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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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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이 ‘나무아미타불’ 한 구절에 있더라⑤ 정토종 제12조 철오 선사

   
 
“한 생각이 부처님과 상응하면 한 생각이 부처님이고(一念相應一念佛), 생각생각이 부처님과 상응하면 생각생각이 부처님이다(念念相應念念佛). 맑은 구슬을 흐린 물속에 넣으면, 흐린 물이 맑아지지 않을 수 없듯이 부처님 명호를 어지러운 마음 속에 던지면, 어지러운 마음이 부처님처럼 안 될 수가 없다. 이러하다면, 염불이 마음을 맑히는 요체가 아니겠는가.” - 철오 선사 어록

임제종 36대 조사로 ‘정토수행’ 선양
수여순(粹如純) 선사로부터 인가를 받아 임제 선사의 36대 법손이자 정토종 제12조로 추대된 철오(徹悟, 1741~1810) 선사. 그는 청나라를 대표하는 대선사이면서도 연지ㆍ우익 대사와 마찬가지로 선종과 교종, 정토종까지 통달한 대선지식으로서, 영명연수 대사의 선(禪)과 정토를 함께 닦는 선정쌍수(禪淨雙修) 전통을 충실히 계승했다. 인가를 받은 후에도 항상 영명연수 대사를 생각하면서 선지(禪旨)만 가지고는 ‘생사의 큰일(生死大事)’을 감당하기가 지극히 어렵고, 구경(究竟) 성불을 위해서는 반드시 염불로 일단 윤회를 벗어난 후 극락정토에 화생하여 불퇴전지(不退轉地) 보살로서 무생법인(無生法忍: 나고 죽음이 없는 도리)을 증득해야 함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선(禪)의 종지를 깨닫고 여러 종파의 교법을 통달하고 보니 팔만대장경이 ‘나무아미타불’ 한 구절에 있더라”는 철오 선사의 법어는 당신의 수행관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는 한마디 부처님 명호에는 깨달음(悟)과 닦음(修)이라는 두 법문의 핵심 요체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고 보았다. 깨달음을 들자면 믿음(信)도 그 안에 담겨 있고, 닦음을 들자면 증득(證)도 그 가운데 담겨 있다. 따라서 ‘나무아미타불’ 염불에는 믿음(信)과 깨달음(解; 解悟)과 닦음(行; 修行)과 증득(證)의 네 법문이 모두 함께 포섭되어 있고, 대승과 소승을 비롯한 일체 경전의 요체가 빠짐없이 망라돼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난해한 교리와 화두를 참구하는 것도 훌륭한 일이지만 가장 쉽고 간단하며 효과적인 칭명염불(稱名念佛)을 적극 권장할 수 밖에 없었으리라.

법상종의 미묘한 종지 통달해
각생사 복원, 염불열풍 일으켜
‘설법제일’ 인기법사, 자복사 은거
문수보살 친견이 정토행자 중 특이

선(禪)과 유식(唯識) 깨닫고 대승경전 통달
선사의 휘(諱: 본명)는 제성(際醒)이고, 자는 철오(徹悟)이며, 별호(別號)는 몽동(夢東)이다. 북경 동쪽 하북성의 풍윤현(豊潤縣) 사람으로, 성은 마(馬) 씨였다. 어려서 제반 학문을 두루 섭렵하여 천재성을 발휘했지만, 22세에 중병을 앓고 허깨비 같은 육신이 덧없음을 자각하고 출가를 발심하였다. 병이 낫자 방산현(房山縣: 현 북경시) 삼성암(三聖庵)의 영지(榮池) 노스님께 삭발 출가하였고, 이듬해 수운사로 가서 항실(恒實) 율사로부터 구족계를 받았다.

이듬해인 24세 때는 향계사에서 융일(隆一) 법사가 원각경을 강설한다는 소식을 듣고 참석하였다. 아침 저녁으로 법문을 듣고 질문하며 오묘한 뜻을 탐구하여, 마침내 원각경 전체의 요지를 깨달았다. 곧 이어 증수사의 혜안(慧岸) 법사에게 법상종(法相宗) 법문을 듣고 미묘한 종지를 요달했다. 그 뒤 심화사의 편공(?空) 법사 아래서 법화경ㆍ능엄경ㆍ금강경 등을 원만히 이해하고 깨달아, 법성(法性)·법상(法相)의 2종(宗)과 3관(三觀: 천태종의 공관空觀ㆍ가관假觀ㆍ중관中觀)과 10승(乘)의 요지에 막힘 없이 두루 통달하였다.

인가 받고 선정쌍수 가풍 일으켜
청나라 건륭(乾隆) 33년(1768) 겨울, 운남성 광통현(廣通縣)의 수여순(粹如純) 노스님을 참방하여 향상(向上: 돈오의 지극한 경지)의 일을 밝히니, 수(粹) 선사가 마침내 인가하였다. 바로 임제 선사의 36세(世)이자, 경산(磬山) 선사의 7세 법손이 되었다.

건륭 38년(1773) 수 선사께서 만수사로 옮겨 가자. 철오 선사가 그 뒤를 이어 광통에 주석하게 되었다. 대중을 거느리고 참선하며 후학들을 가르쳤는데, 14년을 하루처럼 조금도 피곤하거나 싫은 기색 없이 지도하자, 그 명성이 남북으로 널리 퍼지고 선풍(禪風)이 크게 일어났다.

철오 선사가 늘 제자들에게 가르친 수행법은 영명연수 선사가 선종의 조사이면서도 정토에 귀의하여 매일 ‘나무아미타불’ 명호를 10만 번씩 염송함으로써 극락정토에 왕생하길 발원하였던 염불법이었다. 당신 스스로도 매일 향 하나 탈 동안만 사람들을 제접하고는 나머지 시간은 부처님께 예배 드리고 오직 염불에 전력하였다.

건륭 57년(1792) 각생사(覺生寺)로 옮겨 8년간 주지를 맡으면서는, 폐허가 된 절을 복원했다. 정업당(淨業堂) 외에 따로 세 당(堂)을 세웠으니, 열반당(涅槃堂)ㆍ안양당(安養堂)ㆍ학사당(學士堂)이 그것이다. 이로 인해 노인이나 병자가 의탁할 곳이 생겼고, 초학자들이 염불이나 독경하기가 편리해졌다. 염불행과 더불어 자비행을 실천함에 있어 스스로에게는 엄격하였고, 남들을 대함은 몹시 간절하였으며, 법을 설하여 대중을 일깨움에는 마치 입에 감로수를 부어주듯 자상하였다. 사방 원근에서 선사의 교화를 존경하여 따르고, 승가나 속가 모두 일심으로 귀의하였다.

철오 선사는 당시에 ‘설법 제일’의 인기 법사였지만, 모든 것을 놓고 홍라산 자복사(資福寺)에 은거하여 조용히 한평생을 마치려 했다(1800). 그러나 대중 가운데 그를 흠모하여 뒤따라 나서는 이들이 몹시도 많았다. 선사가 자비심에 찾아 오는 수행자를 외면할 수 없어 함께 머물 수 있도록 허락하자 순식간에 총림이 형성되었다. 대중이 많아져 중창불사에 임할 때는 땔감을 장만하고 물을 길어 나르며, 진흙을 이겨 집의 벽을 바르기까지 모두 대중과 똑같이 생활하였다.

극락은 불퇴전지 보살들의 성불학교
이렇게 하여 10년의 세월이 흐른 1810년 2월, 선사는 만수사에 찾아가 은사이신 수 조사의 부도탑을 참배하고, 여러 산사를 외호하는 신도들에게 감사 인사를 드리며, 이렇게 당부하였다.

“허깨비 같은 짧은 인생 허송 세월하면 안타깝기 그지 없소. 모두 염불 공부에 매진해 극락정토에서 반갑게 만납시다.”

3월에는 다시 자복사로 되돌아와 당신의 다비에 필요한 물품을 미리 준비해 두었다. 10월 17일, 선사는 대중을 불러모아 사내의 업무를 일일이 맡긴 뒤, 제자인 송천(松泉) 스님에게 주지를 물려주고 후사를 부탁하였다.

입적하기 보름 전, 몸에 가벼운 병세가 느껴지자 선사는 “허공 중에 수없이 많은 깃발들이 서쪽으로부터 오는 모습이 보인다”면서, 대중에게 ‘나무아미타불’ 명호를 다 함께 염송해 달라고 당부하였다.

이에 대중이 세상에 좀더 머무시도록 권청을 드리자, 선사는 이렇게 경책했다.

“내가 성인의 경지(극락의 불퇴전지 보살)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으니, 그대들은 마땅히 스승을 위해 다행으로 여기고 환송해야 할 터인데, 어찌하여 붙잡으려 하는가?”

서방삼성ㆍ문수보살 친견하고 자재 왕생
선사는 12월 16일, 감원의 책임자인 관일(貫一) 스님에게 열반재(涅槃齋)를 올리도록 분부하더니, 17일 신(申: 오후 3~5시)시에 대중에게 작별 인사를 하였다.

“나는 어제 이미 문수ㆍ관음ㆍ대세지 세 보살님(大士)을 친견하였네. 오늘은 다시 아미타부처님께서 친히 나투시어 나를 맞이하여 데려가시려고 오셨네. 나 이제 가네.”

대중이 ‘나무아미타불’을 더욱 큰소리로 염송하는 가운데, 선사는 서쪽을 향해 단정히 앉아 합장한 뒤, 이렇게 말했다.

“위대하고 거룩한 명호(洪名: 아미타불)를 한 번 염송하면, 한 번 염불한 만큼의 부처님 상호(相好)를 친견한다네.”

그리고는 마침내 손을 미타인(彌陀印)으로 바꾸어 짓더니, 평안하고 상서롭게 왕생하였다. 그때 대중은 공중에 가득한 특이한 향기를 냄새 맡았다. 입적하신 유해를 이레 동안 받들어 공양하는데도 얼굴 모습이 마치 살아계신 듯 자애롭고 온화하며 생기가 넘쳤다. 머리카락이 흰색에서 검은 색으로 바뀌고, 빛과 윤기가 흘러 넘쳤다. 14일만에 감실에 모시고, 21일에 다비를 봉행하자, 사리 백여 과가 나왔다. 이에 문하 제자들이 선사의 유촉을 받들어 영골(靈骨)을 보동탑(普同塔) 안에 안장하였다. 이때 세수는 70, 법랍은 43세였다.

생사고해 헤엄쳐 건널까, 배 타고 건널까
일반적으로 정토행자들은 임종시에 아미타부처님과 관음ㆍ대세지보살의 서방삼성(西方三聖)을 친견하기 마련인데, 철오 선사는 문수보살까지 친견한 점이 특이하다. 아마도 선사께서 선(禪)과 교(敎)의 종지를 깊이 깨달아 지혜가 남달랐기에 문수보살께서 친히 선사를 격려하기 위해 나투신 것이 아닌가 사료된다. 실제로 문수보살은 보현보살과 함께 〈화엄경〉에서 왕생극락을 발원하였으며, 대승불교의 아버지이자 8종의 조사인 마명ㆍ용수보살까지 서방정토 왕생을 발원한 것이 어찌 우연이겠는가.

부처님의 마음을 전한 선종이 가장 수승한 행법임에는 틀림없지만, 오늘날과 같은 오탁악세에 진실로 확철대오하여 생사를 해탈한 선지식이 과연 몇 분이나 있는가. 지구촌 불교국가에서 윤회를 벗어난 아라한이 과연 몇 분이나 있는가. 이 점을 자문해보면 성불은 고사하고 윤회를 벗어나는 일조차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확률임이 자명할 것이다. 하지만, 자력과 타력을 겸비한 불력(佛力) 수행자는 ‘나무아미타불’만 염하면 수월하게 아미타부처님의 본원력(本願力)에 힘입어 일단 윤회를 벗어난 극락정토에서 보살로서 공부를 하게 되니, 다시는 퇴전하거나 악도에 떨어지는 일 없이 안심하고 성불을 기약할 수 있는 것이다.

당신이 생사의 고통스런 바다를 건너 피안(淨土)으로 가고자 할 때 직접 헤엄쳐 갈 것인가(自力), 배나 비행기를 타고 갈 것인가(佛力), 깊이 판단해 보라. 석가 세존께서 정토삼부경(아미타경, 무량수경, 관무량수경) 등에 간절히 설한 ‘속초(速超: 빠르게 윤회계를 초월하는) 성불의 길’을 자세히 탐구해 보시길 간절히 발원한다. 나무아미타불.

김성우 작가  noduc@hyunb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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