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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지충 지음|정광훈 옮김|느낌이 있는 책 펴냄|1만 5천원

[현대불교=김주일 기자] 선문답은 깨달음의 정수를 담고 있어 불교 수행자들을 바른 수행의 길로 인도하는 이정표가 돼 왔다. 선문답에는 장황한 교리 해설이나 미사여구 없이 일상적 용어를 사용하기에 읽기 힘든 내용은 없다. 하지만 글자만 보고 따라가다 보면 이내 막다른 길이다.

또한 선문답이란 깨달음에 대해 주고받는 스승과 제자 사이의 문답, 혹은 동료 선사들끼리의 문답을 말한다. 그런데 단순해 보이는 대화가 일상의 시각으로 보면 평범한 법칙서 벗어난 동문서답에 가깝다. 선에서는 쉽게 규정짓고 분별하는 것을 금하며 진리의 세계에 들어서기 위해 생각을 무너뜨리길 권한다. 때문에 쉬운 언어로 쓰였지만 이해하기 몹시 어려운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그래서 선문답을 일상의 테두리 밖에 있는 방외어, 또는 격외어라고 칭한다. 선문답이 품은, 깊은 수행의 결실을 공감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수많은 선지식이 길잡이가 되어 미로서 벗어나는 길을 안내해 왔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아시아의 3대 삽화가로 꼽히는 채지충의 그림이 그 역할을 맡았다.

채지충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만화가이다. 1948년 타이완 창화(彰化)에서 태어난 그는 다섯 살 때 이미 평생 그림을 그리겠다는 생각을 품은 후 오직 만화가의 길만을 향해 갔다. 15세 때 작품을 타이베이의 집영사(集英社)에 보내 합격 통지를 받은 후 타이완 화폐 250위안을 들고 타이베이로 올라가 직업 만화가가 되었고, 이후 40여 년에 걸쳐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이 기간 동안 그는 중국 경전과 관련한 만화로 출판시장을 휩쓸며 총 4천만 권에 달하는 책으로 45개국 1억 명 이상의 독자와 만나게 된다. 10년의 심혈을 기울여 2010년에 발표한 <동방우주 삼부곡>에서는 물리와 수학까지 그림으로 옮겨 동양의 사유를 통해 물리 이론을 새롭게 해석하기도 했다. 이 작품으로 그는 제 35회 금정상을 수상했다.

채지충은 단순하면서도 선의(禪意) 넘치는 필치로 인물을 묘사하고, 이를 통해 중국경전, 철학, 불교 사상을 독특한 견해로 해석한다. 그래서 유머러스한 분위기 속에서 독자들을 경전의 세계로 이끈다. 채지충은 한국의 고우영, 일본의 요코야마 미쓰테루와 함께 아시아 3대 만화가로 꼽히며 난해한 고전을 재치있게 해석해 만화로 재탄생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공자, 맹자, 손자, 장자 등의 중국 고전을 해학적이고 쉽게 풀어내어 45개국 1억 명의 독자들에게 선보였고 이러한 활동은 중화권 만화의 입지를 한껏 끌어올리기도 했다.
채지충의 그림은 단순히 재미있고 흥미로운 것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흥미 속에 심오한 정신세계를 담아낼 줄 아는 작가이며, 그의 작품은 철학과 역사를 넘나들며 쌓은 깊은 지식과 영성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또한 수년 동안 불경 공부를 하며 다져진 선지식은 불교를 공부한 학자만큼이나 예리하고 심오하다.

이 책에는 선맥의 기본이라 여겨지는 당나라 시대 고승들의 선문답과 설법이 채지충의 선화(禪畵)와 함께 실려 있다. 당나라 시대는 선의 황금기라 불리며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선사들의 선문답이 정점을 찍었던 때이기도 하다. 책에 실린 채지충의 선화는 단순한 불교적 이미지를 넘어 유머와 해학을 담고 있다. 그리고 선의 풍취가 생동하는 그의 그림은 선의 의미가 함축된 선문답과 만나며 의미 있고도 심오한 선의 힘을 뿜어내고 있다. 때문에 그림을 즐기는 독자, 선을 공부하는 독자 그리고 삶의 품위를 추구하는 독자 모두에게 충실하고도 든든한 길잡이가 되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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