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마음의 작용

만약 지금 나에게 싫어하는 생각이 있다면 이 싫어하는 생각이 작용으로, 작용이 있거나 작용하기 위해서는 본체가 있어야 하는데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좋아하는 생각이 본체인 것입니다. 그래서 작용이 없으면 본체가 없고 본체가 없으면 작용도 없으며, 작용은 스스로 있지 못하고 자신을 인식 하지도 못합니다. 작용은 본체로 인하여 있으며, 본체로 인하여 인식하는 것입니다. 본체도 이와 같습니다. 본체와 작용의 자신은 무아(無我)이므로 있는 것이 아니고, 서로의 대상으로 인하여 없으므로 없는 것도 아닙니다. 본체와 작용은 “둘도 아니고 하나도 아닙니다. 본체와 작용은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고 융통하기 때문입니다. 티끌 수와 같은 모든 분별의 상대법은 본래 서로 대립하지 않고 상대성으로 서로 의존하여 있기 때문에 융통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무장무애(無障無碍)하여 융합하는 것이 성품이고 마음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 눈과 귀는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알지 못합니다. 보이는 대상과 들리는 소리가 눈과 귀의 존재를 알려주며, 보이는 대상과 들리는 소리 역시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알지 못하고, 눈과 귀가 보이는 대상과 소리의 존재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손가락과 칼도 자신을 스스로 알지 못하고 더듬어지는 대상과 잘리는 대상이 손가락과 칼의 있음을 알려주며, 더듬어지고 잘리는 대상의 존재는 손가락과 칼이 알려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생(生)과 사(死)도 서로 대상으로 인하여 있으므로 있는 것이 아니고, 서로 대상으로 인하여 없기 때문에 없는 것도 아닙니다. 생과 사가 있는 것이 아닌 것을 진공(眞空)이라 하고, 생과 사가 진공이 되어 서로 융통하는 것을 없는 것도 아닌 묘유(妙有)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일체의 존재와 분별의 생각은 스스로 있지 못하므로 있는 것이 아니고, 대상으로 인하여 없으므로 없는 것도 아니며, 서로 융통하여 있으므로 묘(妙)하게 있는 것입니다.

물질로 이루어진 우리들이 물질이 무엇인가를 밝히는 학문이 물리학입니다. 이 시대는 발전된 과학의 연구 결과가 자주 신문, 방송으로 발표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물리학과 천문학 등에 깊은 지식을 갖추고 있습니다. 지난 날 KBS 2TV는 특집 프로그램으로 ‘코스모스 프로젝트 천체의 재구성’이라는 제목의 방송을 하였습니다. 방송의 끝 부분에서 발표자가 말하기를 “우리가 물질에 대해서 5% 정도는 알고 있으나 나머지 95%는 아직 모르고 있으며, 우리가 물질을 완전히 알게 된다면 참으로 좋을 것이다” 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5%는 바르게 알고 있는 것이며, 과학이 더욱 발전하면 물질이 무엇인지 완전히 알 수 있는 것인가? 우리들은 물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물질이 물질을 알 수가 없습니다. 왜냐 하면 물질은 스스로 알지 못하고 스스로 존재하지 못하고, 대상인 생각과 마음으로 인하여 있으며, 생각과 마음 또한 스스로 알지 못하고 존재하지 못하고, 물질로 인하여 알고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물질과 마음이 따로 있지 않고 본래 서로 융통하여 있는 것을 물질과 마음이 따로 있다는 생각으로 물질을 알려고 한다면 영원히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일체가 서로 융통한다는 것은 안다, 모른다 하는 모든 분별망념을 일으키지 않는 무심(無心), 무념(無念)이 융통하는 것이고, 일체가 융통하면 물질이 마음이고 마음이 물질로, 물질과 마음이 다르지 않는 것을 깨달음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 마음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모든 것에 이름을 붙여놓고 그 이름만을 알고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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