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분별과 마음

6조 혜능 선사가 남악회양 선사에게 말했습니다. 인도의 반야다라 존자가 예언하기를, “네 발 아래에서 말 한 마리가 나와서는 천하 사람들을 발길질로 차 죽이리라”고 하였는데, 이 역시 마조 선사가 천하 사람들의 분별망념을 없애 버리고 깨달음으로 이끈다는 것입니다.

마조 선사가 상당(上堂)하여 말했습니다.

“대중들이여, 각자 자신의 마음이 부처이며, 이 마음 그대로가 바로 부처라는 사실을 확신하라. 남천축국에서 온 달마 대사는 이 땅에 상승(上乘)의 일심법(一心法) 만을 전해 주었다. 이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또한 <능가경>을 인용하여 중생의 마음을 밝혀 놓은 것은, 사람들이 이 일심법을 믿지 않을까 염려해서이다. 경은 부처님이 말씀하신 마음을 근본으로 한다. 부처가 말한 마음을 근본으로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부처가 말한 마음 그 자체가 바로 부처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은 즉, 이 마음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가 말한 마음을 근본으로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자네가 혹시 마음을 알고 싶다고 말한다면, 지금 바로 그와 같이 말하고 있는 것이 바로 자네의 마음이다. 이 마음을 바로 부처라고 일컫는 것이며, 또한 실상법신불(實相法身佛)이며, 도라고도 일컫는 것이다. 자네의 심성 그것은 본래부터 부처였으므로, 그 외에 달리 부처를 구하지 말라! 자네 자신이 이미 금강정(金剛定)에 있으니, 일부러 마음을 모아 선정에 들어갈 필요도 없다. 설령 마음을 모으는 일에 능숙하다 하더라도 그것이 곧 구극(究極)의 길은 아닌 것이다.”

마조 선사가 다시 말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일체의 대상(對象)은 모두 마음이 드러나 보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눈으로 대상을 볼 때 그것은 모두 마음을 보고 있는 것이다. 마음은 그 자체만으로는 마음일 수 없으며 아무런 의미도 없다. 대상과 더불어 비로소그 의미를 갖게 되며, 대상과 관계 맺을 때에만 마음일 수 있다. 대상 또한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런 의미도 없고 대상일 수 없으며, 마음과 더불어 그 의미를 갖게 되며, 마음과 관계 맺을 때에만 대상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에도 대상을 보는 것은 곧 마음을 보는 것이다.”

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 무엇 하나라도 스스로 있지 못하고 다만 대상에 의해서 존재하기 때문에 실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손가락은 스스로 자신을 만질 수가 없어서 대상을 만지며, 칼은 스스로 자신을 자를 수 없어서 대상을 자르며, 눈은 스스로 자신을 볼 수 없어서 대상을 보며, 귀는 스스로 자신을 들을 수 없어서 대상인 소리를 듣습니다. 눈이 대상인 책을 볼 때 눈이 없으면 책이 없고, 책이 없으면 눈 또한 없습니다. 그러므로 책은 눈으로 인해 있고, 책은 눈으로 인하여 있습니다. 눈은 스스로 있지 못하고 책으로 인하여 있으므로 있는 것이 아니고, 책 또한 스스로 있지 못하고 눈으로 인하여 있으므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책은 눈으로 인하여 없기 때문에 눈은 없는 것도 아니고 책 또한 없는 것도 아닙니다.

우주의 일체 존재가 이와 같이 있음과 없음에 속하지 않고 있음과 없음을 떠나 있지만, 우리들은 있음과 없음에 집착하여 때로는 있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 싫어하기도 하며, 때로는 없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 싫어하기도 하면서 갖가지 분별을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우주의 티끌 수와 같은 분별의 이분법(二分法)은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니고, 다만 우리들의 허망한 생각 속에 존재 할 뿐입니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