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 보현사 가는 길

 

저 멀리 뻗은 길은 백두대간에 쌓인 눈을 헤치고 보현사로 향하는 길이다. 풍차를 보며 혜능선사가 말한 풍번문답이 떠오른다.

강원도 대관령에는 눈이 많이 내린다. 백두대간을 타고 오르는 공기가 버거운 듯 품고 있던 습기를 산에다 부려 놓는데, 그게 눈이다.

이를 알고 겨울의 초입부터 많은 등산객이 이 지역의 대관령 휴게소를 찾는다. 나와 도반들도 그런 부류였다. 나무줄기인 대관령에서 곁가지처럼 뻗어 나간 선자령(仙子嶺)에 오르기 위해서였다.

휴게소를 나와 잠시 오르막길을 걸으니 갈림길이 나왔다. 거기서 오른쪽 비탈길로 새하얗게 몸을 일으킨 산이 선자령이다. 태백-오대산으로 연결해주는 백두대간의 준령이다.

들머리를 국사성황사로 잡은 것은 범일 국사를 친견하기 위해서였다. 스님이 산신령으로 추앙받는 일은 극히 의외가 아닐 수 없다. 사당에 모셔진 범일 국사는 게다가 구산선문의 하나인 사굴산문의 종조 아니었던가. 탱화 속의 범일 국사는 활과 활통으로 무장한 채 백마를 타고 가는 무인인 동시에, 호랑이와 시종의 호위를 받는 산신령의 모습이었다.

국사성황사에서 나와 언덕길을 올랐다. 사람들이 빈번히 오르내린 탓에 단단히 다져진 눈은 발목을 덮지도 못했다. 가지가 휘도록 눈꽃을 피운 언덕은 소나무와 전나무 묘목을 심은 조림지였다. 어디쯤부턴가 눈보다 더 흰 몸피의 자작나무들이 길을 연다.

오를수록 나무들의 키가 점점 낮아졌고, 부는 바람에서도 심상찮은 기운이 느껴졌다. 사막이 설원으로 바뀌는 순간이었고, 로렌 아이슬리의 문장은 여전히 불길했다. 이윽고 나이 든 수도사가 등장한 사막과 달리 눈 덮인 고원에서 한 기, 두 기 등장한 것은 풍차였다.

새봉이 가까워지자 아니나 다를까, 바람이 술 취한 코끼리처럼 마구 달린다. 텅 빈 하늘이지만 바람과 바람이 오가다 맞부딪쳐 깃발 나부끼는 소리가 난다. 며칠 전 새봉에 내렸던 눈이 바람에 쓸려 일어나 가루를 뿌린다.

“좋구나, 좋아!”

고된 시련을 예고하는 눈보라에도 누군가 덩실댔지만, 우리 대부분은 샛눈을 뜨거나 고글을 모자 아래로 당겨 눈을 가리고서야 겨우 전진할 수 있었다.

 

선자령에서는 아무리 조심해도 바람을 피할 길 없다. 앞에서, 혹은 옆에서 창졸간 휘몰아쳐 오는데, 대관령 목장의 탁 트인 구릉지를 지나오며 가속도가 붙은 북서풍이다. 능선의 키 작은 나무나 풀들이 동쪽으로 비스듬히 누운 것도 이 북서풍 탓이다. 몇 해 전 선자령에서 실종된 70대 노부부를 119구조대가 수습했다고 한다. 사인은 기상악화에 따른 저체온증. 오디세우스의 군대를 유혹한 사이렌이 그랬듯이 선자령의 매혹적인 풍경이 악마의 섬으로 돌변하는 건 한순간이다. 사람의 목숨까지 앗아가는 이 같은 변화무쌍한 기후에 비행기 조종사들 또한 비행주의 구간으로 긴장을 놓지 않는다.

새봉 전망대에서 해발 1157m 정상까지는 1.5㎞ 가량 떨어져 있다. 이 구간을 지나면 거센 바람이 다듬은 평원이 펼쳐지는데, 펼쳐지는 것이 어디 그뿐이랴. 발왕산, 계방산, 오대산, 황병산……. 선자령을 내려다보는 산들이 도반의 고글 안경에 펼쳐진다. 도반들을 이끌고 선자령에 오른 이 날은 강릉 시내 너머에서 동해바다까지 출렁이듯 펼쳐져 저절로 환호성을 자아냈다. 하늘과 바다가 모두 새파랬다.

그렇지만 ‘선자령’ 하면 뭐니 뭐니 해도 은빛 설원에 어우러진 풍력발전기다. 선자령에 부는 연평균 초속 6.7m의 바람이 지름 90m에 이르는 거대한 날개를 돌린다. 이 풍력발전기를 사람들은 풍차라 부른다. 풍차, 돈키호테가 맞짱 뜨려했던 괴물이 선자령 일대에는 모두 53개나 된다.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 위에 조계종의 6조 혜능 선사가 겹쳐진다. 혜능 선사가 법성사에 머물고 있었을 때다. 당간 위에서 바람에 나부끼는 깃발을 보고 두 스님이 다투었다. 바람이 부는가, 깃발이 흔들리는가. 혜능 선사가 조용히 끼어들었다.

“바람도 깃발도 움직이지 않아. 그대들 마음이 움직이는 거지.”

움직이는 것이 바람이냐, 깃발이냐. 그 유명한 풍번문답(風幡問答)은 결국 유심론으로 귀착된다.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려 있다. 바람도 깃발도, 바람과 깃발의 움직임도, 마음으로 인식된 대상이다. 그런데 문제는 마음조차 마음이 아니라는 데 있다. 인연 따라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 마음이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인연조차 끊임없이 변하는 데 있다. 있다고도 할 수도, 없다고도 할 수 없는 마음의 무상성! 바람과 깃발과 움직임과 마찬가지로 마음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이니, 움직이지 않은 것은 마음이 아니다.

그렇다면 저 거대한 날개를 돌려 바람을 갈아내는 풍차를 보고 그저 경탄할 노릇 만이 아니다. 저 차가운 바람으로 돌아간 날개가 뜨거운 불을 활활 피워 올린다니 말이다. 이 발전기로 연간 24만mW의 전기를 생산해 5만 가구가 쓴다.

백두대간 표시석이 있는 정상을 지나 하산길을 보현사로 내려가는 선자령 느즈목으로 잡았다. 이제부터는 야생으로 들어가야 한다. 우리의 발소리에 놀라 숲에서 울던 새들이 침묵했고, 이내 날개를 치고 가지를 떠날 때 눈 뭉텅이들이 퍽퍽 떨어졌다.

쌓인 눈에 길이 지워진 데다 사람이 다닌 흔적도 별로 없어 눈어림만으로 길을 찾아야 했다. 게다가 발이 푹푹 빠져 스패츠를 착용했는데도 눈이 밀려 들어왔다. 아이젠도 제 기능을 잃어 미끄러지기를 몇 차례였다. 길섶으로 잠시 발을 헛디뎠더니 허벅지까지 금세 눈이 차오른다. 가끔 얼음이 박힌 바위를 만나면 산행에 익숙한 도반이 먼저 내려가서 초보들을 받아 내렸고, 그러느라고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허위허위 산길을 내려와 두꺼운 얼음 속으로 물이 흐르는 계곡을 만났다. 지친 몸으로 걷기에는 기나긴 계곡길이었다. 사람의 발자국이 지워진 눈길도 있어 몇 차례 주변을 두리번거리기도 했다. 눈이 깊숙이 내리 쌓인 숲이 너무도 고요해서 혹여 보현사를 찾지 못할까 봐 슬그머니 걱정스러울 무렵이었다. 눈 덮인 나무들 사이로 선자령이 깊숙이 숨긴 풍경, 보현사가 빼꼼 지붕을 드러냈다.

보현사를 품은 선자령을 산경표에서는 대관산, 동국여지지도에서는 보현산이라고 표시한다. 보현사를 기록으로 전하는 ‘태고사법’은 만월산으로 적어 관세음보살의 원만한 상호를 선자령에서 찾아낸다.

신라의 낭원국사 보현이 직접 창건한 보현사는 영동 지방에서 가장 오래된 절이다. 보물로 지정돼 가람의 한 켠에 전해오는 낭원대사오진탑과 낭원대사오진탑비가 이를 증명한다.

보현사는 보현보살의 원력을 품은 절이다. 보현보살은 부처의 가르침을 반드시 몸과 마음으로 실천하겠다는 뜻을 지닌 보살이다. 우리나라에는 문수보살을 신봉하여 생긴 절이 오대산 상원사를 비롯하여 꽤 여러 군데지만 보현보살을 모신 절은 흔치 않기에 그 연유가 궁금했다.

강릉시 동남쪽 남항진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당도했다. 천축국에서 온 두 보살은 그곳에 문수사를 세웠다. 어느 날 보현보살이 시위를 당겼다.

“한 절에 두 보살이 있을 수 없으니, 내가 활을 쏘아 화살이 떨어진 곳을 절터로 삼아 떠나겠다.”

그 화살이 떨어진 곳이 바로 이 보현사였다. 물론 이 이야기는 전설이다.

 

범일국사 이야기가 깃든 보현사

그보다 더 궁금한 게 있다. 불교국가 신라에서 국사까지 한 스님이 어째서 이 깊은 산중의 작은 절에 들었을까? 흥미롭게도 낭원 국사는 범일 국사의 제자였다. 비록 샤머니즘이기는 하나 범일 국사를 모신 국사성황사가 초입에 있으니, 스승과 제자의 인연을 선자령이 법맥처럼 잇고 있는 셈이었다.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학, 그리고 신화를 관통하는 불교는 낭원대사오진탑비에 새겨진 비문처럼 언제나 숙제를 내놓는다. 낭원대사오진탑비에 적힌 스님의 일생은 간략하지만, 선자령의 은빛 설원처럼 빛나고 풍차처럼 뜨거웠으리라.
햇빛을 되쏘는 선자령 능선길. 저 멀리 강풍에 돌아가는 풍차가 보인다.

동해바다를 바라보는 선자령 풍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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