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을 드니 빙그레 웃었다.
석가모니 부처님과 가섭존자 사이에 있었던 일화에서 나온 말 중 염화미소(拈花微笑)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영산회상(靈山會上)에서 부처님이 모여 있는 대중 앞에서 설법을 하시려다 말씀을 하시지 않고 연꽃을 한 송이 들어 보이셨다는 것이다. 부처님 말씀을 들으려고 귀를 기울이던 대중이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했는데 유독 가섭이 홀로 빙그레 미소를 짓고 있었다는 것이다. 가섭의 미소 짓고 있는 모습을 본 부처님이 이렇게 말씀을 하신다.

“내게 바른 법을 꿰뚫어 보는 눈, 열반의 현묘한 마음, 겉모습을 벗어난 진실한 모습, 미묘한 법문이 있다. 문자에 의존하지 않고 교설 밖으로 별도로 전하니 이것을 마하가섭에게 부촉하노라.”(吾有正法眼藏 涅槃妙心 實相無相 微妙法門 不立文字 敎外別傳 付囑摩訶訶迦葉)

이 말은 경전 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선종(禪宗)의 사서(史書)인 〈연등회요(聯燈會要)〉 1권에 수록되어 있다. 물론 경전의 이름을 띠고 있는 문헌에도 나오는 곳이 한 곳 있다. 〈대범천왕문불결의경〉에도 같은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초회부촉품’에 나오는 이야기다. 그러나 〈대범천왕문불결의경〉은 중국에서 찬술된 경으로 역자와 번역한 때가 밝혀져 있지 않다. 대범천왕이 부처님께 질문을 하여 의심을 해결한다는 뜻으로 붙여진 경명이지만 내용면에서 중국적인 특징이 많이 나타나고, 선종사서를 대표하는 〈경덕전등록〉이 나온 후인 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경이다. 그 이유로는 선종사서 가운데서도 가장 먼저 만들어지고,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경덕전등록〉 이전에는 염화미소에 관한 이야기가 없었다. 또한 정법안장이나 열반묘심이라는 말도 〈전등록〉에서 처음 쓰인 말이다. 이런 점에서 〈대범천왕문불결의경〉을 〈전등록〉 이후에 만들어진 위경(僞經)으로 본다는 것이다.

다만 이 이야기를 〈전등록〉 이후에 나온 선종사서나 어록 등에 자주 소개하면서 ‘다자탑전분반좌(多子塔前分半座)’ ‘곽시쌍부(槨示雙趺)’와 함께 삼처전심(三處傳心)이라 하여 이를 선(禪)의 기원으로, 조사선(祖師禪)에서 애용하는 화두(話頭)를 삼아 ‘불립문자 교외별전’이라는 선의 기치를 내세우는 대표적인 공안으로 채택되었다. 그리하여 선종에서는 전법의 상징이 되는 조사법통(祖師法統)의 근거로 삼아 왔다.

부처님이 꽃을 든 이유를 가섭은 무언가 알아차렸다는 뜻으로 이해되는 이 염화미소 이야기는 이른바 이심전심(以心傳心)을 상징하는 설화다.

그러나 이심전심을 근본으로 하는 선종의 본분도리(本分道理)에 있어서는 법을 전하고 받고 한다는 말마저 부정해 버린다. 사실 선의 근본 종지에 입각해서 볼 때는 ‘염화미소’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이해한다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 그래서 간화선의 완성자로 평가받는 대혜종고(大慧宗?, 1089~1163)는 “만약에 심법을 전했다고 한다면 세상일이 삼실처럼 얽혀 복잡해질 것이다”고 하였다.(若言付心法 天下事如麻)

“부처님이 연꽃을 든 것과 가섭이 빙그레 웃은 것을 이해할 수 있는 특별한 안목이나 인식의 도구는 필요하지 않다는 말이다. 부처님이 심법을 전하고 가섭이 받았다거나 문자에 의존하지 않고 심오하고 불가사의하게 교감을 했다는 식으로 분별하면 삼실처럼 얽혀 복잡한 조작이 일어나 염화미소의 진정한 참뜻을 왜곡하게 할 뿐이다.”

〈연등회요〉에 나오는 말이다.

또 다른 어록에는 “이 일이 만약 말로써 설명된다면 대장경 전체에 설해진 부처님 말씀이 있지 않은가? 어찌 반드시 꽃을 들어 보이고 빙그레 웃는 염화미소로써 정법안장을 전하겠는가? 그대가 바로 알려면 입을 닫고 그 자리에서 알아차려야지 앞뒤로 요모조모 생각을 하지 말라. 머뭇거리며 분별하는 순간 귀신 소굴에 떨어질 것”이라 한다.

〈연등회요〉에는 이런 말도 나온다.

“염화미소는 밥알에 붙은 모래와 같고 달마가 전했다는 마음은 이마에 꽂힌 화살과 같다.”(拈花微笑 飯裏着沙 少室傳心 腦門中箭)

이처럼 공안을 처리하는 조사선의 관점에서는 염화미소가 가리키는 그 무엇이 없다는 것이다. 인식상의 착각을 활용하여 모든 관념을 뽑아내는 철거도구와 같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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