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수 교수, 허왕후 설화 비판 연구서 발간

가야불교를 이야기하며 제기되는 학설은 ‘남방불교도래설’이며, 이 중심에는 인도 아유타국에서 왔다는 허왕후가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그녀는 김수로왕에게 시집을 갔고, 태자 거등공을 낳았다. 가야불교를 긍정하는 한국불교계는 허왕후의 설화를 하나의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는 부분이 많다. 하지만, 이면에는 ‘설화를 하나의 상징체계 아닌 역사의 사실로 받아들이는 게 타당한가’라는 의문도 존재한다.

인도서 건너왔단 허왕후 설화
1천년 걸쳐 만든 허구적 신화
‘국민 신화화’ 과정 비판·분석

지자체·인도 교류서 활용하며
설화의 역사화, 확대재생산 중


역사의 국가주의화를 지적해 온 이광수 부산외대 인도학부 교수의 연구서 〈인도에서 온 허왕후, 그 만들어진 신화〉는 허왕후 설화에 대한 비판적 질문의 답을 던진다.

이 교수 주장의 핵심은 허왕후 설화에 담긴 민족주의 담론에 대한 비판에 있다. 허왕후 설화는 시대를 거치면서 기본 뼈대에 새로운 살이 붙으면서 1000년 동안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삼국유사〉의 ‘금관성 파사석탑’이다. 이 교수는 허왕후가 파사석탑을 배에 싣고 왔다거나 허왕후의 오빠인 장유화상이 불교를 한반도에 들여왔다는 것도 모두 ‘날조된 신화’라고 강조한다. 당시 인도에서는 탑을 배에 탑재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고, 고대에 돌무더기를 실은 배가 인도에서 한국까지 항해하기는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허왕후 설화 중 금관성 파사석탑은 ‘가락국기’ 편찬 후부터 〈삼국유사〉가 편찬되던 사이에 만들어진 것”이라며 “호계사 등 사찰에서 허왕후의 신화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이는 역사를 사실보다 해석으로 보는 불교사관에 기인한다”고 설명했다.

사찰에서 확장된 허왕후 신화는 조선시대 유림들의 가문정치와 만나며 허왕후를 실재적 역사 인물로 만든다. 이 교수는 “양천허씨가 신화 속의 허왕후를 실제 인물로 여겨 허왕후릉을 비정하고 족보와 연계시키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허왕후가 역사 속 인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실제 허황후는 ‘보주태후’라는 시호를 받게 되고, 족보에까지 등장하게 된다.

저자가 더 심각하게 바라보는 것은 허왕후 설화가 날조되고 역사적 인물이 되면서 현대에서까지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설화의 확대 재생산에는 정치·지방자치단체·사이비 역사학자·언론 등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점도 분명히 한다.

실제, 한국과 인도 교류가 허왕후 설화를 확장하는 역할을 하며, 이를 인도 우파 민족주의 세력이 활용해 자신들의 역사 만들기에 일조하는 점은 ‘민족주의적 신화 만들기’가 보여주는 단적인 폐해다. 

그러면서 저자는 오로지 ‘우리는 우수한 민족’임을 자랑스러워하는 국민들의 역사적 몰이해와 무비판적 인용이 결국 ‘통제할 수 없는 괴물’을 만들 수 있음을 경계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허왕후 신화는 민족주의와 국민 콤플렉스가 존재하는 한, 역사학자들이 자신의 연구 분야 외에 관심을 쏟지 않거나 남이 한 연구를 무비판적으로 인용하면서 의심의 눈초리와 비판력을 상실하는 한, 앞으로도 계속 살아서 움직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신화서 실재하는 역사적 사실을 추출하려면 매우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며 “신화를 실제 역사로 이해하고 실재하는 것으로 치부해서는 안된다. 이는 명백한 역사왜곡이자 사이비 학문”이라고 성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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