 법거량이 이어졌다. 드물게 청담 스님께서도 참석하시어 법거량하는 눈 푸른 스님들이 당시엔 많이 계셨다. 당시 법거량 하시던 많은 스님들이 이미 세상을 떠나셨고 몇몇 스님은 이 곳 저 곳의 선원에서 후학(後學)지도에 큰 발자취를 남기고 있다.

그런데 요즘에 와서 법거량은 생명력을 잃고 희미한 그림자만 남긴 채 사라져 가고 있다. 법상(法床)에 올라 설법하는 사자후(獅子吼)도 쩌렁쩌렁한 울부짖음의 울림이 아니라 중국 선사들의 외침을 짜깁기하는 수준에서 날이 갈수록 그 힘을 잃어가고 있다. 그러다보니 용상(龍象)의 자리에 서열 위주의 문중 대표가 앉아 억지 법문을 종이에 적힌 대로 읽는 해프닝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거짓과 가난은 금방 드러난다는 몽골 속담이 있다. 한 문중의 대표적 어른이라면 수행인으로 존경받아야 마땅하고 당연히 후학(後學)들을 지도함이 타당할 터이다. 그러나 마음 열린, 깨달음의 선지식(善知識)은 아닌 것이다.

경전의 사구게(四句偈)에도 막히고 조사어록에도 헤맨다면 그는 앞도 캄캄하고 뒤도 캄캄한 흑암(黑暗)선사일터. 자신도 속이고 남도 속이는 거짓 설법은 몽골 속담처럼 불편한 가난처럼 환히 드러나고 있음을 알아야한다.

어느 날 해인사의 노스님 한분이 사자암에 오셨다. 그 스님이 내게 물었다. “백척간두(百尺竿頭)에서 진일보(進一步)할 경우 어느 곳에 이르게 됩니까?”

내가 대답했다. “날마다 좋은 곳(日日是好處)에 이르지요.”

그 노스님이 다녀간 후 해인사의 다른 스님이 전화로 물어왔다. “몸과 마음에 한 물건도 지니지 아니했을 경우 그 다음 공부는 어떻게 해가야겠습니까?”

내가 대답했다. “놓아버려야지요(放下着).”

그 스님이 힘줘 다시 되물었다. “방금 몸과 마음에 한 물건도 지니지 아니했다고 했거늘 대체 무엇을 놓아버리라는 말씀인가요?”

“몸과 마음에 한 물건도 지니지 아니했다는 그 생각마저도 놓아버려야지요.”

그 뒤 해인사에서 젊고 건장한 스님 둘이 눈이 오는 날 사자암에 찾아들었다. 그때 진돗개가 사납게 짖어댔다. 그 중 한 스님이 내게 말했다. “사자암, 사자암해서 사자암에 찾아 왔더니 사자(獅子)는 보이지 않고 개 짖는 소리만 요란하네요.”

나는 말하였다. “눈은 없고 귀만 달랑 붙어있어 그런 겁니다.”

그러자 그 스님이 만만찮게 대들었다. “그럼 사자(獅子)를 보여 주십시오.”

“악!” 나는 사자후 하듯 큰소리로 할(喝)을 내질렀다. 또 한 스님이 내게 물었다. “용화세계에 출현할 미륵불은 언제 나타납니까?”

“발길 닿는 곳이 용화세계요, 만나는 사람이 미륵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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