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행·보살정신 실현이 ‘成所作智’

如來四智에 대해

해제일이 지나자 스님 몇이서 찾아왔다. 이들은 학문수행과 심성수행으로 기본이 튼튼히 다져진 종단의 희망으로 보이는 스님들이었다. 그들 중 한 스님이 내게 물었다. “여래사지(如來四智)에 대한 스님의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하여, 내가 말하였다.

“대원경지(大圓鏡智)와 평등성지(平等性智)그리고 묘관찰지(妙觀察智)에 대해선 묻지 않겠습니다. 스님들 중 누구라도 좋으니 성소작지(成所作智)에 대해 간단하게 무엇이 성(成)이고 무엇이 작(作)인지 먼저 설명해 보시지요.” 대중이 쉽게 답을 못하자 내가 말하였다.

“불교의 핵심사상은 중도(中道)와 연기(緣起)입니다. 종단의 한 원로 스님께서 자주 중도사상에 대해 언급하시는데 반쪽 설명에 그치고 있으며 일생을 수행해 오신 어느 수좌 스님도 연기법칙(緣起法則)을 이해하는데 있어 연기(緣起)와 무아(無我)를 둘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연기와 무아는 둘이 아닌 하나입니다. 연기(緣起)는 존재론적 실상의 우주법계를 원인과 결과로 실체를 밝힌 것입니다. 중도(中道)는 시간과 공간의 주인공임을 일깨워주는 존재의 덕목을 중(中)과 정(正)으로 드러낸 것입니다. 여래의 사지(四智)를 설명하자면 중도(中道)의 정의에 대해 간단한 언급이 필요합니다. 중(中)은 정(正)인데 중(中)에서는 대(對)와 변(邊)에서 걸림이 없이 자유 자재함을 의미하며 정(正)에서는 미(迷)와 사(邪)에서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머묾 없이 자유로워짐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불교의 중도(中道)는 유교의 중용(中庸)과 달라 양변불락(兩?不落)이 아닌 양변무애(兩邊無碍)이며 무변중심(無?中心)인 것입니다. 임제선사의 수처작주(隨處作主) 또한 중도를 드러낸 말입니다. 불교의 중도에는 대(對)와 변(邊), 미(迷)와 사(邪)가 없는 것입니다. 중도를 바로 알고 바로 실천하면 누구나 행복과 자유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연기법칙의 원리는 원인이 없는 결과 없고 결과에는 필연적인 원인이 있어 돌연변이는 있을 수 없습니다. 창조주인 브라흐만(Brahman)을 인정할 수 없듯 아트만(Atman)의 존재도 부정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연기(緣起)와 무아(無我)를 둘로 나누어 설명함은 연기의 참뜻을 사무치게 녹이지 못한 탓입니다.

이쯤해서 질문하신 여래사지(如來四智)를 간단히 설명하겠습니다. 여래에겐 사지(四智)도 군더더기 사족(蛇足)일터이나 중생을 위해 마지못해 부쳐진 이름일 터입니다. 부처(如來)가 되면 네 가지 지혜(四智)가 나타나는데 첫째가 대원경지(大圓鏡智)입니다. 모든 인연과 경계가 끝이 없으나 묘법정안(妙法正眼)으로 친소(親疎)가 둘이 아니요 피아(彼我)의 구분 없이 만 가지 덕(德)의 근본으로 중생을 대하는 지혜입니다. 모서리와 변두리가 없어 우주공간 그대로가 틀이 없는 맑은 거울과 같아 부쳐진 이름입니다.

둘째는 평등성지(平等性智)입니다. 미(迷)와 사(邪)가 낄 수 없는, 우월과 열등의 높낮음 없이 유(有)와 무(無)의 차별과 집착도 없이 범성(凡聖)이 둘이 아니요 거래(去來)와 생멸(生滅) 단상(斷常) 등이 둘이 아닌 하나로 어우러진 세계입니다. 이는 팔불중도(八不中道)의 평등성을 강조해 부쳐진 이름입니다.

셋째는 묘관찰지(妙觀察智)입니다. 금강경에서 강조하는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에서 벗어나 온갖 미(迷)와 의(疑)에서 자유롭습니다. 진공(眞空)이나 묘유(妙有)인 것이 묘관찰지(妙觀察智)입니다.

네 번째는 성소작지(成所作智)입니다. 수행의 목적은 성불(成佛)에 있고 성불의 완성은 중생구제의 실천에 있습니다. 중생들을 대함에 있어 무연대비(無緣大悲)의 실천으로 중생을 위해 중생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바탕을 마련해 주는 것이 작(作)이요 중생의 소원하는 일이 성취될 수 있도록 보시(布施)를 실천하는 것이 성(成)입니다.

종교와 신앙의 존재 이유는 행복과 자유를 누리는데 그 생명력이 있습니다. 수행을 완성한 부처(如來)라면 중생을 위한 무연대비(無緣大悲)의 다함이 없는 행동의 실천, 이타행(利他行)을 생활화하는 보살정신의 실현(實現)이 성소작지(成所作智)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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