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명예 버리고 나선 험난한 구도행
사랑·명예 버리고 나선 험난한 구도행
  • 강소연 중앙승가대 교수(불교문화재학)
  • 승인 2017.01.06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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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화 속 스토리텔링- 안락국태자 이야기 上
연재를 시작하며

유명한 대승경전들 속에는 그 안에 매우 드라마틱한 서사적 구조를 갖는 이야기가 곳곳에 설해집니다. 대중적 교화를 위한 흥미로운 ‘방편의 묘(妙)’가 경전 곳곳에 발휘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단지 방편의 묘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부분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종교체험이란 실제로 차안과 피안을 넘나들기에, 무엇이 ‘서사적 허구’인지 ‘종교적 진실’인지, 섣불리 따질 수 없는 영역이 있기 때문입니다. 익히 잘 알려진 대표적 경전 속에는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지옥에 뛰어든 바라문의 딸 이야기, ‘보살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풀기 위해 구법순례하는 선재동자 이야기 등이 있습니다. 본 연재에서는, 우리의 국보급 불화(佛畵)와 함께, 차례차례로 이들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감동적인 구도(求道)의 이야기를 아름다운 우리의 옛 불교그림을 통해 만나볼 수 있습니다.

4백여 나라 거느린 사라수대왕
광유성인이 유나로 삼겠다하자
구도행 고민… 원앙부인이 설득

임정사 여정, 만삭 원앙에겐 험난
결국 태중 자식과 장자의 몸종으로
사라수, 아들에 ‘안락국’ 이름 남겨
원앙은 장자에게 괴롭힘 받는데…

“찻물을 길어올 유나를 삼으리라!” 임정사의 광유성인은 제자 승렬비구에게 이같이 명합니다. 사라수대왕에게 가서 절의 소임을 맡는 유나로서 “그 몸을 청하여 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소임 중에서도 찻물을 길어오는 가장 궂은일을 맡으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 사연을 전해들은 왕은 매우 기뻐합니다. 그는 4백 개의 작은 나라를 거느리고 또 408명의 부인을 거느린 서천국의 대왕이건만, 이를 미련 없이 버리고 깨달음을 구하려 마음을 냅니다.

하지만, 막상 떠나려는 마당에 그는 홀연히 눈물을 비 오듯 쏟습니다. 이유는 “부인들이 전세의 인연으로 나를 따라 살고 있거늘 오늘 모두 버리고 갈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슬퍼 웁니다”라는 것입니다. 이에 원앙부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대왕이시여, 이런 기회는 평생에 단 한번 밖에는 없는 일인데 어찌 아녀자에 이끌려 못 떠나십니까. 궁중의 애욕생활은 육도윤회의 근본이오니, 생사윤회를 벗어나려면 이번 기회에 훌쩍 떠나셔야 합니다.”

   
임정사의 광유성인 〈안락국태자경변상도〉의 부분. 조선 전기 1576년에 제작. 일본 고지 청산문고 소장.
찻물 시중이 일생일대 기회?
〈안락국태자경〉 이야기는 사라수대왕이 속세를 버리고 임정사라는 절을 찾아 길 떠나는 내용부터 시작이 됩니다. ‘찻물을 길어오는 허드렛일’과 ‘나라의 제왕으로서의 자리’를 바꾸는 데 서슴지 않는 대왕의 모습을 봅니다.

광유성인으로부터 찻물 긷는 일을 하러 오라는 명을 받자마자, 그는 기쁜 마음으로 발심을 합니다. 수행의 계기 또는 선지식과의 인연이 닿은 것입니다. 지혜로운 원앙부인은 이를 놓치지 않도록 조언합니다. 이는 ‘기연(機緣)’이라고 해서, 중생에게 선근의 기틀이 있어 부처님의 교화를 받을 만한 연줄이 있다는 말입니다. 속세의 어떤 인연보다도 소중한 ‘세세생생’ 윤회의 밑천이 되는 인연입니다.

대왕은 다스리고 있던 4백국을 아우에게 맡기고 떠나려 하지만, 그도 ‘유정(有情)’인지라, 마지막 순간에 발목을 잡는 것은 속세의 ‘정’이었습니다. 주저하는 남편의 모습을 보고, 원앙부인은 안타까운 마음을 내어 함께 동행하기로 합니다. 비로소 대왕은 나라를 여의고, 속세를 여의고, 부귀영화를 여의고, 출발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대왕과 부인은 궁중에 있을 때는 일거수일투족 호위 되어 감시 받다가, 갑자기 큰 대지에 던져지니 자유스런 호흡에 마음이 가볍고 시원하였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밤이 되면 풀숲에서 자고 마치 도망자의 행색이 되어 길을 가니, 차마 눈으로 볼 수 없는 초라한 임금의 행차였습니다. 또 원앙부인은 마침 만삭의 몸이라 더 이상 걷지 못하고 종아리가 기둥처럼 붓기 시작했습니다. 

찻물 시중을 들러온 사라수대왕의 여덟 부인. 사라수대왕은 400여 나라와 408명의 부인을 둔 서천국의 왕이었다.
장자의 몸종이 된 원앙부인
임정사를 향한 멀고 험한 여정 중에 원앙부인은 심한 발병이 나고 또 만삭의 몸인 터라 더 이상 길을 가지 못하고 주저앉고 맙니다. 행여 남편 수행 길에 방해가 될까 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하여 원앙부인은 자신을 계집종으로 팔아 그 돈으로 광유성인에게 보시하도록 청합니다. 마침 다다르게 된 죽림국의 자현장자에게, 그녀는 뱃속의 아기와 함께 몸값 금 4백량에 팔리게 됩니다.

“계집종 사소서”하고 장자의 문 앞에서 부르니, 장자가 나와 “이 여자가 진정 너의 종인가”합니다. 왜냐하면 부인의 모습이 너무 아름답고 수승하였기 때문이지요. “값이 얼마면 되겠느냐?” 이에 대왕의 “처분대로 하시지요”라는 말을 가로막고, 부인은 “제 몸값은 제가 아는 것이오, 제 몸값이 2백량이고, 저의 태중에 든 아이도 댁의 종이 될 것이니 그 아이 값이 2백량입니다. 도합 황금 4백량입니다.”

궁궐에 찾아온 승렬비구에게 원앙부인이 금바리에 입쌀을 가득 바치자, 그는 “나는 공양미를 얻으러 온 것이 아니라, 대왕을 모시러 온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이제 꿈길밖엔 길이 없어
여자는 약하지만, 아내는 강하고, 엄마는 더 강합니다. 이렇게 장자의 집에 몸종으로 팔려가는 마당에도 부인은 남편의 밥 걱정과 옷 걱정을 합니다. 그래서 남편이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도록 왕생게(往生偈)를 지어 줍니다. “이 왕생게를 잊지 말고 염불하소서. 그러면 그 공덕으로 굶더라도 배고프지 않으며, 옷이 더럽혀지더라도 다시 새 것처럼 깨끗해 질 것입니다.”

願往生 願往生 願在彌陀會中坐 手執香花 常供養
願往生 願往生 願生極樂見彌陀 獲蒙摩頂 受記
願往生 願往生 往生極樂蓮花生 自他一時成佛道
원컨대 왕생하게 해주소서/ 원컨대 왕생하게 해주소서
아미타부처님 성전에서 손에 향과 꽃을 잡고 늘 공양하게 해주소서
원컨대 왕생하게 해주소서/ 원컨대 왕생하게 해주소서
극락세계에 태어나 아미타불을 뵙고 수기를 받게 해주소서
원컨대 왕생하게 해주소서/ 원컨대 왕생하게 해주소서
극락의 연꽃 위에 태어나 나와 남들 모두 일시에 불도를 이루게 해주소서
 -‘왕생게’ 〈안락국태자경〉 본문 中

사라수대왕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신의 아기에게 ‘안락국(安樂國)’이란 이름을 지어주고, 서로 꿈에서라도 다시 만나자는 언약을 남긴 채 원앙부인과 생이별을 합니다. 길고도 험한 여정을 떠난 사라수대왕은 힘들 때면 아내가 지어준 이 왕생게를 외우며 고난을 극복하며, 드디어 임정사에 도착하게 됩니다. 임정사에 와서도 왕생게를 외우며 힘든 수행 생활을 묵묵히 해 나갑니다. 부인의 ‘왕생게’는 남편의 정신적 버팀목이 됩니다. “대왕이 금 두레박을 나무의 두 끝에 매달아 메시고 물을 길으며 다니실 때, 왕생게 염불을 놓지 않고 외우시더라.” 한편, 자현장자 집의 종이 된 원앙부인은 생전 겪어보지 못한 갖은 고생과 학대를 받게 됩니다.  (다음호 계속)

사라수대왕과 이별하는 원앙부인, 대왕은 차마 손을 놓지 못한다.
임정사란 어떤 곳인가?
안락국태자 이야기에는 가장 먼저 범마라국의 임정사라는 곳이 등장을 합니다. 이곳은 어떤 곳일까요. ‘원앙부인 극락왕생연기’라는 제목으로 〈월인석보〉 상절부에서 출처를 찾아볼 수 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임정사는 광유성인이 오백제자를 거느리고 중생을 교화시키는 곳이라고 합니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조금씩 다른 버전의 안락국태자 이야기 중에서, 특히 일붕(서경보) 스님의 불교설화집에서 임정사의 흥미로운 면모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일붕 스님은 ‘임정사의 종소리’라는 제목으로 본 이야기를 수록하고 계신데, 제목 자체에 아예 ‘임정사’라는 곳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임정사는 어느 곳에 있는 절인가. 이곳은 고래부터 성현만 모여 살고 범인은 찾아 볼 수도 없고 발도 붙일 수 없는 곳이라 한다. 다만 산 밑에 사는 사람은 흘러나오는 청아하고 아름다운 종소리만 듣고 있을 뿐 찾아 볼 수는 없는 곳이다. 설사 산에 들어가 아무리 찾아보아도 육안으로는 도저히 절과 성현을 볼 수 없다는 곳이다.”

사라수대왕이 찾아 떠난 이곳은 중생의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형상으로는 찾을 수 없는, 성현들만 사는 부처님의 세계라고 합니다. 임정사는 불법을 전수하여 중생을 교화하는 교단이자, 사라수대왕이 공덕을 닦기 위해 가는 수행의 공간이자, 아들 안락국이 목숨을 걸고 찾아가는 이상향입니다. 이는 〈안락국태자경변상도〉 불화의 가장 윗부분에 묘사되어 있습니다. 임정사는 자신을 맑혀 청정 법계로 향하는, 극락으로 진입하는 초입구와도 같은 역할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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