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불교=박아름 기자] 19대 국회서 무산되며 20대 국회 필수 입법과제로 주목받았던 차별금지법. 지난해 첫 정기국회와 2월 임시국회를 거친 지금, 차별금지법에 대한 논의는 어디까지 이뤄졌을까. 안타깝게도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지난해 8월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되고, 이번 2월 임시국회서 바른정당이 학력차별금지법을 처리 대상에 포함시켰을 뿐 그 어디에서도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개별적 차별금지법과 달리 모든 종류의 차별을 다룬다. 헌법의 평등 이념에 따라 성별·장애·병력·나이·성적지향·인종·피부색·용모·종교·학력 등 모든 영역에 있어 합리적인 이유 없는 차별을 금지한다. 이미 미국·독일 등 국가서 차별금지 관련 법안이 시행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여론조사 결과 국민의 59.8%가 차별금지법 제정의 필요성을 공감하는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종교자유정책연구소, 2013년 7월 발표)

불교계는 오랜 기간 차별금지법 제정을 주장해왔다. “그 누구도 차별받아선 안 된다”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현 시대 불자들이 차별금지법에 쌍수를 드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특히 조계종은 올해 ‘차별 없는 평등한 세상을 만들어갑시다’란 종무 기조 아래 차별금지법 입법을 위해 적극 가담할 것을 천명하기도 했다.

그런데 왜 지금까지도 대한민국에선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못했을까. 19대 대통령선거를 앞둔 지금, 차별금지법을 주장하던 국회의원들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혹 차별금지법 공동발의를 했던 국회의원이 특정종교 행사에서 “여러분이 원하는 차별금지법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며 한 입으로 두 말하고 있진 않은가. 또는 대선을 앞두고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특정종교의 눈치를 보며, 국민의 인권보호와 직결되는 차별금지법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나라서 차별금지법에 대한 논의는 지금부터 정확히 10년 전인 2007년 시작됐다. 당시 법무부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입법 예고했으나 의회선교연합이 ‘성적지향’ 포함 여부를 두고 “동성애가 확산되면 안 된다”고 반발하며 학력·성적지향·병력 등 7개항목이 삭제된 채로 진행됐다. 이에 따라 일부 시민단체들이 차별금지법 의미가 훼손됐다 주장하며 실효성 논란이 불거졌고, 2008년 5월 회기만료로 폐기됐다.

이후 19대 국회에 들어서는 2012년 김재연 통합진보당 의원, 2013년 김한길·최원식 민주통합당 의원, 2016년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차별금지법을 발의했으나 그때마다 보수주의 개신교의 힐난이 국회를 압박했다.

국회가 특정종교 눈치를 보는 동안 무수히도 많은 차별로 인한 범죄가 발생했다. 주취 상태서 노인과 아동, 여성, 장애인, 이주민노동자에 대한 폭력 사태가 심심치 않게 뉴스에 등장하곤 한다. 또 누군가는 죽어가기도 했다. 나이가 들었단 이유만으로, 여성이란 이유만으로, 또 성적 지향이 다르단 이유만으로 불합리한 차별에 노출된 이들을 우리는 언제까지 방치해야할까.

물론 20대 국회 임기가 시작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차일피일 늦춰지다 또다시 21대 국회를 기약해야하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앞선다. 나의 기우(杞憂)이길 바란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