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 불교는 어디쯤에…

우리나라에 불교가 도래한 이래 문화 형성 과정에 끼친 영향은 매우 크다. 지배층과 민간을 불문하고 적어도 고려 말까지는 언어와 사상, 건축, 미술, 음악 및 생활양식 전반에 걸쳐 거의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팔만대장경으로 대변되는 목판 인쇄술과 기록문화, 석굴암을 비롯한 각종 건조물 및 공예, 회화, ()문화, 각종 의례며 음식문화 등이 모두 그런 영향의 산물이다.

물질문명에 기반하는 현대의 첨단과학과는 그 양상이 달랐지만, 우주자연의 원리에 대한 통찰력과 직관은 목판 대장경을 천 년을 견디게 하고, 장인들의 손길로 완성된 전각의 단청은 어떤 값비싼 화학적 안료로도 흉내 낼 수 없는 깊은 아름다움과 놀라운 기능을 유지하도록 만들었다.

불교가 과거시대 당대 최고의 문명을 활용한 그 방점과 방향은 어디까지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예토에 구현하고자 하는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고 믿는다. 여기서 현실의 우리를 돌아 볼 필요가 있다. 1830년대의 1차 산업혁명(기계혁명)1870년대의 2차 산업혁명(에너지 혁명) 그리고 1990년대 이후 3차 산업혁명(디지털 혁명)의 시대를 거쳐 세계는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4차 산업혁명은 초연결성(Hyper-Connected)’, ‘초지능화(Hyper-Inteligent)’를 그 특징로 한다고 한다. 지능과 (생산된)물체를 서로 연결해서 세상을 지능화 한다는 것이다. 미 활용되고 있는 바, 대표적 사례가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으로 인터넷을 기반으로 모든 사물을 연결하여 사람과 사물, 사물과 사물 간의 정보를 상호 소통하는 지능형 기술 및 서비스를 말한다.” 그야말로 모든 사물이 거침없이 융섭하는 사사무애법계(事事無礙法界)의 구현이라는 생각에 이른다. 4차 산업혁명이야말로 불교사상이 현실에 구현되는 혁명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지난 117일부터 4 동안 스위스 다보스에서 다보스세계경제포럼이 열렸는데, 디지털, 바이오 등 각각의 기술들이 모두 연결되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맞아 인공지능적인 시대가 오고 있다는 예측이 논의의 핵심이었다. 이미 3D 프린팅, 자율주행 자동차가 현실화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일자리가 사라지거나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나며, 인공지능의 일상이 사회전반에 도래한다는 것이다. 이미 소품은 나온 바, 머지않아 석굴암 본존불을 석재원형 그대로 3D 프린팅기로 재현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며, 그 외 불교문화와 사상에 끼칠 영향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자못 흥미진진해진다.

문제는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오는 폐해다. 세계경제포럼의 조사에 따르면 향후 ‘5년간 710만개의 일자리가 소멸되는 대신 210만개의 일자리가 새롭게 만들어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그동안 산업혁명기마다 공통적으로 파생되었던 인간 소외와 실업의 문제 그리고 부익부 빈익빈, 명혜택의 차별 등 불평등의 문제가 지금보다 더욱 크게 대두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렇게 4차 산업혁명의 시대로 진입하고 하는 현실에 대해 불교계는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어떤 진단과 대안을 준비하고 있는지 등등, 4 산업혁명으로 인한 불이익과 활용에 대한 종단 차원의 연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한국불교는 지난 세기 세상의 변화를 외면했기에 그 유구한 역사성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사회로부터 뒤처져왔다.

교육원장 현응 스님이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스마트폰 하나에 팔만대장경과 온갖 불교정보가 들어 있으며,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검색이 가능한 현실이다. 머지않아 로봇스님이 최고의 음성과 가락으로 염불을 하고 좌선지도를 하며, 그 어느 선지식이나 불교학자, 심리학자, 경제학자보다도 뛰어난 신행상담이 가능해지는 시대가 예상된다. 집안에서 대찰의 법문이나 예불을 실시간 영상으로 받아 현장에서와 같은 참여를 할 수 있지 않는가.

이제 8개월 후면 조계종은 새로운 지도자를 선출하게 된다. 차기 원장직을 준비하거나 욕심내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돌아보면, 그동안 세상의 고통과 종단 현안에 대해 제대로 된 의견 한 번 피력하지 않고 있다가 별안총무원장을 하겠다고 나오는 사례들이 적지 않았다. 이제 그러한 일들은 없기를 바란다. 차기 원장직에 욕심을 내기 전에 할 일이 있으니, 자신에 대한 점검이.

우선, 궤도를 벗어난 정치적 혼란과 사회 갈등, 외 문제에 대한 불교적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급변하는 세태에 한국불교와 종단을 끌고 나갈 비전은 무엇인지, 스스로 혁신을 주도할 자질을 갖추었다고 자부하는지, 비는 충분히 돼 있는지 등등에 대해 냉정한 성찰과 안팎의 평가가 필요하다. 물론, 조계사 일대의 성역화불사 및 봉은사 주변 영동대로개발 문제 등 얽히고설킨 당장의 과제들에 대해 효율적이고 법다운 대안을 제시할 수도 있어야 한다. 아울러, 총무원장 선출 선거제에 대해서도 종단 정치공학을 넘어 시대정신에 따라 합리적으로 풀어가려는 분명한 의지와 입장을 밝혀야 한다.

여기에 과학문명의 흐름과 발달이 가져올 변화에 대해서도 소양이 갖춰져 있어야 하니, 자질과 역량에 대한 점검보다 자칫 자리와 권력에 대한 욕심이 앞선다면 종단 안팎으로 신뢰와 인정을 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조계종단에는 수십 년 간 누적되어온 문제들이 있다. 권력의 집중화, 파벌과 반목,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종헌기구의 한계성,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범계 문제, 승가의 양극화, 시민사회시대의 요구를 반영하지 못하는 포교 등. 렇다 해서 총무원장이 전 분야에 걸쳐 능력자일 필요는 없다. 종단 운영의 철학과 방향성, 열린 자세와 시대를 읽는 안목 및 포용력을 담보한 정치력에, 적절한 재목을 적절한 곳에 두어 그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인사의 공적시스템을 탄탄하게 운영해 가면 된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변화의 시대 중심에 불교가 있다. 300 불자의 감소를 넘어 불자 수 300만 시대의 주인공이 될 것인가? 그것이 아니라면 스스로 변화를 추구해야 한. 100을 내다보는 사업도 결국 시대라는 변화의 현실상을 외면하고서는 성공하기 어렵다. 이제 그만 공염불, 구두선, 기복주의 그리고 천박한 권위주의를 벗어 던지자.

法應(불교사회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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