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휴 스님의 백담사 무문관 ‘是甚麼 일기’

 

백담사 무문관에 입방하기 위해 길을 오르는 스님들. 무문관에 입방한 수행납자들은 고요의 공간에서 이름도 없고, 들을 수도 볼 수도 없는 ‘그’를 찾기 위해 치열한 구도행을 펼친다.

올라갈수록 울창한 숲은 다가서고 계곡은 깊어진다.  누가 이곳에 길을 열고 계곡을 만들었을까 분명히 천기(天氣)가 움직여 바람과 구름이 일고 천둥이 쳐서 길을 내고 암벽을 부수는 벼락이 쳤을 것이다.  
한참동안 고개 길을 돌아 올라 갔지만 그때마다 다가서는 것은 산(山)의 신령스러움과 계곡에서 스며오는 차가운 골기(骨氣)였다.

백담사 숲을 거쳐 도착한 무문관
문 여니 ‘無名의 그’ 먼저 와있네
선사들 ‘그’를 마음·眞人이라 불러
볼 수도 들을 수 없는 ‘그’를 찾아
확장된 사색 공간서 ‘이뭣꼬’ 참구


잠깐 쉬기 위해 자리에 앉아 있으니 봉정에서 시작된 바람이 천불동을 거쳐 다시 방향을 틀어 계곡을 타고 내려오고 한쪽 귀로는 귀천(歸天)을 하기위해 어제 저녁에 나섰던 쇠북노리가 하늘을 오르다가 숨이 차서 다시 하강하는 소리가 들렸다.

눈앞에 가득 찬 나무들은 비울 것 다 비우고 벗을 것 다 벗은 채 다 내려놓고 좌탈(坐脫)이 아닌 입망(立亡)으로 서 있었다.

백담사 무문관에서 그와 함께 한철을 지내기 위해 나섰는데 쉬는 동안 내 마음에서 빠져 나가고 없었다. 무문관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 그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었다. 나보다 먼저 와 있었다.

걸망을 내려놓고 자리에 앉자 낯선 침묵이 반색을 하며 물러섰다. 그 침묵은 다시 나를 가득 채울 것이다. 그리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 그가 있었던 시원(始源)을 알기 위해 공겁(空劫) 밖으로 걸어 갈 것이다. 그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도 있었고 어둠이 없는 곳에서 생멸이 없이 살고 있었다.

무슨 인연을 맺어 내 안에 들어와 주인(主人)이 되었는지 모른다. 어느 날 새벽에 그가 밖에 나갔다가 들어 온 것을 눈치 채고 찾아보았지만 소재(所在)를 알 수 없었다. 살아도 늙지 않고 죽어도 생멸이 없는 빈 모습으로 살고 있어 그 모습이 드려나지 않았다.

그를 찾아 깨달음을 얻은 마조(馬祖)는 마음이라 했고 임제(臨濟)는 무위진인(無位眞人)이라 부르고 암두(岩頭)스님은 암자(庵子) 속에 늙지 않은 늙은이라고 했지만 그는 원래 이름이 없었다.

그래서 서산(西山) 스님은 그의 대표적 저서인 <선가귀감>에서 이름도 지을 수 없고 모양도 볼 수 없다고 했다.

마조는 마음이 부처라고 선언하자 많은 수행인들이 ‘마음이 부처’란 틀 속에 갇히자 ‘중생도 아니요 부처도’아니라 했고 조선조 함허득통 선사는 그는 ‘안과 밖, 중간 그 어디에도 없고 과거 현재 미래 그 어디에도 없으며 온 누리를 두루 보아도 있는 곳이 없다’고 했다. 또한 사람의 눈 밝은 선지식인 영허 선사는 ‘모든 부처가 이곳에서 비롯되었고 중생 속에 들어가선 주인(主人)이 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임제(臨濟) 선사는 이것을 찾으면 멀어지고 구하면 잃게 된다고 하면서 펼치면 온 법계를 감싸고 남음이 있으며 호젓이 밝아 한 번도 모자람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성자라고 부르는 신라의 원효 스님은 자신의 대표적 저서인 <기신론>에서 ‘있다고 할까 한결같은 모습이 텅 비어 있고, 없다고 할까 만물이 이로부터 나온다’고 했다.

그래서 임제 선사는 ‘눈으로도 볼 수 없고 귀로도 듣지 못한 이것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하겠는가’하고 되묻고 있다.

 

천년을 한 생각 속에 이루리라
새벽 3시 반에 일어나 앉아 있으니 간밤에 나와 함께 머물렀던 고요가 방안으로 흩어져 있다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다시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감옥의 독방과 다름없었다. 거기다가 출입하는 문을 잠궈 놓았기 때문에 나갈 곳이 없었다.  다만 낮이면 햇빛이 염치도 없이 찾아 들었다가 슬며시 사라지고 만다.

아침이 밝았지만 하늘을 볼 수 없고 새소리만 간간히 들렸다. 무문관에 들어와서 처음 듣는 새 소리였다.
독방에 갇혀 있지만 사색의 공간은 무한대로 확대됐다. 그만큼 나를 살피는 시간이 많아졌고 그동안 반복된 일상으로 굳어진 나의 모습과 습관의 중독된 일부의 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3개월 동안 나를 엿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을 통해 보고 듣는 대상이 없어 조금씩 마음이 안정되었다. 그동안 보고 듣는 것에 얽매여 자유스럽지 못했고 보고 듣는 내용에 따라 일희일비했기 때문이다.

먼저 내 나름대로 시간표를 만들어 3개월 동안 실행해보기로 나에게 다짐하였다. 만약 스스로 지키지 않으면 내 스스로에게 한 약속은 깨지고 말 것이다. 시간표는 좌선할 시간을 많이 할애했고, 화두(話頭)는 ‘시심마(是甚麼)’를 들기로 하였다.

‘내가 누구인가’하고 묻는 근원적인 질문이다. 비록 그가 소재(所在)가 없고 모양이 없지만 묻고 찾아보기로 했다.

임제 선사가 말했듯이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어 무어라고 불러야 하겠는가 묻고 있듯이 ‘그것은’ 내 안을 떠나지 않고 있다. 비록 찾으면 벌어지고 구하면 잃게 되더라도 사유를 통해 탐구하지 않을 수 없다. 화두를 참구하다가 혼침(昏沈)과 도거(掉擧)에 빠지더라도 나는 그것을 받아드리기로 했다. 그동안 몸과 마음으로 익힌 업(業)이 삭고 삭아서 없어질 때까지 혼침과 도거에 빠져 화두를 잃고 또는 잃는 반복을 거듭거듭 하기로 생각했다.

11시가 되자 창문 한 쪽에 뚫어 놓은 구멍으로 점심 도시락이 들어왔다. 이곳에 와서 독방에서 홀로 맞이하는 공양 시간이었다. 앞으로 하루 한 끼만 먹고 석 달을 버티어야 한다.

원효 스님은 <발심수행장>에서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이 있더라도 밥을 구하는 생각을 버려야 초심으로 돌아가는 마음이 일어난다고 하였다. 좌선하는 사람에게는 누구나 할 것 없이 큰 바위처럼 무거운 침묵이 있어야 하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목숨을 버리겠다는 근기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참고 기다리는 불퇴전의 신념이 있을 때 생사의 관문은 열리게 된다.

<벽암록(碧岩錄)>의 저자인 원오극근(圓悟克勤) 선사는 심요(心要)에서 밝히기를 허망한 속박을 벗고 생사의 소굴을 부수려면 첫째 근기가 매서워야하고, 둘째 영원토록 물러서지 않겠다는 서원을 갖추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음을 참학자는 주목해야 한다.

원오극근 선사는 선종사에 등장된 인물 가운데 고통을 치루고 깨달음의 가치를 얻은 선사(禪師)들의 기연(機緣)을 소개하고 있다.

오조(五祖) 홍인(弘忍)에게 깨달음을 인가받고 육조(六祖)로 등극한 혜능(慧能)선사는 어깨에 돌을 짊어지고 방아를 찧었고 물을 길러 나르다가 어깨에 피부가 벗겨나가는 고통을 참았고 장경혜능(長慶慧稜) 선사는 설봉의 슬하에서 15년동안 좌복이 일곱 개나 닳고 닳도록 앉아서 참구를 멈추지 않았고 엉덩이에 살이 빠져나가고 고름이 피범벅이 되어 뼈가 보이는 고통을 참으면서 화두(話頭)를 참구하였고 향림(香林) 선사는 매일 쉬고 나날이 덜어내는 정진을 계속하여 의심이 없는 곳에 이르는데 40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리고 어떤 선사들은 목숨을 버리는 용맹함을 보이기도 하였다.

활활 타고 있는 불속에 몸을 던진 수행자도 있었고 자기 육신을 호랑이 먹이로 받칠 만큼 용맹함을 보였다고 심요(心要)에서 여러 차례 밝히고 있다. 그러나 내안을 뒤져보아도 세월을 깔고 앉아 큰 바위처럼 침묵하고 있는 무서운 끈기도 없고 신념도 없다. 비바람이 몰아쳐도 눈 한번 뜨지 않고 칼바람이 불고 눈보라가 휘몰아쳐도 미동도 하지 않은 큰 바위 같은 부동심(不動心)이 없다.

창밖에서는 바람이 성난 파도처럼 지나가고 성난 짐승처럼 칭얼대었다. 마음 속을 빠져 나가는 상념을 붙들어 제자리에 앉히고 심지(心地)가 흔들리지 않도록 화두를 계속 참구하였다.

원오극근 선사가 말했듯이 생각을 덜어내고 놓아 버리지 못한 것을 더욱 내려놓고 비워서 밑바닥이 보일 때까지 비워야 뼈마디인 실상이 보일 수 있다.

조그마한 신근이 쌓이고 진실이 씨앗이 되어 싹을 틔울 만큼 사무친다면 견고한 신념으로 변할 것이고 탐구와 천착이 깊어진다면 막혀 있던 관문은 열릴 것이다. 그리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 일념(一念)이 만년(萬年)이 되게 하고 만년(萬年)이 일념(一念)이 되는 무념무상으로 순일무잡(純一無雜)하게 정진이 깊어지면 백척간두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배워서 안 것과 얻고 잃음의 틀을 버리고 백척간두에서 손을 놓아버리고 한 발자국 옮기면 몸을 바꾸는 출신(出身)의 길이 열릴 것이다.

석상(石霜) 스님은 참선하는 수행납자들을 만날 때마다 ‘쉬어라 푹 쉬어라. 입술에 곰팡이가 되도록 쉬고 일념이 만년(萬年)이 되고 만년이 일념 속에 이루어지면 생사가 한 덩어리가 될 것’이라고 누누이 강조한 뜻을 되새겨 보았다.

깨달음을 얻은 선사들을 보면 한결같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화두를 참구하는 것이 마치 큰 망치로 두들기고 쇳물이 펄펄 끓는 용광로 속에서 단련하는 일로 생각했고 뼈를 잘라내고 골수를 취하는 것 같이 하였음을 알 수 있다.

화두(話頭)는 ‘마음의 바탕을 여는 열쇠’이다. 그 열쇠를 누가 주는 것이 아니다. 자신 안에 있는데도 보지 못하고 자기 손에 있으나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것이다. 마음의 바탕에는 무진장의 보배창고가 있다. 그 안에는 온갖 지혜와 덕(德)이 갖추어 있고 써도 써도 줄어들지 않는다.
 

강원도 고성 영은암 회주.

이것은 구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구하면 구할수록 어둠을 만나게 되고 알음알이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 원오극근 선사가 말했듯이 모든 사람의 보배 창고는 예부터 지금까지 역력하고 텅 비어 항상 밝고 신령스럽다고 했다.

창밖에는 칼날선 바람이 파도처럼 지나가고 다시 문 앞에서 칭얼대고 있다. 한참동안 불던 바람이 그치고 숨어있던 적막이 엄습하였다. 바람이 모든 것을 쓸고 간 빈 터가 보였다.  그것은 영혼의 빈터같이 소리도 없고 울림도 없었다.

가부좌를 틀고 앉은 지 벌써 두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일념(一念)속에 만년이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사유가 깊어지니 두 시간이 일순간에 지나가 버린 것이다. 무문관에 들어 온지도 벌써 한 달이 다되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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