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지가 고갈되거나 오염되면 아무리 수도꼭지가 많아도 맑은 물을 먹을 수 없다.” 인문학을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입장에 선 사람들이 즐겨 하는 말이다. 바로 실용적인 편의를 주는 학문이 수도꼭지에 해당한다면 인문학은 수원지에 해당한다. 중간에 배관시설에 해당하는 학문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실용적인 편의와 가장 거리가 먼 것이 바로 인문학이요, 그렇기에 자칫하면 소홀히 하기 쉬운 것이 인문학이다.

인문학은 운동장, 여러 학문은 선수
운동장 망가지면 선수는 뛸 수 없다
선수처럼 운동장에게 뛰라해도 안돼

인문학 필요성·활성화 요구하면서도
정작 대학 정책은 인문학 축소 일로

‘인문진흥법’따른 교육부 계획 발표
법률 기반한 정책에 기대·우려 半半
“제 값해라”식 진흥책은 이제 사양


다른 시각에서 말한다면 여러 학문들이 운동장에서 뛰는 선수라면, 인문학은 운동장에 해당한다. 얼핏 눈에 들어오지 않지만, 그 운동장이 없거나 망가지면 아무리 선수가 많아도 뛸 수가 없다. 그런데 운동장에게 선수처럼 나와 뛰라고 요구하거나, 그렇게 못한다고 천시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수원지가 수도꼭지와 가까워서 좋은 것은 없다. 운동장이 선수처럼 뛰려고 한다는 것은 애초에 안될 말이다. 그렇게 실제적인 편의와 거리가 멀고 눈에 띄는 활동을 보기 힘들기에 우리 사회가 인문학에 대해 올바른 인식을 가지고 올바르게 육성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요즘 세태의 흐름을 보면서 인문학도로서 인문학의 위상에 대해 좀 상반된 느낌을 갖게 된다. 한편으로는 여기저기서 인문학의 필요성을 외치고, 인문학을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이야기가 들리지만, 정작 대학 정책 등을 보면 갈수록 인문학의 입지를 축소시키지 않는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지난해 8월 ‘인문학 및 인문정신문화 진흥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이제는 법률적인 바탕 위에서 인문학이 꽃피는 날이 오는구나”하는 생각하면서 큰 기대를 갖게 되었다. 그러던 것이 이번에 교육부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구체적인 시행계획이 나왔다. 기초 인문학 활성계획과 생활 속에 인문정신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한 기본 방침이 나왔다는 점에서, 법률을 바탕으로 한 걸음 크게 내딛었다는 평가를 할 수 있겠다.

그렇지만 그 내용을 보면 여전히 원론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고, “강화한다”, “추진한다”, “계획이다”와 같은 표현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이 계획 또한 구체화를 거쳐야 하는 사전 단계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결국 이 발표에서 말한대로 이번 3월까지 수립하겠다는 2017년 시행계획이 나와 봐야 그 실효성을 검증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번 발표의 전체적인 내용은 2006년 경에 활발하게 전개되었던 인문학 부흥 운동과, 그 뒤 교육부와 한국학술진흥재단을 통해 시행된 ‘인문한국(HK)’사업의 맥을 그대로 잇고 있어 긍정적인 평가를 할 수 있다. 또 앞에서 이룬 바탕이 있기에 이 계획이 제대로 시행되면 상당한 성과를 거둘 것이라는 기대도 갖게 된다.

그런 기대 속에 한편으로 경계를 하고 싶은 것이 있다. 인문학의 본질을 망각하고, 인문학이 우리 대중의 구미에 딱 맞는 쓸모를 가지고 나와주기를 바라는 그런 계획이라면 사절하고 싶다. 말없이 기본을 놓는 진득함을 가지고 시행되어야 한다. 마치 “망할 것을 살려 주는 것이니, 얼른 제 값을 해 봐라”하면서 인문학을 몰아간다면 이는 오히려 인문학을 정말 망하게 하는 짓이다.

인문학을 바탕으로 한 문화가 당연히 사회의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믿음, 인문학적 소양이 개인의 삶에 풍요로운 근원이 된다는 사실, 이것을 우리 삶의 바탕에 깔아가는 그러한 사업이 되었으면 한다. 그러하기에 모든 교육과정에 인문학의 비율을 늘린다는 것은 가장 반가운 소식이기도 하다. 그것이 억지춘향식의 늘림이 되지 않고, 인문학의 소중함에 대한 인식이 제고되는 바탕 위에 자연스럽게 시행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잘 살아보세”를 넘어 ‘인문 문화의 시대’로 나가는 역사의 흐름을 지금 여기서 일구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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