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휴 스님의 백담사 무문관 ‘是甚麽 日記’ ①

강원도 화암사 산내암자 영은암에 주석중인 정휴 스님은 현재 조계종의 종헌·종법 기틀을 만든 장본인이자 승려 시인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14대 조계종 중앙종회의원을 끝으로 일체 공직을 맡지 않은 스님은 2010년 3월 법정 스님의 입적으로 마음의 큰 변화를 겪고, 그해 11월 동안거에 백담사 무문관으로 들어간다.
2017년 정유년 동안거 해제를 맞아 정휴 스님은 본지에 무문관 입방 계기와 그 안에서의 사유와 성찰, 깨달음을 담은 글 일부를 보내왔다. 스님은 올해 상반기 중으로 〈백담사 문무관 是甚 日記(가칭)〉를 발간할 예정이다. 정휴 스님이 무문관에서 이룬 성찰과 깨달음의 궤적들을 5회에 걸쳐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정휴 스님은? 경남 남해에서 태어나 1963년 밀양 표충사로 출가했다. 불교신문ㆍ법보신문 편집국장 및 주필을 지냈으며 불교방송 상무, 조계종 총무원 기획실장, 동국학원 감사, 치악산 구룡사 주지, 불교신문 사장을 역임했다. 197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부문에 당선돼 문단에 데뷔했으며 선사들의 삶과 사상을 다룬 글들을 선보였다. ‘중생이 부처가 될 수 있는가’라는 불교의 근본적인 문제를 다룬 〈열반제〉를 비롯해, 해탈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린 경허스님의 생애를 다룬 장편소설 〈슬플 때마다 우리 곁에 오는 초인〉을 발표했다. 이밖에 저서로는 〈깨친 사람을 찾아서〉 〈선재의 천수천안〉, 역대종정법어집인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지 손가락 끝은 왜 보나〉 〈걸레중광평전〉 등이 있다.
눈앞에 있는 만물은 시시각각 변화하고 해마다 새롭게 태어난다. 머물러 있는 것 같지만 움직이면서 변화의 운행을 멈추지 않고 있다.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서는 묵은 껍질을 벗고 새롭게 태어나는 진통을 치뤄야 한다.

집착의 늪에 갇혀서 깨어나지 못하면 흐름이 멈추고 정체에 빠져 퇴행을 면할 수 없다. 언제나 편안함 속에는 정체와 타성이 들어있다.

자기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전통이나 인습을 타파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깨어 있는 정신이 있어야 하고 그 동안 몸과 마음으로 익혀온 그릇된 습관을 버려야 한다.

묵은 껍질 벗고 새롭게 태어나자
법정 스님 입적 계기… 삶과 죽음 성찰
내설악 입구부터 깨달음 세계 가득

2010년 11월 19일 무문관 입실
새로운 변화 위해선 禪的 가치가 중요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은 자기안에 존재
“내면 통로 열면 자성 근저 이르게 해”

우리의 정신은 새로운 것을 추구할 때 삶은 향상되고 심화되었다. 솔직히 말해 나는 반복되는 일상 속에 갇혀 있었고 몸에 익힌 그릇된 습관과 인습으로 인해 정체되어 있었다.

새로운 변화가 필요했다. 나를 정신적으로 뜯어 고치지 않고는 끝없는 나락으로 침몰될 것 같았다. 새로운 변화를 통해 잠재 있는 나를 일깨우지 않고는 번뇌 속에서 살다가 죽음을 맞이할 것 같았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은 자기 안에 있다. 자기를 새롭게 일으켜 세우는 것도 마음이고 자기 자신이다.

자신을 변화시키는 선적(禪的) 가치가 필요했고 그 가치를 이루기 위해서는 선방(禪房)으로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내적 성찰과 자기를 탐구하는 화두를 들고 비본질적인 것을 털어내지 않으면 새롭게 태어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을 때 내 삶의 일몰(日沒)이 시작되고 있었다. 육십을 넘기고 칠십을 바라보는 나이를 생각할 때 죽음이 어느 날 천둥처럼 찾아올지 알 수 없었다.

살아있을 시간이 그렇게 많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법정 스님의 입적을 듣고서이다. 스님은 한국불교 정신을 이끌었던 분이고 수행 생활도 깔끔하고 독특하였다. 스님이 중병을 앓고 있다는 소문은 절친한 지인을 통해 들었고, 미국으로 건너가 수술을 하고 건강이 호전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끝내 버티지 못하고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리고 제자들이 〈아름다운 마무리〉란 책을 편찬 한 것을 보고 그의 생애가 얼마 남아있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랫동안 스님을 모셨던 청학 스님이 전화를 통해 스님을 면회하고 나온다면서 한 마디 말도 할 수 없는 기력을 잃고 종이에다가 ‘생사는 하나이다’라고 적어준 쪽지를 받았다고 전해주었다. 직감적으로 그의 임종이 다가왔음을 직감하였고 스님은 그날 밤을 넘기지 못하고 우리 곁을 떠나고 말았다.

그 뒷날 길상사로 운구를 했다는 전갈을 받고 그가 거처하던 방으로 문상을 갔을 때 스님은 승복을 입은 채 대나무 돗자리 위에 편안히 누워있었다.

숨을 거둔 사람이라고 볼 수 없었다. 너무 편안하고 평화스러워 보였고 삶과 죽음을 마음속 깊은 곳에 감추어 버리고 죽음보다 깊은 잠을 자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다른 선사들과 달리 자기 마무리를 깔끔하게 정리하고 입적을 한 대표적 수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마무리하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피력하고 있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일의 과정에서 길의 도중에서 잃어버린 초심을 회복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근원적인 물음 ‘나는 누구인가’하고 묻는 것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내려놓음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비움이다. 그리고 아름다운 마무리는 언제든 떠날 채비를 갖춘다. 언제든 빈손으로 떠날 수 있도록 준비한다. 빈 가지도 때가오면 또 다시 새잎이 돋아날 것이다. 그리고 아름다운 마무리는 낡은 생각 낡은 습관을 미련 없이 떨쳐 버리고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가 남긴 ‘아름다운 마무리’의 내용을 살펴보면 깊은 성찰이 묻어나고 오랫동안 정진을 통해 체득한 지혜가 읽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깨달음을 주면서 인생을 마무리할 때 모든 사람들이 지녀야 할 철학적 화두를 던지고 있다.

첫 마음으로 돌아가고 초심을 회복하는 일, 그리고 자기 본래 면목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나는 누구인가?’하고 근원적 물음을 놓지 말아야 함을 주문하고 있다. 그리고 내려놓고 비워야 빈손으로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떠날 수 있음을 깨우쳐 주고 있다.

문상을 하고 나오면서 삶과 죽음에 대해 직시하고 성찰해야겠다는 각오를 했고 ‘이규보’가 이야기 했듯이 ‘삶과 죽음이 하룻밤 꿈’같았다.

그는 누구보다 인간과 자연, 그리고 환경문제를 깊이 고민하고 사유와 명상을 바탕으로 저술한 50여권의 책을 다시 출판하지 말라고 하였다. 마치 부처님이 49년간 설법을 해놓고 한 마디도 설 한 것이 없다는 것과 일맥상통 한다. 훗날 책을 통해 제기될 수 있는 논란을 미리 차단한 것이다.

그러나 그가 우리에게 보여준 인간 내면을 살피는 깊은 성찰과 피나는 정진과 사유를 통해 제시한 깨달음의 가치는 오랫동안 평가 받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 그는 대중과 어울리는 수행인이 아니라 독거(獨居)를 좋아했고 괴팍하고 깔끔한 성격 때문에 동료 스님들과는 잘 어울리지 않았다. 그리고 한 번도 솔직하고 진솔한 자기내면을 드려낸 일이 없었다.

그가 처음으로 인간적 면모를 밝히고 드려낸 것은 ‘아름다운 마무리’란 수상집에서였다.

‘병을 치료하면서 나는 속으로 염원했다. 이 병고를 거치면서 보다 너그럽고 따뜻하고 친절하고 이해심이 많고 자애로운 사람이 되고자 했다. 인간적으로나 수행자로서 보다 성숙해질 계기로 삼고자 했다. 지나온 내 삶의 자취를 돌이켜 보니 건성으로 살아온 것 같다. 이웃에 필요한 존재로 채워져야겠다고 마음먹었다.’

▲ '무문관' 안으로 들어가 치열한 수행을 하는 것은 '문없는 문'을 열고 대자유를 누리기 위함이다. 사진은 정휴 스님이 2010년 동안거를 보낸 백담사 '무금선원 무문관' 전경.
스스로 모난 부분을 살피고 부족했던 점을 자책하고 자성하는 법정 스님의 적나라한 인간적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나는 끝내 법정의 영결식에 참석하지 못하고 백담사 무문관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였다. 겨울 한 철 내 몸에 배어있는 묵은 껍질을 걷어내고 본래 자아로부터 일탈해 있는 자신을 본래 모습으로 되돌리는 탐구를 해야겠다고 조철한 서원을 세웠다.

서울을 출발 할 때만해도 가벼운 마음이었다. 독방에 갇혀 그것도 문을 잠군다고 하니까 남들의 시선을 의식 할 필요가 없었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화두를 들 수 있다는 것이 안도감을 주었다.

왜냐하면 자고 싶으면 자고 책보고 싶으면 책을 읽고 좌선할 생각에 사로잡히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으면 된다. 어떤 틀에 얽매이지 않고 방에서 만큼은 제도나 규율, 규칙이 없어 독방의 자유가 있다는 것이 나를 안정시켰다.

2010년 11월 19일 백담사로 들어가는 첫 입구인 용대리에서 부터 새로운 체험이 시작되었다. 내가 탐구하여 찾고자 하는 것 그리고 깨닫고자 하는 것이 눈앞에 드러나 있었다. 그 동안 책을 통해 깨닫고 있었지만 눈앞에 보이는 것이 깨달음으로 다가서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것은 ‘촉목보리(觸目菩提)’의 세계였고 ‘목격도존(目擊道存)’의 진리였다. 눈앞에 보이는 것이 깨달음이요. 눈앞에 있는 것이 그대로 진리란 뜻이다. 여기 오기 전에 나는 없는 것을 새롭게 이루고 만들고자 하는 마음도 없었고 숨겨놓은 것을 찾아내야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선(禪)이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도 아니고 숨겨놓은 것을 찾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본래 이루어진 것을 내심을 통해 확인하고 증득하면 되는 것이다.

눈앞에 펼쳐진 내설악(內雪岳)풍광은 모든 것을 드러내 놓고 있었다. 하나도 숨김이 없었고 일기일경(一機一境)을 통해 실상의 묘용을 나타내고 있었다. 울창하게 서있는 나무를 통해 배움은 시작되었다.
푸르고 푸르던 나뭇잎들은 오색물감으로 변했다가 낙하를 통해 나목으로 서 있었다. 다만 제 몸을 떠나지 않은 잎들만이 바람이 불면 전지(剪枝)를 하듯 제 몸을 떠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세찬바람이 불 때면 소나기가 쏟아지듯 떨어지고 꽃잎처럼 휘날리며 낙하하는 것을 눈여겨보았다.

늦가을은 침묵을 익히고 공적(空寂)을 체험하는 계절이다. 스스로 전지(剪枝)와 낙하를 거듭하면서 벗을 것 다 벗어버리고 침묵과 공적을 이루는 계절이 늦가을 풍경이다.

침묵은 인간의 내면의 통로를 열어 근본을 사색케 하고 공적(空寂)은 내심자증(內心自證.)을 통해 우리를 자성의 근저에 이르게 한다. 그래서 초겨울 산천은 모든 장식을 제거하고 본체의 아름다움만 드려낸다.

그리고 자연은 수행자에게 위대한 선지식이다. 사계절의 변화를 통해 열고 닫는 섭리를 깨닫게 하고 조락을 통해 인생의 부침과 영고성쇠를 깨닫게 한다.

일초일목이 절대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면 눈앞에 보이는 것이 그대로 부처요 법신불이다. 그리고 설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바람이 무정설법을 전해주고 물소리가 그대로 깨달음의 법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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