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식의 강’을 건너 아버지에게로…
‘업식의 강’을 건너 아버지에게로…
  • 강소연 중앙승가대 교수
  • 승인 2017.01.20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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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화 속 스토리텔링- 안락국태자 이야기 中

짚단을 타고 ‘생사의 강’을 건너는 안락국의 모습. 이 강을 건널 수 있게 한 것은 어머니 원앙이 지어 준 ‘왕생게’ 때문이다.
원앙부인은 만삭의 몸을 이끌고 새벽부터 밤까지 쉴 새 없이 일했습니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모진 학대를 당하는 속에서도, 왕생게를 외우는 염불의 힘으로 스스로를 유지하여, 무사히 아들을 낳게 됩니다. 아이의 모습은 어쩜 이렇게도 단정하고 예쁠까요. 아이를 본 자현장자는 “이 아이는 7·8살만 되어도 내 집에 종으로 있을 관상이 아니다”라고 중얼거립니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가 사리분별력이 생기자 다부지게 묻습니다. “다른 애들은 모두 아버지가 있는데 왜 나는 없습니까?” 자초지종을 다 들은 아들 안락국은 “나를 이제 놓아 주소서. 아버지를 찾아 가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장자 집서 일하던 만삭의 원앙부인
학대에도 염불의 힘으로 아들 출산
영민한 안락국, 부친 찾기위해 도주

무사히 빠져나와보니 江 앞을 막아
짚단 위에 올라 ‘왕생게’를 외우니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에 강 건넌다

도달한 범마라국, 아버진 어찌 찾나
여덟 궁녀의 ‘왕생게’ 실마리돼 상봉
못 깨우친 아비, 아들을 돌려보내는데

“네가 이 집에서 도망가면 내 몸이 자현장자의 큰 노여움을 사리라.” 그러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아들을 보고, 그 가여운 뜻을 이기지 못해, 밤에 도주하도록 돕게 됩니다. 하지만, 곧 들켜 두 손이 꽁꽁 묵인 채 잡혀오게 됩니다. 이에 장자는 분노하여, 안락국을 골방에 가두고 얼굴에 자자(刺字: 한 웅큼의 바늘로 피부를 찌른 다음 숫돌물을 집어넣어 지워지지 않는 문신을 새겨 중죄인을 표시하는 형벌)를 가합니다. 아들의 곱디고운 얼굴이 이렇게 되자, 원앙부인은 가슴이 무너지고 창자가 찢어졌습니다. 안락국도 엄마를 붙들고 울었습니다.       

아버지가 있는 임정사를 찾아가는 도중, 팔궁녀를 만나는 장면. 소탈한 아낙의 모습이다.
두 번째 도주, 앞을 가로 막는 강
한 번도 보지 못한 아버지에게로 향한 아들의 애달픈 마음은 쉽게 꺾이지 않습니다. 틈을 보아 다시 도주하여 이번에는 무사히 죽림국을 빠져 나오지만, 아~ 이번에는 깊고도 넓은 강이 앞을 가로 막습니다. 건너갈 배가 없어 짚단 세 묶음을 띠로 묶어 물에 띄우고, 그 위에 훌쩍 올라탑니다. 젖으면 바로 가라앉을 힘없는 지푸라기 방석에 자신의 운명을 맡깁니다.

짚단 위에 올라 앉아 천지신명께 빌며, “제가 진실로 진실로 아버지를 뵙고자 하니, 바람아 불어라. 저를 강가로 건너게 해 주소서”하고 합장하고 어머님께 배운 ‘왕생게’를 간절히 외우니 갑자기 바람이 일어나 물가로 건너 주니, 바로 아버지가 계신 범마라국 땅이라. 임정사는 또 어찌 찾아갈까. 바람결 따라 염불소리가 들립니다. 그 소리를 따라 앞으로 나아갑니다.

동풍이 불면 그 소리가 원생극락(願生極樂) 나무아미타불
남풍이 불면 그 소리가 섭화중생(攝化衆生) 나무아미타불
서풍이 불면 그 소리가 도진중생(度盡衆生) 나무아미타불
북풍이 불면 그 소리가 수의왕생(隨意往生) 나무아미타불

기적의 바람 일다, 마법의 주문 ‘왕생게’
이야기 속에는 위험한 고비마다 ‘왕생게’가 그 역할을 단단히 합니다. 홀로 가는 기나긴 수행 길에 추위와 배고픔을 이기라고, 원앙부인이 남편 사라수왕에게 지어 준 게송입니다. 원앙부인의 애틋한 염원은 온 가족을 수호하는 마법의 주문이 됩니다.

왕생게는 사라수왕이 계속 수행을 하게하는 버팀목이 되고, 아들 안락국이 강에 빠질 위기에 처하자 기적적으로 바람을 일으키는 주문이 되고, 또 그를 아버지에게로 인도하는 나침반이 됩니다. 안락국은 아버지를 찾아 가는 여정 중에, 여덟 궁녀가 (사라수왕에게 배운) 왕생게를 읊는 것을 듣게 되고, 궁녀들에게 ‘왕생게를 어떻게 아느냐’는 연유를 물은 끝에 아버지를 만나게 됩니다.

아버지를 만나 두 다리를 끌어안고 엉엉 우니, 아버지가 “이 아기가 어떤 아기이기에 늙은이의 다리를 안고 이토록 우느냐?”고 묻습니다. 이에 안락국이 왕생게를 외운즉, 왕이 그제야 아들인줄 알고 길가에 주저앉아 옷이 잠기게 울었습니다. “네 어머니 나를 잃고 시름으로 살더니, 이제 또 너를 잃고 눈물로 살 것이니 어서 돌아가라!”

안락국이 꿈에도 그리던 아버지를 만나 상봉하는 모습. 아버지 품에 안겨 하염없이 운다.
아버지와 아들은 슬픈 뜻을 이기지 못하여 오래 있다가, 결국 헤어집니다. 이에 왕은 “알고 가는 이도 끊어진 이런 혼미한 길에 누구를 보려고 울며 왔느냐. 대자비 원앙부인과는 공덕 닦는 내 몸이 정각(正覺)하는 날 만나보리라”고 노래합니다.          

어머니의 안위가 걱정된 태자는 다시 강가에 와서 짚단 방석을 타고 왕생게를 불러 바람을 일으켜 죽림국으로 돌아옵니다. 뭍에 올라오는 도중에 소치는 아이의 노랫소리가 들려옵니다. “안락국이는 아비를 보았으나, 이번에는 어미를 못 보아 시름이 더욱 깊겠구나.” 이에 안락국은 “무슨 그런 노래를 부르더냐”하고 깜짝 놀랍니다. 이제 어머니를 못 보게 되었다니요? 청천벽력 같은 소리입니다.  〈다음호에 계속〉   

알아두면 좋은 人文교양 상식

#안락국이 만난 ‘강’의 의미는?
아버지를 향해 달리던 안락국 앞을 가로 막은 마지막 관문은 검푸른 ‘강물’이었습니다. 이는 속세(이 세상)와 피안(저 세상) 사이에 흐르는 강입니다. 바리데기 공주, 황주신 성우양 등 우리에게 익숙한 전통 설화에서도 주인공의 우여곡절 천신만곡의 여정 막바지에 맞닥뜨리는 것은, 바로 ‘이승과 저승’ 또는 ‘이승과 천상’ 사이를 가로막는 ‘강’입니다. 이 강은 속계를 벗어나는 경계의 비유로서, 한갓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불가항력적인 그 무엇입니다.

여기서 주인공은 포기하고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목숨마저 던지며 나아갈 것인가, 일생일대의 기로에 놓이게 됩니다. 강이 아니고 바다가 등장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장경〉에는 바라문의 딸이 지옥에 떨어진 어머니를 만나러 갈 때 불타는 바다를 건너게 됩니다. 〈심청전〉의 경우에는, 심청이가 바다의 심연 속으로 몸을 던지니 용궁이라는 극락세계를 체험하게 됩니다. 강이든 바다이든, 소용돌이의 폭류가 죽음과 삶을 동시에 품는 하나의 상징으로 나타납니다.

#차안·피안 가로지르는 ‘업식의 강’
‘생사(生死)의 메타포’로서 나타나는 강물은 우리가 만들어 놓은 업(業)의 소용돌이입니다. 업의 강물, 업의 바다인 것입니다.

우리나라 전통 설화의 내용을 보면, 주인공은 항상 사회적 최고의 약자입니다. 어릴 때 혼자가 되거나, 졸지에 부모를 잃었거나, 홀어머니 또는 홀아비의 자식이거나, 사회적 신분이 미천하거나 또는 매우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을 위해 마음을 내는 착한 천성을 가졌습니다. 타인을 구하기 위해 나선 험한 여정 속에는 먼저 자신의 업장을 소멸하는 수난과 시련들이 있습니다. 강물 앞에는 수십 채의 검은 빨래가 쌓여 있기도 합니다.

주인공은 산더미 같은 검은 빨래를 모두 흰 빨래로 빨아 놓아야만 강을 건널 수 있습니다. 산더미 같은 빨래는 세세생생 쌓은 번뇌업장을 상징하며, 이를 모두 깨끗하고 하얗게 맑혀 놓아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업식(業識)과 정면 대결했을 때만 업의 윤회를 끊을 수 있습니다. 선가(禪家)에서는 ‘백천간두에서 몸을 날려야 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강이 나타났을 때, 강물에 휩쓸리지 않는 길은 단 하나! 그것을 직시하는 것입니다. 불가항력으로 보이던 업식의 바다도 ‘반야지혜’의 불을 밝히면 한 갓 환영에 불과합니다. 강물에 몸을 던졌을 때 죽는 것은 에고로서의 ‘자아’입니다. 계속 철견해 나가다 보면 드넓은 광활한 자유의 바탕이 드러납니다.

〈금강경〉에서는 “구경무아(究竟無我: 마침내 나는 없다)”를 말합니다. 마침내 내가 없어지자, 진정한 활짝 열린 마음의 세계, 부처님의 세계가 나타납니다. 이러한 순간에도 ‘자비’는 항상 우리를 지켜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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