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절로 가는 길 ⑤ 보문사 가는 길

 

강화 외포리 선착장에서 설모도로 향하는 배에 갈매기 떼가 다가온다. 무심결에 새우깡을 던져주다, 싸우는 갈매기를 보며 쉬라바스티의 기원정사서 공양문제로 다툰 비구들을 떠올렸다.

인간에겐 각자 믿는 바가 있다. 자기를 믿든 타인을 믿든, 과학을 믿든 미신을 믿든, 사람은 믿지 않고는 못 배기는 존재이다. 어떤 종교는 꽤 철학적이기도 하지만 믿음만큼 대단히 중요하진 않다.

알랭 드 보통은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라는 책에, 무신론자일지라도 가치 있는 신앙의 측면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썼다. 부처의 무아론은 신의 전지전능을 부정하지만, 신을 갈망하는 사람들에 의해 무상해지고 말았다. 신을 갈망하는 사람들의 힘이 관세음보살을 등장시켰으니 말이다. 대승경전 법화경은 관세음보살을 찬탄하는 글로 일관한다. 관세음보살을 끊임없이 염불하면 불이 나도 타지 않으며, 홍수에도 떠내려가지 않으며, 악귀의 괴롭힘에도 태연히 견딜 수 있다. 칼과 몽둥이는 부러지고, 수갑과 족쇄는 끊어진다는 것이 법화경 관세음보살의 위신력이다.

강화도 외포리 선착장에는 이른 아침부터 관세음보살을 친견하려는 사람들이 배를 기다린다. 외포리에서 바다를 건너 석모도로 가는 여객선은, 폭풍주의보로 주문도나 교동도 가는 배가 뜨지 않을 때도 종종 시동이 걸려 있다. 관세음보살이 보우하사 그토록 배짱이 커진 게 아니라, 관세음보살이 있는 보문사(普門寺)로 가는 사람이 여전히 많기에 생겨난 배짱이다.

 

낙가산에서 내려다본 서해 갯벌과 바다

그들이 모두 절에 가는 사람이라고 단정할 순 없다. 그러나 그들은 갈매기들에게 새우깡을 보시하는 것으로 배 안에서 이미, 차안에서 피안으로 간다. 여객선이 움직이자마자 갈매기들은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와 사람의 손에서 새우깡을 채간다. 누군가에게서 구원받으려면 누군가를 구원해야 한다는, 일종의 공정 거래가 언제부터 생겼을까? 더 궁금하기로는 순례자와 갈매기 사이에서 검은돈이 된 새우깡이다. 그건 또 언제부터였지?

하나라도 더 먹으려고 경쟁하는 갈매기들의 끽끽 소리에 석모도 바닷길은 금세 저잣거리로 변한다. 야성을 잃은 갈매기에게 동냥의 이유를 묻는 것은 무의미하다. 부처가 쉬라바스티의 기원정사에 있을 때였다. 공양 문제로 다투는 비구들을 부처는 꾸짖었다.

“비구여, 그대들이 발우를 들고 집집을 돌아야 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비구여, 출가했을 때의 결심을 잊어버려 세간에 있을 때와 같다면 그땐 재가자가 누릴 수 있는 행복은 물론, 출가자가 얻을 수 있는 행복마저 놓치는 것이다.”

철부선이 석모도에 닿는 시간은 오 분 남짓이다. 승객들은 복잡하게 생각할 일이 뭐 있겠냐면서 새우깡을 나눠 주던 손을 탁탁 털며 배에서 내린다. 얻어먹는 ‘거지갈매기’를 탓할 일이 아니다. 사실은 그런 갈매기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새우깡을 건네는 사람도 문제이다. 적어도 절에 가는 사람이라면 탁발과 보시의 의미를 새겨볼 일이지 않은가.

부처의 상좌 마하가섭은 무덤에서 주운 분소의를 걸치고 걸식한 음식만으로 살았다. 언젠가 라즈기르 거리에서 걸식할 때였다. 상처와 고름을 더러운 천으로 가린 한 나병환자가 양지바른 곳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그는 마하가섭을 보고는 동료 의식에선지 자신의 깨진 발우를 내밀었다.

 

눈 내린 해명산 숲을 지나는 도반들

“이보시오, 이거라도 좀 드시겠소?”

마하가섭은 그러겠노라고 공손히 합장했다. 나병 환자는 환하게 웃으며 자신의 밥을 한 움큼 집어 마하가섭의 발우에 담아주었다. 그때 시커멓게 썩은 손가락이 음식과 함께 뚝 떨어졌다. 거리를 벗어나 한적한 우물가에 자리한 마하가섭은 발우에서 손가락을 가려내고 그 밥을 먹었다.

배에서 내린 순례자들은 관세음보살을 급한 마음으로 친견하려는 듯 서둘러 보문사 가는 버스를 탄다. 물론 나와 도반들도 그 버스를 탔지만, 다른 손님처럼 종점까지 가서 내리지 않고 중간에서 내렸다. 해명산과 낙가산을 넘어 보문사에 가려고 계획했기 때문이다. 버스를 타지 않으려면 30분가량 걸어야 한다.

들머리인 전득이 고개에서 숲을 파고든 가파른 산길에 올라붙은 지 10분이나 됐나, 갑자기 시야가 탁 트인다. 도반들에게서 짧은 탄성이 터져 나온다. 개펄을 쓰다듬는 바다와 올망졸망한 섬들을 드러낸 서해 특유의 풍경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우리가 걷는 산길에도 검은 개펄에도 이따금 눈발이 날리는 날씨였다.

능선길이 순해서 내내 해찰하듯 걷다가 해명산 정상이 가까워서야 안전로프를 잡고 슬랩을 올랐다. 낙가산 너머로 솟구친 상봉산 봉우리가 제법 힘차 보인다. 정상 표지석을 지나니 너럭바위 지대이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만 이 바윗길을 지나며 바다를 내려다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버스에서 일부러 내려 산길을 걷는 사람만의 즐거움이다.

이윽고 새가리 고개를 넘자 보문사 풍경이 밟히고 바다가 한층 가까워진 느낌이다. 너럭바위 바로 아래가 그 유명한 해수관세음보살을 모신 눈썹바위지만, 낙가산 정상에서 거기로 이어진 능선은 철조망에 막혀 있다. 보문사로 들어가는 무단 출입자를 막기 위해 설치한 모양이다.

 

보문사 눈썹바위에 새긴 해수관세음보살

보문사 해수관음상, 다른 이름으로 마애석불좌상은 몸 전체가 눈이다. 눈썹 아래 있기 때문이다. 실은 눈썹이 아니고 눈썹바위지만 잠시도 한눈팔지 않고 바다를 내려다보기에 몸 전체가 눈이 돼버렸다. 보문사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관음도량으로 대접받는 건 마애불의 그런 간절한 눈길 덕분이 아닐까.

〈화엄경〉을 보면, 남인도의 바닷가 광명산(光明山)이 관세음보살의 상주처이다. 티베트에서는 석모도 낙가산과 비슷한 이름인 보타낙가산이 상주처이며, 포탈라궁은 보타낙가산을 본뜬 궁전이고, 달라이 라마를 관세음보살의 현신으로 여긴다. 관세음보살을 믿는 신앙을 관음신앙이라 부르는데, 미륵신앙, 지장신앙, 정토신앙 등과 함께 불교의 대표적 타력신앙이다.

나를 대신해 부처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방법을 갈구하다 생긴 신앙, 그게 바로 타력신앙 아닌가. 관세음보살뿐 아니라 어찌 보면 절에 있는 모든 불상이 타력신앙을 조형화한 것인지도 모른다.

연꽃 위에 좌정하여 감로수 병을 든 보문사 해수관음상 앞에는 수많은 연등이 걸려 있다. 연등마다 명패가 걸렸는데, 명패는 소망을 담은 말들로 가득하다. 가족건강, 학업성취, 사업번창, 업장소멸, 결혼성사…… 이것들은 모두 자기 힘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것이라 그 성취에도 기약이 없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관음기도처를 찾아다닐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배를 타고 바다 건너 해수관음상을 친견하는 사람에게는, 마음으로는 가까이 갈 수 없으니, 몸이라도 먼저 부처님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간절함이 배어 있다. 1928년, 금강산 표훈사 주지 이화응과 보문사 주지 배선주는 중생들의 그런 마음을 헤아려 낙가산 중턱 눈썹 바위에 보문사 해수관음상을 새겨 넣었다.

보문사의 해수관음상을 친견하려면 영험하다는 기도처들이 대체로 그러하듯 일주문을 지나 가람에서 가장 외지거나 높은 곳, 언덕 끝자락이나 산 중턱으로 올라야 한다. 드물지만 우리처럼 산정을 지나 내리막길에서 찾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땀 흘려 어렵사리 기도처를 찾는 사람은 그런 과정이 없는 사람과 사뭇 다르다. 남들보다 힘든 과정을 거치는 동안 몸과 마음이 저절로 씻기어 관세음보살에게 소망하려는 것의 반은 성취하게 된다. 저 절로 가는 길에서 저절로 뜻이 이루어지는 셈이다.

 

걷는길 : 전득이길 - 해명산 - 새가리 고개 - 낙가산 - 보문사
걷는시간 : 약 8km, 4시간 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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