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특집] 신행과 봉사로 나이 잊은 ‘옹심이 보살들’

바쁜 점심시간이 지나가자 옹심이를 만드는 보살님들의 손이 바빠졌다. 넓은 스테인리스 접시는 하얀 옹심이로 금방 가득찼다. 작지만 탱글탱글한 옹심이처럼 봉사의 삶을 사는 이들의 모습은 아직 청춘인 것 같았다.

[현대불교=노덕현 기자] 누구나 젊었던 적은 있어도 늙은 적은 없다. 다가올 미래의 삶 속에서 지금 이 순간은 가장 젊은 순간이다. 이런 젊음을 삶 속에서 밝게 빛내는 사람들이 있다. 봉사로써 젊은이들보다 더 활기찬 삶을 사는 이들이다. 설 명절을 앞두고 지난 20일 서울 조계사 공양간 ‘승소’에서 봉사로 또 다른 젊음을 느끼게 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매주 목요일과 금요일 조계사 식당에서 봉사하는 이들의 모습에서는 젊은 사람들이 뿜어내는 에너지와 정열이 감지됐다. 기도와 신행, 그리고 봉사로 하나가 된 그들은 열정 넘치는 젊은이들이었다.
 
 
다양한 신행활동, 옹심이로 한마음
서울 종로구 견지동에 위치한 조계사 주변에는 작은 골목길이 많다. 새들이 지저귀는 골목길 중간에는 조계사가 2011년 옛 모텔을 인수해 개조한 관음전 건물이 있다. 이 건물 1층이 바로 조계사 대중공양간 ‘승소’다.

목요일과 금요일 오후 이 승소의 문을 열면 입구에서 찹쌀로 ‘옹심이’를 만드는 광경이 펼쳐진다. 예닐곱 명의 어르신들이 오순도순 앉아 함께 옹심이를 만드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옛 시골마을의 풍경이 떠오르곤 한다. 승소에서는 이 옹심이를 활용해 미역국과 떡국 등을 만들어 보시한다.

 

작은 재능도 기부하는 삶

조계사서 목·금 이틀 봉사
2011년 ‘승소’ 만들어 지며
음식 만드는 봉사 시작해
찹쌀로 옹심이 만들어 보시

 

승소는 조계사 신도들을 위한 휴식공간 개념으로 만들어진 곳으로 신도 등록 후 편하게 찾을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승소를 찾는 인원은 하루에 100여 명이 넘는다. 그만큼 사용되는 옹심이 양도 어마어마하다. 1주일에 사용되는 옹심이가 40kg이 넘는 상황. 찹쌀가루를 반죽하고, 몇 시간씩 한자리에 앉아 옹심이를 만드는 일은 여간 고역이 아니다. 허리가 아프고 어깨가 뭉칠련만 옹심이를 만드는 어르신들의 표정은 행복 그 자체다.

조계사 공양간 ‘승소’에서 신도들이 식사하고 있다.

“5년 전 주지 스님이 승소 공양간에 옹심이를 빚는 봉사자들이 필요하다고 하셨는데, 당시에 지원자가 별로 없었어요. 4시간 이상 한자리에 앉아서 같은 일을 반복하다보니 젊은 봉사자들은 며칠 하다가 다른 봉사 쪽으로 갔지요. 결국 모임 형성이 안 됐습니다. 그러던 중 조계사 실버합창단인 회화나무합창단원에서 지원자를 받아 이렇게 함께 봉사를 하게 됐습니다. 어쩌다 보니 연령대가 70대를 훌쩍 넘네요. 호호호”

가장 연세가 많아 일명 ‘회장님’으로 불리는 보림화 정순녀 씨(81세)는 지난날을 회상하듯이 잠시 생각에 잠겨있다가 이렇게 말했다.

정 보살은 “나이가 들다보니 특별히 활발한 봉사보다는 작은 힘이나마 기여할 수 있는 봉사를 찾는 것 같다”며 웃었다.

조계사 공양간에서 봉사하는 옹심이 보살들이지만 이들이 조계사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조계사 뿐만 아니라 능인선원 등이나 서울 각지의 사찰에서 교리공부를 한다. 하지만 목요일과 금요일에는 다시 옹심이 봉사로 조계사에서 뭉친다.

 

불교 공부보다 중요한 실천

수 십년 경전 읽고 기도해도
삶 의미 자비실천서 찾아
음성공양·설겆이 등 진행
봉사자 건강은 부처님 가피
 

옹심이 보살들이 활동하는 회화나무합창단.

화요일이면 조계사 회화나무 합창단에서 모여 합창 연습도 하고 일요법회에서 음성공양도 올린다. 합창단 소속으로 조계사 나눔실천 현장에도 동참한다.

3년 전 이들 모임에 참여한 도행 이선옥 씨(77세)는 이들 봉사자들 대부분이 신행공부를 해온 분들이라 서로 마음이 맞는다고 말했다.

“제 경우는 회화나무합창단 출신이 아니에요. 여러 군데에서 봉사활동을 하다 조계사에서 봉사교육을 받게 됐고, 이후 조계사에서 봉사활동을 하게 됐습니다. 승소에 옹심이 봉사가 있다고 하여 참여하게 됐는데 신행활동을 꾸준히 해오신 분들이라 서로 편안하네요. 배려와 이해해주는 것이 너무 좋습니다. 봉사가 따로 있나요? 서로 마음씀씀이 자체가 봉사지요.”

취재 중에도 자식 걱정부터 손주 얘기, 시시콜콜한 고민까지 대화는 이어진다. 가만히 보면 가족같다. 옆에 있던 감로성 김정숙 씨(72세)가 거든다.

“저는 막내입니다. 다들 나이가 많으시지만 마음만큼은 젊으세요. 아니 저희는 젊은 것 같습니다. 호호호”
이들이 처음부터 옹심이를 만든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대량으로 만드는 공양간에서 다들 주부9단 출신이지만 찹쌀가루와 소금 등의 비율을 맞추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감로성 김정숙 씨는 “수요일과 목요일, 금요일 3일씩 했는데 처음 와서 드신 분들이 풀죽이 아니냐고 항의하시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 씨는 “모두들 기계로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대부분이 직접 만들고 있다. 자원봉사자들이 손으로 만든 음식을 조계사를 찾는 이들이 맛있게 먹고 갔으면 한다”며 “최근에는 절이 문화공간으로 변하고 있다. 인근 회사원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조계사와 인연을 맺을 수 있는데 기여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대화를 나누는 순간에도 이들의 손은 바삐 움직였다. 인생을 고스란히 담은 손 사이에 새알 옹심이들이 만들어졌다. 새하얀 찹쌀가루가 묻은 그 손은 어느 손보다 고왔다.

 

옹심이 찹쌀가루가 저절로 손의 주름을 감춘다. 옹심이를 빚으며 근심을 내려 놓은 이들의 마음은 청춘이다.

 

수행과 봉사 하나된 삶

해인사 수련회 설겆이,
조계사 합창단 음성공양 등
사찰 봉사, 수행으로 여겨

“젊은 사람 짐될까봐…
비슷한 나이대 봉사 많았으면”

 

궂은 일 마다 않는 부루나 존자
이들 대부분은 옹심이를 만드는 봉사 외에도 다양한 곳에서 나눔 실천에 앞장서고 있었다.

특히 전법신 유영주 씨(78세)는 고령의 나이에도 조계사 만발식당 설거지 등 궂은 일을 마다 않는 이였다. 유 씨는 가톨릭 신자였던 자신이 불교로 개종하게 된 계기와 노력봉사의 중요성을 털어놨다.

“원래 건강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등산을 했죠.”

유 씨는 차분히 말을 이어갔다.

“불교를 접한 것은 1980년에 전남 광양 상백운암에 갔을 때였습니다. 상백운암은 워낙 높은 지대라 오는 불자들도 없어 쌀도 없는 형편의 암자입니다. 그때만해도 불교에 대해 관심이 없을 때인데, 암자에서 만난 스님이 오히려 ‘산 속에 있으면서, 기도만 한다고 도를 닦는 것이 아니다’고 하시는 겁니다. ‘삶 속에서 실천하는 것이 정도’라는 스님의 말을 듣고 깊은 감명을 받고 불교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죠.”

유 씨는 이후 해인사와 금산사 등 전국사찰을 다니며 봉사활동을 펼쳤다. 보통 불자들이 법회 참여와 기도에 매진하기 마련이지만 사찰의 봉사현장을 다니는 것이 수행이란 생각에 봉사에 전념했다. 2000년부터 13년간 지하철 역사를 다니며 지하철 문화포교단체인 ‘풍경소리’ 회원으로 포스터 관리도 했다.

“현재는 못하고 있지만 지하철 역사 6곳을 관리했어요. 포스터를 바꾸고 나면 사람들이 와서 부처님 말씀 보는게 그렇게 좋았습니다. 떼어낸 포스터는 좋은 말씀이라 버리기에 아까워 자비로 지방에서 필요로 하는 사찰이나 서예 하는 곳에 보냈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불교의 좋은 가르침을 조금이라도 접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은 굴뚝같습니다.”

하지만 유 씨는 불교계 봉사활동도 어려움이 있다고 털어놨다. 바로 젊은 사람들에게 짐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해인사 등 여름 수련회 철이 되면 봉사자로 방사 청소나 설거지 등을 했습니다. 10년 넘게 해오다 나이가 들다보니 물리적인 면에서 젊은 사람들에게 쳐지는 것 같아 서글펐어요. 그 마음을 떨쳐 버리고 작은 힘이나마 도와야 하는데 마음이 그렇지 않네요. 괜히 짐만 되는 것 같기도 하구요. 그래서 이렇게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함께 활동하는 자리가 불교계에서 많이 만들어졌으면 합니다.”


저마다 各樣各性, 나눔실천은 하나


삶의 의미 봉사서 찾아
이들은 각자 매일 〈금강경〉과 〈화엄경〉 독경 등을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기도도 열심히 한다.

이들 중 감로성 김정숙 씨(72세)는 일주일의 대부분을 법당에서 보내고 있어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1988년부터 여의도 포교원에서 불교공부를 시작한 그녀는 주말과 월요일이면 능인선원을, 화요일에는 조계사 합창단을, 수요일에는 BBS불교방송 다보법회를, 목요일과 금요일에는 승소 등 조계사에서 봉사를 하고 있었다. 김 씨는 삶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원래 해오던 신행활동에 4년 전부터 봉사활동을 해보니, 무의미하게 집에서 허송세월 하는 것 보다는 밖에 나와 사람을 만나서 공유하는 것이 참 좋더군요. 우리 나이 대에는 집에 남아서 ‘시간 죽이기’가 많아요. 기도 정진을 하더라도 스스로나 가족을 위한 것이 많지요. 이제 봉사로서 모두가 의미 있는 일을 했으면 합니다. 아직 우리 주변에는 많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거든요.”

전법신 유영주 씨는 여기에 불자들에게 꼭 보여줬으면 한다며 지난해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자신이 지은 시를 전해줬다. 이 시에는 앞서 김 씨가 말한 삶의 의미가 녹아 있었다. 유 씨는 “작은 힘이라도 모이면 큰 산도 옮길 수 있다”며 “불법 홍포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옹심이 마음

치대는 옹심이 반죽
손바닥 비비고 돌려
일매지게 똑똑 떼어내
주먹으로 꼭꼭 주물주물

쟁반 위에 가로세로
나란히 줄지어 놓으면
빛깔도 하얗게, 뽀얗게
동글동글 예뻐라

우리는 예쁜 마음
옹심이 봉사자
동서남북 각양각성
마음은 일체동심

오늘의 봉사
서원 실은 성심이니
부처님 자비광명
가슴 속 우담바라로 피네

- 전법신 유영주

 

외교관인 남편을 따라 외국서 생활하다 귀국 후 1978년부터 40년간 조계사서 신행활동을 한 보림화 정순녀 씨는 “처음에는 불교가 합장하고 절 세 번만 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배울수록 실천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정 씨는 “절에서 봉사하는 분들은 활동력이 있고 하니 잔병치레를 확실히 덜하는 편”이라며 “부처님 도량서 활동하는 것에서 활력이 생긴다. 병원생활 없이 도반들이 반듯하게 늙는 것에서 보람을 찾는다”고 말했다.

“젊은 사람들에게 불교 책을 주면서 ‘한 달에 한 번이라도 부처님 말씀을 듣고 오면 남편에게 잘 할 수 있고, 가정 평화를 줄 수 있고, 말도 함부로 하지 않게 하게 된다’고 합니다. 불교를 공부하고 실천하면 살면서 가슴에서 올라오는 불을 끌 수 있어요.”

그래서 일까. 이들의 얼굴은 평온해 보였다. 이들의 남은 목표는 하나. 바로 건강하게 함께 봉사하며 사는 삶을 이어가는 것이었다.

“힘이 있을 때까지 함께 작은 힘이나마 보태렵니다. 이제는 남편도 여의고 자식들도 대부분 출가했지요. 그저 건강하게 일주일에 두 번씩 함께 모여 수다도 떨고, 옹심이도 만들고, 함께 행복하게 봉사하며 살았으면 합니다.”

“모두가 와서 잘 잡숫고 가는 것을 보며 보람을 느낀다”는 승소 옹심이 보살들은 기자에게 한그릇 먹고 가라고 권한다.

슬그머니 옆에 앉아 옹심이 미역국 한 그릇을 시켰다. 밥과 김치가 나오고, 잠시 뒤 또 다른 봉사하는 보살이 하얀 그릇을 환한 미소와 함께 놓고 간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미역국 속에 작은 옹심이가 마치 아기부처님처럼 살포시 웃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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