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화 속 스토리텔링- 안락국태자 이야기 下

“불쌍하구나. 안락국이여. 유복자로 태어나 아버지가 그리워 천리만리 찾아가더니, 돌아와서는 이번엔 어머니를 잃었구나.” 소치는 아이의 처량한 노래를 듣고 안락국이 깜짝 놀라 연유를 묻습니다.
“아버지를 보겠다는 그 아이가 하도 가여워서 잠시 보고 오라고 한 것이지 도망간 것이 아닙니다. 머지않아 꼭 돌아올테니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라고 원앙부인이 간곡히 매달렸습니다. 하지만 노발대발한 장자는 “내가 돈을 주고 네 뱃속에 있는 것을 샀으니 내 소유이지 네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하고 부인의 머리채를 잡아끌어 보리수나무 밑으로 가서 칼로 세 동강을 내어 베어 던져버렸습니다.

“불쌍하구나, 안락국이여”라는 노랫소리에 깜짝 놀라 뒤돌아보는 안락국.
안락국 도주를 안 자현장자
원앙부인 세 토막 내서 죽여
돌아온 안락국, 왕생게 염송
간절한 염원으로 모두 왕생

무지와 갈애의 한바탕 꿈
안락국이 아버지를 찾아 도망갔기 때문에 장자가 분노하여 어머니를 무자비하게 칼로 메어 쳤다는 것입니다. ‘아, 모두 나 때문이다.’ 안락국은 이런 사정을 듣고 눈앞이 캄캄하여 울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고 그만 쓰러져 버리고 맙니다. 한참 만에 정신을 차린 안락국이 비틀거리며 보리수 아래로 가보니, 과연 어머니의 시체가 세 동강 나서 여기저기 뒹굴고 있었습니다.  

안락국이 이를 주섬주섬 주워다가 차례로 이어 놓고 땅에 엎드려 통곡하며 뒹굴며 쓰러져 우니, 하늘이 진동하였습니다. 서쪽을 향하여 앉아 합장하고 어머니가 가르쳐준 왕생게를 외우며 게송을 지어 불렀습니다.

원컨대 내가 장차 목숨을 마칠 때(願我欲臨終時)
일체 업장 다 버리고(盡除一切諸障碍)
면전에 아미타불을 보아(面見彼佛阿彌陀)
즉시 안락찰(극락)에 태어나게 하소서(卽得往生安樂刹)

염불삼매로 열리는 극락세계
꿈과 같이 아버지를 만나고 돌아온 안락국에게는 더욱 잔혹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참혹한 모습의 어머니 주검입니다. ‘고운 님 못 보아 사르듯 울며 지내더니, 임이시여, 오늘날 넋이라고 하지 말 것이다.’ 비명에 간 원앙부인의 마지막 말입니다.

어머니가 세상에 없는 이상, 안락국 역시 살 이유를 찾지 못합니다. 어머니가 극락에 태어나기를 바라는 아들 안락국의 간절한 염원은 피안에 가 닿습니다. 게송을 지어 부르자, 즉시 극락세계에서 48용선이 진리의 바다(眞如大海)에 둥둥 떠내려 옵니다. 용선 속의 큰 보살님들이 태자에게 이르되, ‘너의 부모님은 벌써 극락세계에 가셔서 부처가 되셨거늘, 네가 이를 모르고 있어서 길을 인도하러 왔다.’ 태자는 이 말을 듣고 기뻐하며 사자좌에 올라 허공을 타고 극락세계로 향합니다.

아미타용선이 나타나 안락국과 원앙부인을 태워 극락으로 가는 모습. 생사의 바다를 건넌 안락국태자가 엄마 품에 안겨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업장소멸’ 또는 ‘공덕장엄’의 드라마
이리하여 이야기는 끝을 맺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원앙부인극락왕생기〉의 마지막 대목에는 “광유성인은 지금의 석가모니불이시고, 사라수대왕은 지금의 아미타불이시고, 원앙부인은 지금의 관세음보살이시고, 안락국은 지금의 대세지보살이시고, 승열바라문은 지금의 문수보살이시고, 여덟 궁녀는 지금의 8대보살이시고, 5백 제자는 지금의 5백 나한이시다. 자현장자는 무간지옥에 떨어졌다”라고 언급되어 있습니다.

광유성인의 정체는 석가모니 부처님이시고 그가 데리고 있는 5백 제자는 5백 나한이라고 하니, 임정사는 법을 배우고 실천하는 승가입니다. 사라수대왕·원앙부인·안락국은 아미타불·관세음보살·대세지보살이라고 하니 ‘아미타삼존’이 됩니다. 원앙부인은, 아니나 다를까, 자비의 화신인 관세음보살입니다. 안락국태자는 ‘안락국(安樂國)’이라는 그 이름부터 ‘극락’을 지칭합니다. 안락찰(安樂刹), 안락국(安樂國), 안국(安國), 안양(安養)은 모두 극락(極樂)과 동일한 어원인 산스크리트 ‘수카바티(Sukhavati)’에서 나왔습니다. 이는 ‘지극히 즐겁고 평안하다’는 뜻입니다.

아미타불이 주재하는 정토가 바로 서방극락정토(西方極樂淨土) 또는 미타찰(彌陀刹)입니다. 자현장자는 항상 석가모니를 음해했던 사악한 사촌 데바닷타와 같은 존재입니다. 삼역죄를 지어 산채로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졌다는 데바닷타의 종말과 같습니다. 마지막 장면에 해당하는 아미타용선의 모습은 환상적이고도 아름답습니다. 생사(生死)의 바다를 건넌 안락국태자는 엄마 품에 안겨 있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서 듬직하고도 늠름하게 노를 젓고 있는 아미타불은 바로 아버지 사라수대왕입니다. 아버지가 노를 젓고, 어머니가 왕생게를 부르는 소리를 들으면서 안락국은 극락으로 나아갑니다.

불교를 모르면 놓치는 것들
이러한 마지막 대목으로 인해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관점을 제시합니다. 주인공들이 부처님과 보살님의 화신이라는 것은, 대승불교의 전형적인 불신관을 반영합니다. 즉, 세상을 공덕장엄하기 위해 몸 받아 속세에 나투신 화신 또는 응신의 개념을 말합니다. 이 같은 불교적 관점을 모르고 보았을 때, 이 이야기는 한 가족의 비참한 몰살이라는 비극적인 결말로 해석이 됩니다. ‘한(恨)’의 불교적 승화라는 둥, 소극적인 해석을 할 수도 있습니다.

대왕이 왕궁의 부귀영화를 버리고 사찰의 허드렛일을 하러 떠났다는 것, 그리고 여왕이 몸종으로 자신을 팔았다는 것 등의 행위들은, 속세적 욕망과 이기적 독선이 판치는 현대사회의 풍토에서는 이해가 안가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세속적 관점의 부귀영화나 명예와 사랑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왕은 명예를 버리고 자신을 맑히는 청정한 ‘수행’을 택했고, 여왕은 세속적 사랑과 부귀영화를 버리고 힘겨운 ‘보시행’을 택했습니다. 이러한 발원을 세우고 나아가는 과정에 닥쳐오는 시련들은 나와 타인의 업장을 소멸하는 과정이 됩니다. 마치, 부처·보살님이 우리에게 인생무상을 가르쳐주려고 한 판의 연극을 펼쳐 보여주고 사라진 듯 한 느낌입니다.

원앙부인 품 속에서 함께 합장하는 안락국.
위에서 아래, 자아를 버리는 여정
작품 속 이야기의 전개 과정은, (정면에서 보아) 하단 우측에는 상단 좌측으로 펼쳐집니다. 아래에는 사랑과 명예가 있는 왕궁(속세)이 있고, 위쪽은 법계와 속계를 잇는 가교적 역할을 하는 수행 공간으로서의 임정사가 있습니다. 극락으로 진입하는 초입과도 같습니다. 화면의 가운데에는 주인공들의 험난한 여정이 펼쳐집니다. 먼 길을 떠나는 왕과 왕비, 애정과 혈육의 정마저 끊고 떠나는 왕, 여종으로 팔려가는 왕비, 목숨을 걸고 죽림국과 범마라국을 오가는 안락국 등. 이들 내용들의 공통점은 주인공들이 모두 자신의 마지막 보루, 즉 자기 자신마저 버려야 하는 상황이 온다는 겁니다.

이러한 시련들이 닥쳤을 때 주인공들의 행위는, 단순한 업장소멸에서, 공덕장엄의 스토리로 전환됩니다. 인생이 그저 전생 과보의 또 하나의 윤회가 될 것인가, 아니면 자아를 버리고 깨달음으로 향하는 여정이 될 것인가. 보리발심하는 마음을 내고, 이타적인 마음을 내고, 자신의 업보를 달게 받고, 제각기 나름의 용맹정진을 통해 모두 극락세계로 가게 되었다는 이야기. 묘한 비애미 뒤에 숨겨진 영롱한 보석 같은 내용입니다.


작품 속으로- 안락국태자경변상도

〈안락국태자경변상도〉 전도, 비단에 채색, 105.8×56.8cm, 조선 전기 1576년, 일본 고지 청산문고 소장

이야기와 함께 소개하는 〈안락국태자경변상도〉(크기 105.8×56.8cm)는 비단 바탕에 채색으로 그려진 조선 전기(1576년) 왕실 발원 작품입니다. 작품은 현재 일본 시코쿠 고치에 있는 ‘청산문고’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화폭 속에는 장면마다 등장하는 인물들이 반복적으로 나타나, 이들이 시간적 이동을 하며 이야기가 전개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초창기 한글로 기입된 각 장면의 설명이 보입니다. 화면에 적힌 문구를 보면 아래 아 방점, 세모 모양이 표기된 반잇소리, 아음과 후음이 구별되는 이응 표기도 보여, 자못 귀중한 작품임을 알 수 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림 상단의 화기(畵記) 내용입니다. “주상전하 성수만세 왕비전하 성수재년 속탄천종/ 공의왕대비전하 성수산고 자심해활 제세여원/ 덕빈저하 수명무진 복덕무량/ 혜빈정씨 보체 무재무장 수명무궁 … (主上殿下聖壽萬歲 王妃殿下聖壽齊年速誕天縱 恭懿王大妃殿下聖壽山高慈心海闊 濟世如願 度生如心 德嬪邸下壽命無盡 福德無量 惠嬪鄭氏寶體無?無障 壽命無窮 … )” 당시 왕실의 최고 권력자들의 보체 안녕을 위한 발원문입니다.

본 작품은 조선 전기 궁궐 안에 특별한 공간에 모셔졌을 것이고, 이 앞에서는 해당 왕실 인물들을 위한 예불이 올려졌을 것입니다.  

이런 귀중한 우리나라 조선왕실의 작품이 어떻게 해서 일본의 작은 마을, 문고박물관에 소장되게 되었을까요. 직접 현지에 가서 조사를 하고 그 연유를 알아보니, 본 작품은 임진왜란 때 왜장으로 출전했던 쵸소카베 모토치카(長曾我部元親)가 조선으로부터 가지고 온 유품이라고 합니다. 전쟁 때 조선 왕실 또는 관련 원찰에서 유출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보존 상태는 매우 양호하였습니다. 당시의 채색이 그대로 남아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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