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고 강화될수록 합리적이지만
자칫 자기중심적 사고 매몰 위험
명상 통해 에고의식서 해방되면
의식 수준 높아져 세상과 ‘조화’

내 존재의 주인 ‘의식’
최근 신문이나 SNS를 보면 사회에는 남을 칭찬하거나 인정하는 것보다 헐뜯거나 비난하는 일들이 너무 많다. 이런 사회의 소식들을 보노라면 왠지 기운이 뚝 떨어진다. 남을 헐뜯거나 비난하는 사람들은 사회에 불만이 많은 사람들이다. 호킨스(Hawkins, 2012)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기 안에 품고 있는 감정대로 세상을 본다’고 했다. 그는 인간의 의식을 측정할 때 근육의 힘을 테스트하는데, 의식수준 200이하의 부정적인 감정의 자극을 받으면 곧바로 근육의 힘이 빠지고, 200이상의 긍정적인 자극을 받으면 곧바로 근육에 힘이 들어간다고 하였다. 진정한 인간의 힘은 긍정적인 에너지를 갖고 있을 때 생긴다고 본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힘을 알아차릴 수 있는 의식이 깨어있지 않다는 데 있다.

인간의 마음은 의식과 무의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의식은 이 순간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것을 아는 마음이요, 무의식은 내 안에 무엇이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를 모르는 마음이다. 호킨스는 인간의 마음을 금붕어가 들어있는 어항에 비유했다. 어항에 들어있는 물은 의식이고, 금붕어는 생각이나 개념이다. 물은 늘 그대로 머물러 있으며, 금붕어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이 비유에서 보듯이 물이라는 의식은 본질적인 것으로서 금붕어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움직이는 모습을 관찰하고 있을 뿐 그대로이다. 여기서 의식은 형상이 없고 내용이 비었기 때문에 형상이 있고 움직이는 생각을 식별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마음에는 생각하고, 느끼며, 행동하는 마음과 이러한 마음을 바라보고 알아차리는 의식이라는 마음이 있다. 파탄잘리(Patanjali)는 경전 〈요가수트라〉에서 마음을 나무에 앉은 두 마리의 새에 비유하고 있다. 한 마리는 가지에 앉아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다른 가지에 앉은 새는 이를 바라보고 있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새는 행동하는 마음이고 이를 바라보는 새는 의식이라는 마음이다. 여기서 의식은 마음이면서도 다른 마음을 바라보는 본질적인 마음이다.

의식은 생각이나 느낌, 행동이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알아차린다. 그래서 의식이 깨어있을수록 자신의 생각과 욕망과 꿈, 그리고 자기가 지니고 있는 동기와 질투들을 좀 더 선명하게 알아차릴 수 있다. 의식은 나라고 하는 한 존재의 주인이므로 의식이 깨어있으면 생활 속에서 언제나 자신의 마음을 바라볼 수 있다. 친구와 음료를 마시고 싶을 때 ‘커피를 마실까 차를 마실까’로 망설이는 자기 마음을 볼 수 있고, 주말에 아내와 ‘산엘 갈까 고궁을 갈까’하고 망설이는 마음을 바라볼 수 있다. 보다 현실적으로는 눈앞의 상황을 판단 분별할 수 있다. 가령 차를 운전하다가 건널목에서 빨간 신호등이 켜지는 것을 보았을 때, 우리는 개인의 의식에 따라 다음의 세 가지 행동을 취할 수 있다. 가령 A라는 사람은 빨간 신호등을 보는 순간 멈춘다. B라는 사람은 빨간 신호등을 보고 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간다. 그리고 C라는 사람은 빨간 신호등을 보지만 그냥 지나간다. 이 세 사람의 운전의식은 각기 다르다. 빨간 신호등을 보고 멈춰선 A는 평소 가족이나 친구들이 ‘이렇게 하자’라고 약속한 것은 늘 지키는 사람이다. 빨간 신호등은 ‘멈춤’이라는 약속이므로 자연스럽게 멈춘다. 앎과 행동이 일치한다. B는 멈춰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무시하고 지나간다. 가려고 하는 마음이 멈추려고 하는 마음보다 더 강하게 작용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법을 무시하는 마음이 작용하여 범법행위를 하게 된다. 그리고 C는 그 순간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으므로 빨간 신호등이라고 지각했지만 그 빨간 등에 주의가 가지 않고 하던 생각을 따라감으로써 멈추지 못한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의식은 그 순간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보여주는 마음의 변별 능력이다.

필자는 아침 운동으로 가까이 있는 나지막한 오름에 올라간다. 한 번은 오름 아래 좁은 길을 걷고 있는데 길 가운데서 한 사람이 체조를 하고 있었다. 비켜달라고 하기도 미안해서 그냥 도랑을 건너 밭으로 갔다가 다시 길로 들어섰다. 가다가 뒤를 돌아보니 내 뒤에 오는 사람들도 나처럼 그렇게 걸어오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 사람은 여전히 체조를 하고 있었다. 그 순간 ‘저 사람의 의식은 어떤 상태일까?’라는 궁금증이 들었다. 그는 개인적으로 자신을 위해 운동을 하니 문제가 없다. 그러나 그 길이 여러 사람이 다니는 길인데 남을 생각하지 않고 운동을 함으로써 타인에게는 피해를 준다. 그렇다면 그의 의식은 자기에게 한정지어 있는 셈이다. 인간에게는 육안과 심안이 있다. 육안은 눈을 감지 않는 한 사방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심안은 육안너머까지 볼 수 있는 영적 능력이다.

인간의식의 7단계
Ken Wilber(2011)는 인간의 의식을 존재양식에 따라 전개인적(Pre-personal)→개인적(Personal)→초개인적(Trans-personal) 의식으로 나누고 있다. 전개인적인 사람은 아직 한 개인의 존재로서의 자아가 확립되지 않은 허약한 자아상태라고 볼 수 있다. 아직 자기라고 하는 의식이 뚜렷하지 않아서 혼란된 상태를 말한다. 이러한 의식상태는 나이와 관계없이 정신적으로 미숙하여 자기에 닫혀있어서 대인관계가 어려워 상담이나 심리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인 사람은 자아가 발달하면서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자신의 성장을 위해 노력하며, 이때가 가장 자기라고 하는 에고가 강할 때이다. 자칫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삶으로 살아가는 상태로서 보통 사람들의 의식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다가 초개인적인 수준에 이르면 세상은 자기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함께 성장하고 상호 협력하는 것임을 자각하고 서서히 자기로부터 세상으로 의식이 확대되어 간다. 자기에 묶여있지 않고 자아로부터 해방되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좀 더 인간의 의식을 구분해 본다면, Davis (2000)는 인간의 의식을 7단계로 나누었다. 1단계는 ‘반의식 상태(Semiconsciousness)’로서 부분적으로 각성된 흐린 상태다. 정신적, 감정적으로 둔하고, 냉담하며, 권태롭고, 자기만족에 빠져있다. 이 단계에 있는 사람은 물리적 육체를 진정한 존재로 믿기 때문에 생존 지향적이거나 욕망과 기분에 이끌린 행동을 하기 쉽다. 기억, 습관, 습득된 행동들이 그 사람의 정신적 태도, 행위를 결정한다. 2단계는 ‘역기능적 자의식(Dysfunctional Self-Consciousness)’으로 정신적 혼란과 심적 갈등상태이다. 자기중심적이고, 망상과 환상이 의식을 흐리게 한다. 자신의 불행에 대해 다른 사람이나 환경을 비난하고, 무책임하다. 잠재의식적 조건들이 강하게 영향을 미친다. 이 단계의 사람들은 주로 습관에 의한 행동을 한다. 1, 2단계 의식을 가지 사람들은 의식이 깨어있지 않은 상태이므로 잠재의식에 의해 자신의 행동이 영향을 받는다. 3단계 ‘기능적 자의식(Functional Self-Consciousness)’에서는 보통 건강한 마음을 지니고 있으나 여전히 에고 지향적인 의식 상태이다.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능숙하게 행위를 수행할 수 있다. 자신의 본성에 대한 지성적인 이해보다 개인의 목표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개인의 업적 때문에 자신이 특별하다는 잘못된 관념을 포기하지 않는다. 우리 보통 사람들은 대체로 이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3단계의 수준을 넘어 4단계인 ‘초의식(Superconsciousness)’에서는 순수한 초의식 상태와 초월적 실상에 대한 인식이 경험될 수 있다. 에고는 감소되고 정화되어 지성의 힘이 향상된다. 일상의 활동과 관계는 조화를 이루며 사랑, 희망, 믿음 그리고 의무에 대한 헌신이 중요하게 여겨진다. 이후 5단계의 ‘우주의식(Cosmic Consciousness)’과 6단계의 ‘신의식(God-Consciousness)’, 7단계의 ‘지고의식의 깨달음(Illumination of Consciousness)’에서는 다루기 힘든 잠재의식적 조건들이 깨달음의 영향으로 약해지면서 명상을 하고 있지 않을 때도 깨달음은 사라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적절한 행위를 취한다. 망상이나 환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의식은 세상 비추는 거울
위의 의식수준에서 보았듯이 인간의 삶은 3단계까지는 자기중심으로 살아가지만 자기를 넘어 세상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4단계로 확대되어야 가능하다. 의식이 자기에게 한정되어 있는 한 이 세상은 끊임없이 비난과 경쟁으로 달려갈 수밖에 없다. 의식은 확대될수록 건전한 생활양식을 영위하고, 깨달음에 대한 열망이 확고하다. 그러므로 명상을 수행하는 사람은 초의식 상태를 경험함으로 영적 성장의 단계로 발달하게 된다. 반면에 무질서한 생활, 자신의 영적 성장능력에 대한 의심, 그리고 인내심의 부족은 영적인 성장을 방해한다. 명상은 인간을 고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세상과 조화롭게 지내는 힘을 길러 준다. 명상을 통해 영성이 깃든 사람은 남들을 편안하고 품위 있게 대한다. 명상은 높은 의식 상태를 끌어내고, 그것을 실생활에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자기를 초월해서 세상의 존재들과 함께 하도록 이끈다.

나의 의식이 어떠하냐에 따라 세상은 다르게 다가온다. 의식이 열려 있고, 자비롭고, 창의적이라면 세상은 유익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러나 의식이 탐욕, 화, 이기심에 사로잡혀 있다면 세상은 그런 에너지를 반영할 것이다. 의식은 나를 이끌어 가는 주인이므로 나의 의식이 확대될수록 남을 탓하거나 비난하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어 비로소 세상은 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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