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길과 흙길’이란 단어가 요즘 친숙해졌죠? 모 방송 프로그램처럼 진창의 흙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온유하고 향기로운 꽃길을 걸으며, 아름다운 인연과 만사형통(萬事亨通)하길 바랍니다. 하지만 어떤 이는 본의 아니게 꽃길 대신 흙길을 걷기도 합니다. 어리석음 때문에 잘못된 판단을 했거나, 두려움 때문에 그릇된 길에 들어선 결과입니다.

無知 극복하는 과정 우선해야
값진 불법 열매 얻을 수 있어
‘자비희사’로 긍정성 간직하면
굳건한 자세로 목표 달성 가능

‘금수저’니 ‘흙수저’니 하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태생적인 한계를 규정짓는 이 말은 비판의 성격도 담겨 있지만, 이를 핑계로 인생의 목표와 진로를 일찌감치 포기한 채 스스로를 합리화하려는 건 아닌지 우려도 듭니다. 어떤 한계가 있더라도 자신의 장점을 잘 살펴서 극복해내야 하지 않을까요? 끝과 시작이 맞닿아 있듯이 희망과 두려움도 한 몸의 두 얼굴입니다. ‘장자궁자(長者窮子)의 비유’는 두려움과 어리석음 때문에 꽃길을 알아보지 못하고 도망치는 가난한 아들과 지혜로운 부자 아버지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흙수저’로 밥을 먹는 경우가 되겠군요. 불법의 가르침과 진정한 배움의 가치를 상기시켜주는 설화입니다.

부자아빠, 가난한아들
어릴 때 방황을 하다가 집을 나간 아들은 수십 년 동안 타향을 헤매고 다니며 구걸을 했습니다. 아들을 찾아다니며 장사를 하던 아버지는 어느 도시에 정착해 점점 부자가 되었습니다. 금ㆍ은ㆍ유리ㆍ산호ㆍ호박ㆍ진주 등 재물이 창고마다 가득 찼고, 코끼리ㆍ말ㆍ소ㆍ양도 넘쳐났습니다. 손님도 많아져 장자의 이야기는 여러 지방까지 퍼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자손이 없어 자신이 죽으면 재산이 흩어질 것을 한탄했습니다. 그리고 근심에 잠겨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만일 아들이 돌아와 내가 가진 모든 재산을 전해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거야.’

그러던 어느 날, 거지 아들이 아버지가 살고 있는 도시에 도착했습니다. 아들은 우연히 아버지가 사는 집 앞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사자좌에 앉아 호화로운 의복을 입고 위엄을 갖춘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두려운 마음이 들어 대문 밖에서 도망치려했습니다. 아버지는 거지 아들을 한 눈에 알아보았습니다. 하인을 시켜 도망치려는 아들을 데려오게 했습니다. 아들은 누군가 강제로 자신을 데려가려하자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놀라서 기절을 하고 말았습니다.

멀리서 이 광경을 본 아버지는 하인들에게 아들을 억지로 데려오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의 부귀한 모습을 아들이 두려워한다는 걸 깨달은 것입니다. 아버지는 방편을 썼습니다. 아들을 그대로 보내놓고 초라한 행색의 두 사람을 아들에게 보내 친해지게 한 후 이런 말을 하게 했습니다.

“품삯을 곱으로 주는 곳이 있어. 그곳에서 거름을 치며 함께 일을 하는 건 어때.”

거지 아들은 아버지 집에서 품삯을 먼저 받고 거름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부자 아버지가 보기에 아들은 몸이 야위고 초췌했습니다. 먼지와 더러운 거름이 묻은 모습은 안타까웠습니다. 아버지는 허름한 옷으로 갈아입고 아들 곁으로 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지런히 일하고 게으르지 마시오.”

아버지는 시간이 지나자 아들에게 품삯을 올려주면서, 게으르거나 속이거나 성내거나 원망하는 말을 하지 않은 채 묵묵히 일하는 아들을 칭찬했습니다. 그리고 호의를 베풀며 이름도 지어주었고, 양아들처럼 대했습니다. 결국 20년 동안 거름을 치던 아들에게 금은보화가 가득한 창고지기를 시켰지요. 장자는 죽을 때가 다가오자 친척들과 국왕과 대신, 지인들을 불러모아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이 아이는 내 아들이오, 나의 모든 재산은 이 아이의 소유이며, 앞으로 내 아들이 알아서 관리할 것입니다.”

아들은 그때서야 모시던 부자가 아버지였음을 깨달았고, 많은 재산을 순순히 물려받았습니다.

- 〈법화경〉 ‘신행품‘ 중에서

긍정의 안테나
부자 아버지는 부처님, 가난한 아들은 제자인 성문과 연각을 의미입니다. 화엄ㆍ아함ㆍ반야ㆍ법화의 가르침을 배울 때 제자들이 어떤 마음자세를 가져야 하는지를 비유적으로 일깨워줍니다. 아들이 처음 아버지의 위엄을 보고 도망친 것은 〈화엄경〉을 설하실 때 두려워하는 중생의 근기를, 거름을 치는 머슴살이로 품삯을 받는 장면은 〈아함경〉을 설할 때, 창고지기로 살림살이를 맡아볼 때는 〈반야경〉을 설하실 때, 많은 재산을 물려받아 부자가 되는 장면은 〈법화경〉을 설하실 때입니다.

가난한 아들이 이리저리 떠도는 시련의 시기는 배움의 길에 들어서는 입문식입니다. 학문과 배움이라는 꽃길에 들어서기에 앞서 무지(無知)를 극복하는 시련의 시기를 상징합니다. 아버지의 집에서 거름치고 살림을 돌보는 과정은 배우는 과정이며, 그 결과 값진 재산인 불법의 열매를 얻게 됩니다. 만약 아들이 머슴살이를 할 때 게으르고 남을 속이며 오만했다면 배움의 결실을 제대로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배움의 길에서 길을 헤매지 않기 위해서는 목표를 굳건히 세워야 합니다. 미래는 예측 불가능한 변화의 시기로 변수가 많습니다. 그래서 사라질 직종을 염려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눈앞에 어떤 사안을 직면했을 때 이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가, 부정적으로 바라보는가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당연히 긍정적으로 바라볼 때 문제 해결이나 목표에 도달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평소 긍정의 안테나를 높이 세우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주변의 유혹과 비난에 흔들리지 않는 긍정의 안테나를 굳건히 세운다면 여러분의 삶에 큰 장점으로 작용하리라 확신합니다.

사무량심 꽃길
요즘은 평생교육시대로 배움은 생애의 전 과정에서 요구됩니다. 진로와 진학을 위한 공부는 두말할 나위 없고, 인생의 황혼기에 보다 즐거운 삶과 불교의 신행활동에도 반드시 필요한 필요충분조건입니다. 이 길을 걸을 때 ‘사무량심(四無量心)의 꽃길’을 놓치지 않길 소망합니다.

사무량심은 자(慈)ㆍ비(悲)ㆍ희(喜)ㆍ사(捨)의 네 가지 자비심을 말합니다. ①자무량심은 모든 존재가 행복하고 행복의 원인을 갖는 마음의 꽃길 ②비무량심은 모든 존재가 고통에서 벗어나며 고통의 원인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마음 ③희무량심은 모든 존재가 기쁨에 머물고 다시는 기쁨에서 멀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④사무량심은 모든 존재가 좋은 것은 가까이 하고, 싫은 것은 멀리하려는 마음이 아니라 평등심에 머물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장자궁자의 비유에 나오는 거지 아들처럼 비록 흙길을 걷더라도 ‘배움의 길에서 마주한 입문의 과정’이라 생각하며 겸허히 수용하길 권합니다. 그렇게 걷다보면 분명히 배움과 실천의 기회를 얻을 수 있고, 성취의 열매를 수확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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