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승 불필스님의 108배

“필자는 오랫동안 스님을 뵈어왔지만 단 한 번도 삶의 현장인 ‘지금 여기’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동요함이 없는 깊고 분명한 눈동자, 단정하고 위의 있는 몸가짐으로 언제나 좌중을 압도한다. 한결 같은 도에 대한 확신과 스승에 대한 물러남 없는 존경심은 조용한 리더십으로 표출된다. 필자는 그러한 모습만으로도 스님께선 인간의 존엄성을 완성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스님과 동시대를 함께 하고 있음이 더할 수 없이 행복하다.”

금강굴서 매일 108배 권유
절하며 성철 스님 가르침 이해
절 수행으로 불치병도 치유
인간 내재 무한 능력 계발해

몇 해 전 한 계간지를 통해 불필 스님을 인터뷰하고 마지막 부분에 쓴 글이다. 스님에 대한 나의 저 느낌은 지금도 변함없다. 스님을 뵐 때마다 나는 늘 수행의 위대한 힘을 느끼고 다시 신심을 세우곤 한다.

스물한 살, 출가하기도 전에 이미 인간이 기울일 수 있는 모든 힘을 다 쏟아내 정진했다는 스님을 뵌 지 어느덧 10년이 넘었다. 눈빛은 여전히 형형하고 그 위로 마치 파도치는 물결처럼 굵게 패인 이마의 주름 또한 변함없이 아름답다. 처음 소년처럼 순수한 스님의 뒷모습을 보고 사람은 뒷모습으로도 모든 것을 말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느꼈는데, 이후 단 한 번도 구부정하거나 흩어진 모습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사람은(인간은) 세월이라는 시간 속에서 나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상을 잃고 살아갈 때 늙는 것이라는 걸 증명해주고 있는 분이다. 올해 세수 여든 하나인 불필 스님의 기상 시간은 새벽 2시. 간단히 세수를 하고 108배를 한 뒤 좌선을 하는 것으로 하루의 문을 연다. 수십 년 동안 한결같이 하루의 일과를 그렇게 시작하는 스님을 나는 ‘절을 시키는 선수’라고 부른다. 한 평생을 참선수행으로만 일관해 온 스님을 그렇게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다.

불필 스님의 은사인 인홍 스님의 일대기를 쓰기 위해 종종 해인사 금강굴에 드나들던 어느 날의 일이다. 스님이 주석하고 있는 금강굴에는 스님을 찾아오는 방문객들이 많다. 그날도 역시 남자분들 몇 사람이 방문을 해서 스님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사업가, 치과의사, 교수 등 직업이 다양한 분들과 대화가 끝나갈 무렵,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거사님들, 한 백일 동안만 108배를 좀 해보세요.”

스님의 화법은 언제나 간단명료하다. 절을 하면 어떤 변화가 오고 무엇이 좋은지 그런 말씀은 없었다. ‘해보시지요?’한 말씀뿐이었다.

그런데 놀라온 것은 사오십대로 보이는 그 분들이 마치 선생님이 내주는 숙제를 기꺼이 받아드는 초등학생들처럼 ‘예, 스님, 해보겠습니다.’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순순히 받아들인 것엔 스님의 카리스마도 한 몫을 했겠지만, 나는 그 때 사람들에겐 좀 더 나은 나로 변화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단 한 번에 스님의 권유를 받아들이는 걸 보면서 어쩌면 저분들이 변화하고 싶은 욕구를 만족시키는 108배 숙제를 받기 위해서 스님을 찾아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데 작심삼일이라고, 무엇이든 한번 마음먹은 게 바로 실천이 되고 지속된다면 인생에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 집에서 홀로 도전해보는 108배는 한 번에 뚝딱 실천되기 어렵다. 몇 번의 실패를 반복하면서 자리를 잡기도 하고 제풀에 꺾여 중단되는 경우가 더 많다. 아무튼 그날 이후 나는 그분들이 과연 절을 잘 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스님의 카리스마가 과연 통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궁금했던 것은 나이든 남자들이 그렇게 덥석 받아든 하루 108배 숙제를 과연 계속하고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몇 달 후 스님을 방문했을 때 여쭈어보았더니, 스님이 하시는 말씀.

“왜, 그때 제주도에 사는 그 치과의사분 있지요? 백일 동안 108배를 하고 난 뒤 요즘은 하루에 3백배를 한다고 하더군요. 일단 해보면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고 자신감이 솟아나는데 안 할 수 없지요. 그런 경험을 하다보면 스스로 횟수를 늘이게 돼요.”

누구든 스님께 ‘절 한번 해보세요’하는 소릴 들으면 빠져나갈 수가 없다. 우리 큰 아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 금강굴에 데리고 갔는데, 입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는 아이를 앉혀놓곤 ‘사람에겐 누구나 무한한 능력이 있단다. 3천배를 해보면 그걸 알 수 있을 거야. 여기 온 김에 한번 하고 가면 어떻겠니?’ 하시더니 바로 그날 3천배를 하게 한 분이다.

중학교 3학년이던 작은 아이를 방학 때 스님이 정진하고 계시던 석남사에 쉬다 오라고 보냈더니, 그곳에 머무는 열흘 동안 매일 1080배, 마지막 날엔 3천배를 시키셨다. 스님의 한 말씀에 꼼짝없이 3천배를 했던 우리 아이들은 십 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스님 말씀을 거역할 사람이 있을까? 아무튼 자신감을 얻는 데는 절이 최고’라고 입을 모은다.

절을 권유해서 별로 실패해본 적이 없는 스님은 언제, 어떤 계기로 108배 수행의 위력을 경험했을까?

“출가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그 누구도 의지하지 않고 부처님 한분만 의지해 공부하겠다는 각오를 하고 일주일 동안 하루에 4천배씩 한 적이 있어요. 정식으로 절을 배운 적이 없어서 4천배를 하는 데 스무 시간이 걸렸는데, 그때 일체의 잡념 없이 절을 하면서 인간에게 무한한 능력이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내면에 가지고 있는 그 절대적인 힘을 계발하면 생사를 해탈한 영원한 대자유인이 될 수 있고 그렇지 못하면 번뇌 속에서 삶과 죽음이 계속되는 고통이 연속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스님의 속가 아버님이자 출가의 길에 있어선 법사였던 성철 스님께서는 ‘인간은 마음속에 절대무한의 세계를 다 갖추고 있는 절대적 존재이며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 그것을 계발해서 참으로 완전한 인격을 완성해야 한다’는 말씀을 자주 했다고 하는데, 절을 하고나서 스님은 그 말씀을 가슴으로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뒤에도 스님은 참선을 하면서 때때로 3천배, 1만배 정진을 하면서 인간에게는 퍼내고 퍼내어도 다 쓸 수 없는 무한한 힘이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이러한 경험들이 오늘날 스님을 절을 시키는 선수로 만들었을 것이다.

비구니계를 받고 운수납자로 다니며 수행에 전념하던 젊은 시절, 스님께서 불치의 병을 앓고 있는 친구를 불러 절을 하게 해서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한 사연은 내가 스님에게 들은 절 수행 가피 중 가장 감동 깊게 남아있는 이야기다. 그 사연은 이렇다.

고향과 가까운 곳에서 정진하고 있던 어느 날, 초등학교 친구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출가 후 세속에서 있었던 일은 모두 잊었는데, 박꽃처럼 얼굴빛이 창백하고 눈썹이 하나도 없는 병을 앓고 있는 친구가 자꾸 머릿속에 맴돈 것이다. 3천배를 시키면 나을 것 같은 확신이 들어 사람을 통해 보고 싶다는 연락을 취했다. 연락을 받고 친구가 왔는데 보니, 10여 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여전히 의학적으로 치료가 되지 않는 병을 앓고 있었다. 스님은 친구에게 간곡히 권했다.

“백일 동안 하루 천배를 하면서 기도해 봐요, 반드시 좋은 일이 있을 거예요.”

대대로 유학자 집안에서 자란 친구는 절이 낯설고 생소한 곳이었으나 워낙 자신의 앓고 있는 병이 지중한데다 옛 친구인 스님의 뜻이 고맙기도 해서, 바로 절에 머물며 기도를 시작했다. 스님들의 밥을 해주는 공양주 노릇을 하면서 절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업장을 녹이고 복을 짓는 데는 공양주만한 공덕이 없다는 말이 있다. 스님은 복을 지으면서 기도할 수 있도록 친구를 배려했을 것이다. 친구는 스님들이 잘 드시고 정진할 수 있도록 정성껏 반찬을 만들고 밥을 지어 올리면서 열심히 절을 했다. 백일기도를 시작한지 79일 째 되던 날, 스님이 친구를 불렀다.

“이제 21일 남았지요? 남은 기간은 하루에 3천배씩 해봐요.”

남은 시간 기도의 강도를 높여 21일 3천배 기도를 시켜본 것인데, 친구는 그동안 절을 하면서 느낀 게 많았는지 순순히 받아들였다. 남이 해주는 밥을 먹으면서 하는 3천배도 쉽지 않은 일인데 공양주를 하면서 하루에 3천배를 하는 것은 보통 결심으로는 지속하기 어렵다. 친구는 절박한 마음으로 시작한 백일기도의 초심을 잃지 않고 열 시간 정도 걸려 3천배를 정성껏 했다. 드디어 백일기도를 마치던 날 스님이 친구를 불러 기도를 하면서 좋은 소식이 없었는지 물어보자 친구가 꿈 이야기를 했다.

“밤새도록 잠깐 엎드려 있는데, 기골이 장대한 남자가 손에 물병을 들고 나타나서는 제게 먹으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낯모르는 남자가 주는 것을 덥석 받을 수가 있어야지요. 그래서 주저주저하고 있는데 법당에 흰옷을 입은 사람이 나타나서는 빨리 받아먹으라고 재촉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나중에 받아먹겠다고 하면서 끝내 받지 않았어요. 꿈을 깨고 나니 물을 받아 먹지 않은 것이 몹시 후회됩니다.”

물을 받아먹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친구에게 스님은, 물병을 내밀었던 분은 중생들의 병을 치료해주는 약사여래이고, 흰옷을 입고 나타난 분은 세상 사람들의 소리를 다 듣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성취하게 해주는 관세음보살이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불교에 대해 문외한이었던 친구는 스님의 이야기를 듣더니 용기백배하면서 기도를 더 해보고 싶다고 했다. 안거가 끝나 다른 절로 가야했던 스님은 그 절에서 가까운 다른 절을 소개해주며 이번엔 하루에 3천배씩 백일기도를 해보라고 권했다.

젊은 시절의 불필 스님을 본 분들의 전언에 의하면, 말없이 정진만하는 스님의 서늘한 기운에 눌려 감히 말을 건네거나 눈조차 마주치지 못했다고 한다. 그렇듯 화두 이외엔 아무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젊은 날의 스님이 세속의 친구를 불러 절을 권했던 것은 인간에게 얼마나 큰 능력이 있는지를 자신이 108배를 통해 사무치게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불치병을 앓고 있던 스님의 친구는 그 후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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