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음의 이해

우리들은 이 세상을 살아갑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의 삶이란 무엇인가? 삶은 믿음이며, 의지하는 것이며, 의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믿지 못하고, 의지하지 못하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과 삶은 모두 허물어지기 때문입니다. 삶의 주체라고 할 수 있는 이 몸(육신)과 추구하는 행복, 우리들이 일궈낸 모든 창조물들을 비롯하여 산과 강, 지구, 태양, 우주의 별들도 저마다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 모두 허물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삶에 대하여 믿지 못하고 의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삶이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인가, 왜 살아야 하는가, 살려고 먹는가 먹으려고 사는가 하는 티끌 수와 같은 의심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모든 존재는 허물어지고 없어지는 것일까? 그것은 근본(根本)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줄기만을 알고 뿌리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근본이고 뿌리인가? 지금 우리들이 말하고,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촉감을 느끼고, 생각하는 본성(本性), 본심(本心)인 이 마음이 근본입니다. 이 마음은 허공과 그 나이가 같아서 설령 육도(六道)를 끊임없이 윤회하며 각양각색의 형체로 태어나도, 그 마음만은 결코 생겨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불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중생은 자신의 마음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망정(妄情)을 일으켜 갖가지 업을 지어 그 과보(果報)를 받게 되는데, 실제로 무너지고 사라지는 것은 이 본심을 벗어난 티끌 같은 의심과 좋아하고 싫어하는 미혹한 망념의 과보가 무너지고 사라지는 것입니다.

비유를 들자면, 우리들은 좋아하는 것은 취하고 오래 보전하려고 하지만 좋아하는 것은 스스로 있지 못하고 싫어하는 것으로 인하여 있기 때문에 있는 것이 아니므로 취하고 보존하지 못하고 무너지며 사라지는 것입니다. 또한 싫어하는 것은 버리고자 하지만, 싫어하는 것도 스스로 있지 못하고 좋아하는 것으로 인하여 있으므로 스스로 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무너지며 사라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모든 현상은 무너지고 사라지기 때문에 취하고 버리려는 우리들의 욕망은 충족될 수 없으며, 욕망이 충족되지 않을 때는 당연히 그에 따른 고통이 일어납니다. 그 가운데 가장 애착이 큰 우리들의 육신이 외부의 충격이나 질병으로 인해 느끼는 아픔의 통증은, 육신이 허물어지는 느낌이 통증의 고통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이 아픔의 고통이 싫어하는 마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됨을 구하는 이는 구함이 없어야 합니다. 일체가 한마음이므로 실로 구할 것도 없습니다. 좋아하는 것도 취하지 말고 싫어하는 것도 버리지 않으며, 깨끗함과 더러움, 선과 악 등의 분별망념의 일체 이분법이 본래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님을 바로 알아서, 그 어느 곳에도 머물지 않으면 고통과 의심, 생과 사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과학은 153억 년 전 하나의 티끌이 빅뱅한 후, 점점 팽창하여 지금의 우주가 성립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주에 존재하는 별과 태양 모든 사물들은 팽창하고 늘어난 티끌이 쌓이고 늘어난 모양인 것입니다. 티끌이 모여 쌓이면 생긴 것이고 쌓인 것이 흩어지면 멸한 것으로, 이것은 태어나고 죽는 생사가 아니고 티끌이 모였다가 흩어지는 작용일 뿐입니다. 이와 같은 티끌의 작용에 대해서 무엇이 생긴 것이다 멸한 것이다 또는 있다 없다, 때로는 좋아하고 싫어하는 등의 티끌과 같은 분별을 일으키는 원인은 작용의 측면에서만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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