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를 시작하며… 108배 예찬

누구나 살아가면서 한두 번쯤은 이쯤에서 변화하지 않으면 도저히 안 될 것 같은 위기의 순간이 있다. 어떤 변화 없이 이렇게 가다가는 그대로 무너져버릴 것 같은 고통스러움이 목까지 차올라 있을 때 말이다. 그러나 변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무엇을 어디서 어떻게 바꿔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20년전 本紙 신행일기 읽고 발심
백일기도 시작… 매일 1080배
방황서 자유로움 향해 돌아선 계기

풍랑이 멈춘 바다처럼
마음바탕이 고요해지자
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자신의 고통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그것에서 벗어나 자신을 변화시키는 가장 강력한 방편으로 108배를 추천하고 있다.

이십대 초반에 불교에 입문해서 간헐적으로 108배를 하고 있었지만, 진정한 108배의 시작은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막막했던 불혹의 나이를 눈앞에 두고 있을 즈음이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하면 늘 남의 집에 들어와 사는 머슴처럼 불편하고 불안하게 살아가게 된다는 것을 모른 채 마흔 가까이에 다다랐을 때, 나는 비로소 고통에서 탈출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학문에 뜻을 두고 공부하는 것에 긴 시간을 투자했던 남편은 박사 학위를 받는 것으로 젊음을 마무리했으나 미래가 불확실했고, 나는 나대로 무슨 일이든 해서 가정 경제에 보탬을 줘야 했지만 여의치 않은 상황이었다.

남들과 견주어 뒤쳐져 있는 삶이 사실은 정견이 바로 서지 않은 나 자신에서 비롯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으로서의 남편 때문이라고 생각하다보니 그가 원망스럽고 밉고 보기 싫었다. 가까운 사람을 원망하고 미워하는 삶이 얼마나 불행한지 온몸으로 느끼면서 매일매일 울고 싶을 때, 주간지 ‘현대불교신문’서 어느 일간지 편집국장 한 분이 쓴 신행일기를 읽으면서 탈출구를 발견하게 되었다.

오로지 결혼 적령기에 있던 딸이 좋은 배우자를 만나 결혼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백일기도를 시작했는데, 매일 1080배씩을 하고 있다는 거였다. 출근하기 전 새벽 4시에 일어나서 5백배를 하고, 퇴근하고 와서 다시 5백배를 한다는 것이었다. 퇴근 후 직장 동료들과 어울려 술이라도 한 잔 하는 날엔 밤늦게 돌아와 절을 하고 다음 날 새벽에 일어나 다시 절을 해야 하는 것이 여간 고역이 아니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절을 하고 있다는 내용은 잠재되어있던 나의 신심을 촉발하기에 충분히 신선했고 감동적이었다. 그 글을 읽은 순간‘내가 변화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이거다!’하는 내면의 소리가 들려왔고, 바로 그날 밤부터 하루에 1080배를 하는 것으로 백일기도를 시작했다.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고통 속을 끝없이 윤회했던 내 인생이 자유로움을 향해 과감히 돌아선 시점이었다.

그동안 답답할 때마다 집에서 가까운 절에 가서 108배를 하고, 어느 해 성도절에는 내 발로 걸어가 그 절 신도들 틈에 끼어 밤새도록 3천배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조금씩 절을 하며 자신에 대한 성찰과 하심과 용기, 평화로움 같은 것들을 아주 조금씩 경험했던 것이, 저 편집장 거사님의 신행일기를 보고 단박에 마음을 내는 동인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백일 동안의 1080배 기도는 돌아보건대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은 변화를 불러 일으켰고, 역동적인 삶을 살게 했다. 내면의 변화는 물론 외부 환경의 변화도 많았던 시기였다.

처음엔 아침에 일어나 5백배, 나머지 5백배는 식구들이 모두 잠든 시각에 했는데, 나중에는 신심이 북받쳐서 아침에 한 번 시작하면 그 자리에서 끝내버리곤 했다. 절을 하기 좋은 체질 때문인지 아니면 워낙 변화에 대한 갈망이 컸기 때문인지 몸이 힘들다고 느껴본 적은 없다. 오히려 날이 갈수록 힘이 났고 몸이 가벼워졌다. 몸이 가벼워지니 마음도 함께 가벼워졌다. 그때 알았다. 몸이 경쾌해 질 때 마음이 고요해지고 밝아진다는 것을.

거친 풍랑이 멈춰진 바다처럼 마음 바탕이 고요해지자 차츰 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얼마나 왜곡된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있었는지, 마음이 황폐해짐으로 해서 가까운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었는지 바라보게 되었다. 시시때때로 화가 올라와서 견딜 수 없었던 마음이 누군가로 인해 생긴 것이 아니라 내 잘못된 편견과 굳어진 생각에서 나온 것이란 걸 깨닫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큰 깨달음은 내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고정관념을 가지고 살았는가 하는 것이었다. 검증되지도 않고 실체도 없는 그 고정관념이 나를 구속했고, 그 속박으로 인해 고통이 발생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정말이지‘환희용약’이라는 말로도 부족할 만큼 기뻤다.

100일이 끝나기 전에 많은 변화와 행운이 잇따랐다. 그 가운데 하나는 동국대 역경원 일을 하게 된 것이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적극적으로 찾아나서자 자연스럽게 기회가 다가왔다. 절을 하니 무엇이든 할 수 있겠다는 용기가 무한이 솟아났고 그 용기가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몇 년 동안 경전 번역의 증의(이미 번역된 내용을 검토하는 작업)와 불교사전을 번역하는 역경원 일은 내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는 일이 되었고, 정신적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견고한 발판이 되어주었다.

하나가 열리자 많은 것들이 동시에 열렸다. 한문과 불교 실력이 부족했던 것을 절감하고 봉선사 불경서당을 이끌며 경전을 강의하시던 역경원장 월운 스님께 강의를 들은 것도 빼놓을 수 없는 행운이었다. 몇 해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대한민국 최고 강백이신 스님께 강도 높은 강의를 들으면서 불교를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절을 한 공덕 때문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당시 공부한 것이 지금 글을 쓰는 데 얼마나 많은 힘이 되고 있는지 모른다. 그때 그렇게 열심히 절을 하며 변화를 갈구하지 않았더라면 오늘날의 내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열심히 산 시기였다.

지금도 나는 책 출간을 계획하고 원고를 시작할 때와 마감을 하고 났을 때 장애 없이 최선을 다해 일을 할 수 있기를, 또 원만하게 일이 이뤄질 수 있기를 기도하며 반드시 1080배를 한다. 첫 1080배 백일기도를 하고 나서 만들어진 나만의 경건한 의식이다.

당시 1080배를 하는 데 1시간 40분 쯤 걸렸다. 지금은 108배를 하는데 거의 20분이 걸리지만 그때는 빠르면 10분, 늦어도 12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나중에는 뒤에서 누군가 보고 ‘나비처럼 가볍게 절을 한다’고 했을 정도로 몸의 무게를 느끼지 못하고 했던 기억이 난다. 어떤 사람은 백일 동안 매일 1080배를 하면서‘아, 제발 내일이 오지 말았으면’했다는데, 나는 빨리 내일이 왔으면 기다리는 심정이 되었으니, 나의 첫 1080배 기도는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한 10분 쯤 지난 것 같은데 어느덧 1080배의 절을 다하고 났을 때 느꼈던 희열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러한 희열에 대한 체험이 그 후 계속 절 수행을 하게 했을 것이다. 그때는 참 많은 일을 하고 잠을 서너 시간 자고 일어나도 피곤할 줄 모르고 생기 있는 하루를 보냈다.

행복한 감정은 현재에 온전히 집중할 때 일어난다는 것을 절을 하면서 깨달았다. 그래서 108배는 현재에 집중하는 것을 연습시키는 가장 좋은 방편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0여 년의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내가 행복해질 수 방법으로 108배를 놓지 않고 있이유가 아닐까 싶다.

절을 한 공덕으로 인해 생긴 변화는 또 있다. 열심히 기도하며 이웃에게 자비로운 마음을 나누며 사는 도반들을 만나 한 달에 한번 3천배를 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를 가진 것이 그것이다. 진리의 길을 가는 데 동일한 가치를 추구하는 도반만큼 든든한 동지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무엇보다 큰 변화는 온 가족이 108배 동지가 되었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무언가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시키지 않아도 108배를 하고, 남편은 나보다 더 열렬한 108배 예찬론자가 되었다. 나중에 자세히 쓸 기회가 있겠지만, 내가 그토록 미워했으며 108배를 시작하게 했던 그는 나도 아직 해보지 못한 21일 3천배 기도를 하는 기염을 토하며 확실하게 인생을 바꾸었으니, 나의 첫 기도의 가피는 일파만파 긍정적 효과를 가져 온 것이 틀림없다.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은 내가 먼저 솔선수범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들이 변했으면 하고 바란다면 내가 먼저 변화하면 되고, 내 변화의 시작을 108배로 시작하면 분명 행운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고통스러운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편안한 나로 변화하고 싶은 열망에서 시작한 108배가 이제는 그 무엇을 간절히 추구하지 않아도 그냥 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좋은 수행이 되었다. 가끔은 내가 왜 이렇게 절을 하는가, 생각해볼 때가 있는데 이렇게 답을 내리곤 한다. 부처님을 부르면서 절을 한만큼 온전한 생명 그 자체인 부처의 자리에 가까워질 것이라고.

몸이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절을 하리라 발원하며 요즘도 나는 매일 3백배를 한다. 절을 하면서 많은 부처님의 이름들을 부르기도 하고, 때로는 짧은 경전을 외우기도 한다. 명상음악을 틀어놓고 그것에 귀 기울이며 절을 하기도 하지만 좋은 것, 아름다운 것조차 마음에서 비우고 싶을 때는 그냥 몸만 움직인다.

이십여 년 전, 현대불교 신문을 보고 발심, 오늘의 나를 이루었는데, 이제 그 지면에 절수행에 대한 글을 연재하게 되었으니 이 또한 부처님의 가피가 아닐 수 없다. 오늘 첫 번째, 글쓴이인‘내 인생을 바꾼 108배’를 시작으로 절수행을 하면서 인생을 바꾼 사람들을 만난 이야기를 쓸 것이다. 108배를 시작한 절이 1080배, 3천배로 이어지면서 가족간의 갈등을 극복하고 새로운 인생의 지평을 연 평범한 주부의 이야기에서부터, 20년 동안 매일 3천배를 빼놓지 않고 한 결과 본인이 바라는 바를 다 이룬 어느 신심 깊은 불자분의 이야기, 목숨을 걸고 절을 해서 시한부 삶을 극복하고 수행에 더욱 매진한 스님의 이야기, 사업의 위기를 108배로 이겨 낸 어느 노경영자의 이야기, 군대에 가서도 수백 배씩 절을 하며 치열하게 자신을 바꾸고자 노력했던 젊은이의 이야기도 쓸 것이다. 앞으로 펼쳐질 무궁무진한 이야기, 기대하시길!


박원자 작가는...
숙명여대에서 중국문학을 전공했다. 대학시절 불교에 입문했고, 동국대에서 역경위원을 역임했다.
1991~1992년 월간 〈해인〉에 ‘호계삼소’를 연재했고, 1996년부터 12년 동안 同誌에 ‘나의 행자시절’을 연재했다. 2008년 〈나의 행자시절 1ㆍ2ㆍ3〉, 2016년 〈스님의 첫마음〉을 출간했다. 그 외 〈혜암대종사 법어집/1995〉등 저서가 있으며, ‘불교 입문에서 성불까지’를 지향하는 인터넷 도량 금강카페 운영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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