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어느 날의 일기

“티베트의 망캉 터미널은 버스와 트럭이 함께 사용하는데 정기노선버스는 일주일에 세 번이고 트럭은 목재며 시멘트 등을 싣고 줄곧 드나듭니다. 이틀 째 온수는커녕 찬물도 나오지 않는 터미널 2층의 낡은 게스트하우스에서 썰렁하게 몸살을 앓은 후 터미널 인근의 국수와 찐빵을 파는 가게의 늙은 아줌마와 타협이 어렵게 이루어져 코리안 누들(신라면) 5개 값을 선 지불 후 아궁이에 불을 지펴 한 솥의 뜨신 물로 가려진 곳을 찾아 늙은 아줌마가 곁눈질을 하든 말든 홀라당 벗고 땀 지린, 곰팡이로 찌든 몸뚱이를 번개처럼 빠르게 씻었습니다.

적은 물이었지만 그래도 신체의 중요 부분은 깔끔, 말끔은 아니더라도 치약을 비누삼아 씻었습니다. 대충 빠른 목욕을 끝낸 후 국수집 햇살이 드는 창가에 앉아 날아갈듯 가뿐하게 졸고 있는데 예쁘고 키 큰, 그러나 형색이 말이 아닌 아가씨가 빼꼼히 얼굴만 들이민 채 ‘워 야오 취 망캉(나는 망캉에 가야합니다)’을 제법 큰소리로 슬픔에 젖은 지친 목소리로 외치고 있었습니다. 허름하고 낡은 옷에 신발은 운동화가 아닌 슬리퍼, 어느 몹쓸 사내의 몹쓸 인연이 툭 튀어 나온 아가씨의 배 안에서 슬프디 슬프게 힘에 겨워 보입니다.

곱빼기 국수 한 그릇에 찐빵 한 접시를 내밀자 그녀는 앉지도 않고 서있는 자세로 몇 초 사이에 국수 한 그릇을 국물까지 말끔히 들이켰습니다. 먹지 않은 찐빵을 비닐봉지에 담아 돈 몇 푼과 배낭속의 겨울용 파카를 그녀에게 입혀주자 그녀는 고맙다는 눈인사도 없이 빵 봉지를 팽개치고 입혀준 파카도 벗어 던지며 눈발이 듬성듬성 날리는 거리로 사라지고 맙니다. ‘워 야오 취 망캉’을 외치면서….

망캉에 와서 망캉을 찾는 처절할 만큼 가엾은 배부른 아가씨는 진리 속에서 진리를 찾는 항시 배고픈 나의 또 다른 모습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콧등이 찡하게 가슴이 먹먹하게 아팠습니다.”

티베트에서 머문 3년 동안 보고 듣고 경험한 일들이 숱하게 널려있다. 몇 권의 책으로 써 내려가도 부족할 만큼 티베트는 별천지였고 새로운 환경의 고산증을 달고 다니는 고통과 아픔의 고행(苦行)이었다.

가난한 불교나라, 오체투지의 신앙이 생활화 된 나라, 옴 마니 반메 훔이 생활염불이 되어 고마워하고 미안해하며 감사할 줄 아는 나라, 남자나 여자나 키 크고 건장한, 행복을 키우며 중국으로부터 독립을 꿈꾸는 나라, 진솔함이 무엇인지 해맑은 미소로 정을 나누는 그들의 모습이 그립다. 일상생활이 그립다.

티베트의 3대 도시인 라싸와 시가채, 창뚜에는 그럴듯한 호텔이 버젓하게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그 외의 지역에는 뜨거운 물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전기불도 수줍어 가물거리는 게스트하우스가 숨죽이며 띄엄띄엄 박혀 있을 뿐이다. 배부른 아가씨를 만난 망캉 역시 숙소의 화장실은 건물 밖 터미널 공동화장실을 이용해야했고 방마다 공급되는 세숫대야에다 소변 등의 간단한 것은 처리하도록 허용된다. 당시 나는 울고 싶어도 목이 부어 울 수도 없고 말하고 싶어도 입술이 부르터 자유롭지 못할 때였다.

그때 국수집에서 번갯불처럼 목욕하고 나른한 행복에 젖어 꾸벅꾸벅 졸고 있을때 배 부른 아가씨를 만난 것이다. 망캉에 와서도 망캉에 가야한다는 아가씨의 외침은 눈발로 흩어지는 슬프디 슬픈 절규였다. 몹쓸 인연은 저리도 힘겹고 질긴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사람이 사람을 잘못 만난 뒤의 후유증인 것이다. 착한 인연은 행복을 키우지만 나쁜 인연은 자유를 빼앗아가는 법이다. 사람은 혼자 있을 때도 외롭지만 둘이 있을 때도 틈이 생기고 벽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홀수일 때는 외로워도 기다림의 기대가 설렘으로 확대될 수도 있을 터이다. 그러나 짝수일 때의 외로움은 삭풍이 몰아치는 허허벌판의 비애와 절망을 느낄 터이다.

남영추라는 사람이 도(道)를 배우기 위해 혼자서 노자를 찾아왔다. 그의 장황한 말을 듣고 노자는 꾸짖는다. ‘그대는 도를 배우겠다며 이리도 많은 사람을 데려왔는가?’ 생각이 복잡하고 번거로운 것도 또 다른 마음속 사람으로 질타한 것이다. 홀수든 짝수든 마음 비우며 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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