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선종의 육조 혜능(慧能:638~ 713) 대사는 매우 드라마틱한 생애를 산 인물이었다. 한 인물의 생애가 전설로 엮어지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불교적 입장에서 볼 때 숙생의 선근인연이 성숙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를 봉양하며 살던 가난한 나무꾼으로 정상적인 교육을 받지 못해 글을 읽고 쓰지도 못했다는 그가 저자거리에 나무를 팔러 갔다가 〈금강경〉을 독송하는 소리를 듣고 발심출가 하여 오조 홍인 회상을 찾아갔다는 것과 8개월 허리에 돌을 달고 방아를 찧다 신수 대사의 게송을 능가하는 게송을 지어 야밤에 오조로부터 몰래 조사위(祖師位)를 전해 받았다는 일화는 상식을 뛰어 넘는 이야기다.

대유령에서 의발을 빼앗으러 뒤쫓아 왔던 몽산 스님을 깨우쳐 준 그는 남쪽으로 내려가 16년 동안 사냥꾼 무리에 섞여 은둔생활을 하게 된다.

그가 은둔생활을 끝내고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 것은 광주 법성사에서 인종(印宗) 화상을 만나면서부터다.
인종 화상이 〈열반경〉 강설법회를 열고 있던 어느 날 초라한 차림의 객이 법성사에 나타났다. 법회가 끝나고 사람들이 흩어진 후 젊은 스님 두 사람이 마루에 앉아 논쟁을 하고 있었다.

마당가에 기(旗)를 거는 게양대에 바람이 불어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다. 이를 보고 두 스님이 “바람이 움직인다” “깃발이 움직인다” 하면서 언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깃발은 움직이지 않을 테니까 움직이는 것은 결국 바람이라고 한 사람은 주장하고, 또 한 사람은 바람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고 깃발이 펄럭이므로 움직이는 것은 깃발이라는 것이었다. 한쪽에서 이 말을 들고 있던 당시의 노행자(육조 혜능 대사)는 언쟁을 만류하려는 듯이 한 마디 덧붙였다.

“스님들,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닙니다. 스님들의 마음이 움직일 뿐입니다.”

의외의 말에 두 스님은 깜짝 놀랐다고 한다. 곧장 인종 스님에게 뛰어가 노행자의 말참견한 말을 전했다. 인종 스님은 노행자를 모셔오게 한다. 인종이 물었다.

“조사의 법을 전해 받은 이가 남쪽으로 가셨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는데 혹 조사위를 전해 받고 내려온 분이 아니십니까?”

때가 온 줄을 안 노행자는 사실대로 말하고 드디어 자신의 정체를 인종 스님에게 밝혔던 것이다.

이리하여 비로소 노행자가 인종 스님에 의해 득도되어져 스님이 되었다. 조사위를 전해 받은 사람이 스님이 되는 절차를 밟은 것이다. 그러나 법맥 계승을 두고 보면 인종 스님이 노행자 혜능 대사의 법을 전해 받은 제자 위치에 서게 되고 동시에 노행자를 득도시킨 은사가 된 것이다.

육조 혜능 대사는 중국 선종의 기반을 닦아 꽃을 피우게 한 장본인이다. 일화오엽(一花五葉)이라는 말이 생긴 것처럼 선종의 다섯 종파가 육조 혜능 대사를 기점으로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게 되었다. 육조 대사는 쌍봉산 조계(曺溪)에 보림사(寶林寺)를 개설하여 선법을 펴기 시작한다. 그 후 대범사에 머물면서 승속을 교화하면서 법문을 설한 것이 〈육조단경〉이다. 제자 법해 스님에 의해 집록된 이 책은 선종사에서 불멸의 위치를 차지하는 선서(禪書)로 5가 7종의 법이 모두 이 단경으로부터 나왔음은 물론 후대의 선불교를 지배하는 이념적 근원이 되었다. 선종 초조가 달마 대사이긴 하나 실제적인 선의 정착은 육조 혜능 대사로부터 시작되었다.

“보리자성이 본래 청정하니 다만 이 마음을 쓰면 바로 부처가 되느니라.”(菩提自性 本來淸淨 但用此心 直了成佛)

〈육조단경〉 4구계라고 할 수 있는 말이며 돈오의 종지를 드러낸 말이다. 근세의 중국 정치가 모택동이 〈육조단경〉을 매우 좋아하고 애독했다고 한다. 1989년에 발간된 ‘중국을 움직인 30권의 책’(원명 〈影響中國歷史的三十本書〉)에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명저 30권(실제33권)을 뽑아 내용을 요약, 수록하였는데 불교 서적은 오직 〈육조단경〉만 들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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