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웃과 자연이 삶의 길잡이

한 생각 접고 보면

〈장자(莊子)〉의 달생편에 나오는 싸움 닭(木鷄)에 대한 이야기이다. 닭 싸움을 즐겨보는 왕이 투계 조련사로 유명한 기성자라는 사람에게 천하제일의 싸움 닭 조련을 부탁한다. 열흘 간격으로 기성자가 왕에게 싸움닭의 조련 상태를 보고한다.

1. 허세를 부리며 깃털을 세워 상대를 얕잡아 기운을 뽐내려 한다.
2. 닭의 울음소리와 모습을 보면 덤벼들 기세로 힘을 과시 한다.
3. 상대 닭의 허점을 노리며 날카로운 눈초리로 공격하려 한다.
4. 상대 닭을 만나도 나무로 만든 닭과 같아 평정심의 덕(德)과 용(勇)을 갖추어 어느 싸움닭도 그 모습만 봐도 공격할 틈새가 없어 겁에 질려 도망 가려한다.

투계 조련사인 기성자의 설명을 듣고 왕은 목계(木鷄)에 매우 만족해 한다는 내용이다. 일본의 전설적인 무사(武士) 미야모토 무사시와 사사키 고지로의 대결이 담긴 책이 〈궁본무장(宮本武藏)〉이다.

미야모토 무사시는 평민 출신이다. 스승 없이 자연의 섭리를 스승삼아 무술의 깊은 경지에 이르게 된다. 그는 진검이 아닌 목검으로 천하제일의 칼잡이가 된 것이다.

이에 비해 사사키 고지로는 무예 명문가계로 이어지는 무림(武林) 최고의 스승 밑에서 최상의 칼잡이 기술을 연마해 검술의 으뜸 자리에 오르게 된다. 이들 두 사람은 〈궁본무장〉 소설의 끝 부분에서 대결하게 된다. 사사키 고지로는 천하의 명검을 들고도 목검의 미야모토 무사시 일격에 그야말로 묵사발이 된다.
자, 우리네 삶의 현장은 팍팍하고 고단하다. 살벌하고 힘에 겹다. 배고프고 목마르다. 흔들리고 헐떡인다. 불만과 권태는 나이테처럼 그 둘레를 넓혀가고 어둠의 그림자는 우울증처럼 몰려온다. 삶의 무게가 세월의 무게로 가슴을 짓누르고 하는 일마다 어려움이 겹쳐 얽히고설킨 실타래 같다. 희망이 절망으로 바뀐 지 오래고, 대화의 상대자마저 이해의 결핍으로 멀어진지 오래이다. 터널에 갇힌 삶이 호롱불빛이라도 찾아 헤매나 둘레는 적막강산으로 절대고독만을 몰고 온다. 쓸 곳은 많으나 주머니는 비어있고 그리운 얼굴은 많으나 먼 거리에서 등 돌린 지 오래이다.

가난에서는 언제나 신기하게도 소리가 나는 법이다. 마음속에 구멍이 송송 뚫린듯한 공허함과 쓸쓸함에서는 소리대신 죽음의 냄새가 풍겨온다.

있을 때는 몰려오고 없을 때는 사라지는 세상만사의 오고감이 허무의 그림자로 삭신 깊이 길게 누워 몸과 마음이 저리고 아프다. 종교의 신앙 쪽에서도 돈타령이고 남녀 교제에서도 돈의 위력이 승패를 좌우한다. 살고 싶으나 살 기력이 없고 죽고 싶으나 죽을 용기가 없어 카프카의 〈변신〉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어둠에 갇혀 살고 있다.

자, 그렇다면 〈장자(莊子)〉의 달생편에 나오는 싸움닭 목계(木鷄)로 되돌아 가보자. 흔히들 목계에 이르러야 싸움닭이 완성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나 목계(木鷄)에 이르는 과정이 더욱 아름답고 살맛나는 풍경이다. 토라지고 뽐내고 티내며 으스대는 것이 졸부의 행위처럼 보이지만 완벽보다는 사람 냄새가나서 좋을 수도 있는 것이다. 성공의 성취욕도 중요하지만 실패의 쓰린 다짐이 사람을 철들게 하고 사람답게 키우는 법이다.

청춘만 아픈 게 아니다. 인생살이는 아파야 살 맛 나는 것이다. 흔들리고 더러는 헐떡이며 타는 목마름이 있어야 삶이 소중하고 값지며 풍요로워지는 것이다. 목계는 완벽해 닭답지 않다. 사람도 완벽하면 주위에 사람들이 몰려들지 않는다. 부정적인 착각을 긍정적인 착각으로 되돌리며 빛과 어둠이 둘이 아닌 하나임을 명심할 일이다.

종교와 성직자가 필요 없는 세상이 그대로 복지국가요, 살기 좋은 세상이다. 〈궁본무장〉의 교훈처럼 최고의 스승은 높은 곳 먼 곳에 있는 게 아니라 가까운 이웃, 자연 그대로가 최상의 스승이자 교과서이며 삶의 길잡이인 것이다. 누구나 홍길동이 될 수 있듯 나무칼(木劍)로 진검(眞劍)을 이긴 미야모토 무사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한 생각만 접고 보면 어둠이 빛이 된다. 절망이 희망이 된다. 슬픔이 기쁨이 된다. 극락세계는 죽어서가 아니라 살아서 누리는 것이다. 내숭 뚝! 체면치레 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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