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조 혜능 선사로부터 법을 이은 사람이 모두 43인이 있지만 이 가운데 5대 제자라 하여 다섯 사람을 꼽는다. 남악회양(南嶽懷讓), 청원행사(靑原行思), 영가진각(永嘉眞覺), 남양혜충(南陽慧忠), 하택신회(荷澤神會)이다.

이 가운데 육조 혜능 선사의 수제자가 되어 남악파(南嶽派)를 이루어 육조 사후 정맥(正脈)을 이어 선법을 크게 드날린 이가 남악 회양 선사(677~744)이다.

그가 처음 육조를 배알했을 때 있었던 일을 〈선문염송설화〉 119칙에서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육조 혜능 선사가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남악 회양 선사가 대답했다. “숭산(嵩山)에서 왔습니다.”

“어떤 물건이 이렇게 왔는가?”

“어떤 한 물건이라 말하여도 딱 들어맞지 않습니다.”

“수증(修證:방편을 닦아 깨닫는 것)을 필요로 하는가?”

“수증이 없지는 않지만 오염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염되지 않는 그것이 부처님께서 보호해 주시는 것이다. 그대도 이미 그렇고 나도 또한 그렇다.”

이 이야기는 후에 ‘남악설사일물(南嶽說似一物)’이라는 말로 널리 알려졌다.

선사(禪師)들의 질문을 직설(直說)이라고 한다. 인사하러 온 사람에게 대뜸 “어떤 물건이 이렇게 왔느냐?”고 묻는 것은 예의범절과 상관없이 깨달음의 본성을 직시하도록 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의심 덩어리(疑團)인 화두 하나를 안겨주는 것이다.

〈선가귀감(禪家龜鑑)〉에 나오는 말에 “부처님은 활(弓)을 설하시고 조사는 줄(絃)을 설하신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곡담(曲談)과 직설(直說)을 활등과 활줄에 비유해 한 말이다. 활은 등이 굽고 줄은 곧다. 부처님 말씀은 활등과 같고 조사의 말씀은 활줄과 같다는 뜻으로 활을 설하고 줄을 설한다 한 것이다. 자상한 설명은 활등이고 격외선지는 활줄이다.

어떤 스님이 조주(趙州) 스님에게 물었다.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 무엇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

조주 스님이 대답했다. “뜰 앞의 잣나무니라.”(庭前栢樹子)

‘뜰 앞의 잣나무가’ 바로 활줄과 같은 격외선지(格外禪旨)다.

또 이런 이야기도 있다. 어느 선사를 찾아간 거사 한 분이 선사에게 지옥이 어떤 것이냐고 물었다.
“지옥을 알고 싶은가?” “예 스님.”

선사가 주장자로 거사의 이마를 한 대 때렸다. “아니, 왜 갑자기 사람을 때리십니까?”

거사가 아파서 화를 내었다. 선사가 껄껄 웃으면서 “자네에게 지옥을 가르쳐 주었네. 화를 내는 그것이 지옥일세.” 묘한 뉘앙스가 남는 말이다.

남악 회양 선사의 문하에서 걸출한 선승들이 많이 배출 되었다. 마조도일에 이어 백장 회해, 황벽희운, 임제의현 등은 남악의 적손으로 중국 선종사에서 큰 산봉우리와 같은 역할을 했던 인물들이다. 남악 회양 선사의 법통을 이어 후에 임제종과 위앙종이 탄생하여 종파를 이루었다.

특히 돈오돈수(頓悟頓修)의 종지를 선양한 임제종의 가풍이 조사선(祖師禪)을 형성하고 간화선(看話禪)을 활성화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선종의 5종7가 가운데 임제의 종풍이 가장 널리 드날려지게 되었다.
〈전등록〉 ‘남악회양전’에는 그가 제자 마조 도일 선사가 좌선에만 집착하는 것을 타이르는 말이 나온다.
“그대가 좌선(坐禪)을 배우는 것인가? 앉은뱅이 부처(坐佛)를 배우는 것인가? 만약 좌선을 배운다면 선은 앉고 눕는데 있지 않고, 만약 앉은뱅이 부처를 배운다면 부처는 정해진 모습이 아니다. 머무름이 없는 법(無住法)에 취하거나 버리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인연이 맞아야 도를 본다고 말해준다. 도일 선사가 물었다.

“도는 형상이 아니거늘 어떻게 본다고 합니까?”

“심지(心地) 법안(法眼)이 있으면 도를 능히 본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