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지장보살 이야기 上

‘용문사 시왕탱(마본 채색, 1884년, 168x103cm)’의 지장보살. 조선시대 ‘시왕탱’에 묘사된 각각의 지옥풍경 속에서는 지장보살의 분신을 찾아볼 수 있다. 어떤 지옥이든지 불문하고 그곳에 직접 뛰어들어 중생을 구제한다.
“제가 어떻게 하면 그곳에 갈 수 있을까요?” 바라문의 딸이 간절히 가고자 하는 곳은 어디일까? “저는 이제 몸과 마음을 가눌 수가 없고 곧 죽을 것만 같습니다. 제발 저를 불쌍히 여기시어 속히 일러주십시오.”

악업으로 지옥 간 母 구제위해
딸의 간절함이 지옥문을 열다
지옥죄인 보며 대자비심 발원
육도중생 구원 지장보살 거듭나

존경과 흠모를 받는 지체 높은 바라문 가문의 한 여인이 이렇게도 애타게 가고자 하는 곳은 천상이나 극락이 아닙니다. 바로 지옥입니다. 그녀는 어떤 연유에서 지옥에 가고자 몸부림치는 것일까요. 

그녀의 어머니는 살아생전 악업만 일삼다가 죽어서는 혼신(魂神)이 무간지옥에 떨어지게 됩니다. “저는 어머니를 잃은 뒤 밤낮으로 생각하고 생각하였으나 어머니 가신 곳을 물을 데가 없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그 응보에 따라 악도(惡道)에 떨어졌음을 직감한 딸은 부처님께 오래도록 간절한 기도를 올립니다.

“그대가 정성을 다하고, 어머니를 사랑하는 마음이 남다른지라 일러주노라.” 드디어 부처님(각화정자재왕여래)께서 응답해 오자, 그녀는 감격한 나머지 몸부림치다 팔다리가 성한 데 없게 되어 쓰러져 한참만에야 정신을 차리게 됩니다.

이에 부처님은 그녀에게 “그대는 내게 공양 올리기를 마치거든 바로 집으로 돌아가 단정히 앉아 나의 명호를 생각하라. 그리하면 곧 그대의 어머니가 태어난 곳을 알게 되리라”고 일러주십니다.

‘용문사 시왕탱’의 철상지옥(鐵床地獄) 또는 정철지옥(釘鐵地獄)의 모습. 쇠로 된 침상에 죄인을 눕혀놓고 큼직한 쇠못을 몸에 박아 고통을 주는 지옥이다.
지옥의 초입, 업의 바다(業海)
바라문의 딸은 집으로 돌아와 단정히 앉아 좌선에 들어간다. 부처님의 명호에 집중한 채로 하루 낮 하루 밤이 지나자, 그녀는 홀연히 자신이 어느 바닷가에 와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 바닷물은 펄펄 끓고 있었고, 그 가운데 사나운 짐승들이 바다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수많은 남녀들을 다퉈 잡아 뜯어 먹는 것이었다. 그 고통 받는 형상이 천만 가지인지라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었다.
“이 물은 어떤 이유로 이렇게 끓고 있으며, 많고 많은 저 사람들은 어떤 죄인이며, 저 많은 사나운 짐승들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 〈지장보살본원경〉中

바라문의 딸은 어머니가 죽은 뒤 다시 태어난 곳으로 가다가 불타는 바다를 만나게 되고 그 바다에 무수한 사람들이 빠져 허우적대며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이에 그곳에 있는 무독귀왕(無毒鬼王)에게 그 연유를 물으니, “염부제(속세)에서 나쁜 짓을 하다 죽은 중생이 49일이 지나도록 그를 위해 공덕을 지어주는 이가 없거나, 살아생전 착한 인연을 지은 것이 없으면, 어쩔 수 없이 본래 지은 업(本業)대로 지옥에 떨어지게 되며, 자연히 이 바다를 먼저 건너게 됩니다”라고 합니다.

무독귀왕은 사람들의 독한 마음을 없애주는 역할을 하는 존재로, 지옥으로 진입하게 될 때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지옥의 안내자이기도 합니다. 지장보살님의 오른쪽 협시로서, 왼쪽 협시인 도명존자와 함께 ‘지장삼존’을 구성하게 됩니다.

그리고 순차적으로 두 개의 바다를 더 건너야 하며, 가면 갈수록 고통은 배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도합 총 세 개의 바다를 건너게 되는데, 이는 몸과 말과 뜻으로 지은 세 가지 업 때문에 스스로 받는 것이라 합니다. 이름 하여, 세 가지 ‘업의 바다(業海)’입니다. 몸(身)과 말(口)과 뜻(意)으로 지은 삼악업(三惡業), 즉 자신이 지은 업이 바다를 이루고 있습니다.

죽어서 육체에서 벗어나게 되면 스스로 지어놓은 업에 그대로 노출되어 도리 없이 그 업의 흐름 속에서 표류하게 됩니다. 스스로 지은 업에 대해 살아생전 응보를 받는 것을 삼재라고 합니다. 9년 주기로 돌아온다 하니, 자신이 9년 동안 지은 업이 드디어 밀물이 되어 자신에게 되돌아와 3년간 들삼재·눌삼재·날삼재의 형태로 머물다 간다는 것이 민간 신앙 차원의 해석입니다.

그런데 죽어서도 역시 업의 응보는 피치 못할 운명입니다. 자신이 지은 습관의 에너지 그대로 그 힘에 떠밀려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지옥은 이 세 바다 속에 있는데, 먼저 큰 지옥이 18개이고, 이는 다시 500, 다시 1100으로 분파하여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지옥들이 존재합니다.

바라문의 딸이 간절히 가고자 하는 곳은, 어머니가 떨어졌다고 하는, 지옥 중에 가장 지독한 지옥 ‘무간지옥’입니다. 웬만한 중생들은 하나같이 극락을 꿈꿉니다. 대부분이 자신의 평화와 안락을 위해 매진하고 기도하고 염불합니다. 하지만 이 바라문의 딸이 몇날며칠 동안 가고자 간절히 기도했던 곳은 다름 아닌 지옥이었습니다. 지옥 중에 상지옥인 무간지옥일지라도 상관 않고 뛰어들어 어머니를 구하고자 하는 그 간절한 마음이 부처님을 움직여, 어머니는 다시 천상에 태어나게 되는 가피를 입게 됩니다.  

용문사 시왕탱’에 묘사된 지옥의 군중들. 지옥에는 죄를 심판하고 집행하는 판관, 관리, 야차 등 다양한 역할인들과 죄인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온실의 화초서 지옥 뛰어든 전사로
업의 바다에서 극심한 고통을 받는 수많은 중생을 목격한 바라문의 딸은, “저는 미래 겁이 다하도록 죄지어 고통 받는 중생이 있으면 마땅히 널리 방편을 써서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겠다”라는 크고도 넓은 서원을 세우게 됩니다.

그녀는 그 서원대로 지옥·아귀·축생·인간·수라·천의 육도(六道)를 세세생생 돌아다니며 끊임없이 업을 짓고 끊임없이 몰려드는 중생을 구제하는 임무를 맡게 됩니다. 바로 “이 바라문의 딸이 지금의 지장보살”이라고 〈본원경〉에는 언급하고 있다. 지장보살의 전신(前身)입니다. 어머니를 구하고자 한 애틋한 어느 딸의 마음이 그 발로였습니다.

하지만 불바다에 빠져 고통 받는 중생을 목격한 후, 어머니를 구하고자 했던 자비심은 전 중생에게로 확대되어 나아갑니다. 이제 그녀는 귀한 가문에서 곱게 자란 여린 여인이 아니라, 지옥에 뛰어드는 전사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충격적인 고통 속에 있는 중생들을 외면할 수 없었고, 그 목격을 계기로 커다란 서원을 세우게 되며, 마침내는 부처님도 찬탄해 마지않는 육도 중생의 구원자인 ‘지장보살’이 되기에 이릅니다.

충격적인 가난과 고통을 목격하면 무조건 우선 구하고 보아야 한다는, 같은 인간으로서의 인류애가 발동하게 됩니다. 실제 슈바이처 박사가 극심한 고통 속의 흑인들을 위해 아프리카로 갔듯이, 테레사 수녀가 인도 슬럼가로 뛰어들었듯이, 보다 높은 근기를 가진 위인들은 망설임 없이 바로 그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가 혼 힘을 다해 자신의 삶을 바칩니다. 

우리네 도회지의 저 살벌한 변두리에서 발견한, 하늘도 희망도 없는 생활과 가난이 결합될 때, 그때야말로 극단적인,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불공평이 저질러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정말이지 그러한 사람들이 가난과 겹쳐 추악함이라는 이중의 굴욕으로부터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나는 그 살벌한 변두리 지역을 알게 되기까지는 진정 불행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변두리의 공장 지대를 한 번 보고 나면, 자기 자신이 영원히 더럽혀진 것처럼 느끼게 되며 그들의 생활에 대해 책임이 있음을 느끼게 된다.   -알베르 까뮈(1913∼1960)의 〈안과 겉〉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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